[아시아 포퓰리즘-필리핀] 마르코스에서 두테르테까지 현대정치사는 ‘포퓰리즘 역사’
포퓰리즘의 기원은 어디인가? 어떤 학자는 로마제국의 의회를, 또다른 한편에선 미국 건국 이후 확산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흐름에서 생겨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의회이다. 본래 국가운영에 국민의 뜻을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의회정치는 그러나 실제로는 국민을 앞세워 자기 자신과 정파의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들에 의해 오염되는 일이 다반사다. 바로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매거진 N>은 아시아 각국의 정치현장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포퓰리즘을 살펴봤다. <매거진N> 11월호 스페셜 리포트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초 집권과 2016년 7월 쿠데타 이후 권력 강화 과정에서 그가 포퓰리즘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추적했다. 또 고대로마 이후 의회정치의 산실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현재 연립내각의 ‘포퓰리즘 노하우’를 살펴본 독자들은 파키스탄, 이집트, 필리핀의 정치현실과 포퓰리즘과의 함수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T강국으로 강력한 규범에 의해 통제되는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선 포퓰리즘이 과연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이 나라 최고 매체인 <스트레이트타임즈> 기자출신인 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전 회장의 분석을 통해 들여다봤다. <편집자>
[아시아엔=알린 페레르(Alin Ferrer) <온타깃미디어컨셉> 기자] ‘포퓰리즘’이란 용어는 갈등하는 사회에서 특히 정치와 선거에서 주로 사용된다. 정치평론가들은 정치인들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인기를 얻기 위해 통상 포퓰리즘을 활용한다고 설명한다. 필리핀 역시 포퓰리즘을 활용한 정치인들이 역사적으로 많이 등장했다.
대다수 필리핀 정치인들은 자신들은 일반 국민이 상상도 할 수 없는 부유한 권력층 출신이면서도 가난하고 평범한 유권자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대중들의 관심과 지지를 얻기 위해 온갖 포퓰리즘적인 약속을 남발했다. 장기 독재정치로 악명 높았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은 20년간 필리핀을 지배했다.
그는 자신의 가족과 가까운 측근들만이 필리핀을 ‘새로운 사회’로 이끌 수 있다는 착각을 국민들에게 심어줬다. 그것은 환상에 불과한 것이지만, 국민들은 이를 미처 깨닫지 못했다. 마르코스는 지지세력에 대해서 정치적·경제적 혜택을 나눠주는 한편 자신에 대한 우상화 정책을 병행했다. 마침내 시민혁명에 의해 마르코스 정권이 무너져 내린 이후에도 불행히도 포퓰리즘 정치는 계속됐다.
마르코스가 실각한 후 등장한 코리 아키노 대통령(1986~1992)에게 마르코스 정권에 의해 암살당한 남편 아키노 상원의원은 포퓰리즘 정치에 활용하기 딱 좋은 수단이 됐다.
이후 필리핀 대통령 자리에 앉은 사람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피델 라모스(1992~1998)는 EDSA 혁명에서 자신의 ‘영웅적 역할’을 이용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뒤 이은 호세 에스트라다(1998~2002)는 영화배우 출신임을 앞세워 대중적 지지를 확실히 이끌어 냈다.
그러면 지금의 두테르테 대통령은 과연 어떤가? 필리핀에선 2016년, 쉽게 믿을 수 없는 ‘두테르테 마법’이 있었다. 두테르테의 메시지는 간단했다. 그는 “교통 문제를 해결하고, 마약과의 전쟁을 하겠다”고 선포했다. 두테르테는 20년간 다바오시의 시장으로서 만들어온 이미지에 힘입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시장 재직 시절 강력한 규율과 처벌로 ‘마약 없는’ 도시를 이뤄냈다. 그리고 그것이 대통령선거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두테르테 대통령은 취임 이후 다바오 시장 당시와 같은 포퓰리즘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포퓰리스트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에게 때로는 불행을 가져다 준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보통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옳은 말만 한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지키지 못할 꿈같은 약속을 남발한다. 그런 면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상당히 많이 다르다. 포퓰리즘적인 대통령은 ‘대중에 영합하는’ 결정을 내리지만 두테르테가 그렇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런 면에서 그의 포퓰리즘은 과연 어떤 것이며, 어떻게 귀결될지 좀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