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퓰리즘-싱가포르] 60년 절대권력 싱가포르에도 포퓰리즘?
포퓰리즘의 기원은 어디인가? 어떤 학자는 로마제국의 의회를, 또다른 한편에선 미국 건국 이후 확산된 민주주의와 공화주의 흐름에서 생겨났다고 말하기도 한다. 이 둘의 공통점은 의회이다. 본래 국가운영에 국민의 뜻을 반영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의회정치는 그러나 실제로는 국민을 앞세워 자기 자신과 정파의 이익을 챙기는 정치인들에 의해 오염되는 일이 다반사다. 바로 이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포퓰리즘’이다. <매거진 N>은 아시아 각국의 정치현장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포퓰리즘을 살펴봤다. <매거진N> 11월호 스페셜 리포트는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이 최초 집권과 2016년 7월 쿠데타 이후 권력 강화 과정에서 그가 포퓰리즘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추적했다. 또 고대로마 이후 의회정치의 산실로 불리는 이탈리아의 현재 연립내각의 ‘포퓰리즘 노하우’를 살펴본 독자들은 파키스탄, 이집트, 필리핀의 정치현실과 포퓰리즘과의 함수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IT강국으로 강력한 규범에 의해 통제되는 민주주의를 실행하고 있는 싱가포르에선 포퓰리즘이 과연 어떤 의미를 띠고 있는지 이 나라 최고 매체인 <스트레이트타임즈> 기자출신인 아이반 림 아시아기자협회 전 회장의 분석을 통해 들여다봤다. <편집자>
[아시아엔=아이반 림(Ivan Lim) 전 <스트레이트타임즈> 선임기자, 아시아기자협회 2대 회장] 싱가포르 유력지 <스트레이트 타임즈> 선임기자를 역임한 필자는 몇달 전 <매거진 N>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필자는 이번 호 특집 ‘포퓰리즘’에 대해 준비하면서 그때 쓴 글을 다시 읽어봤다. 싱가포르 정치 이면에 숨겨져 있는 포퓰리즘의 뿌리깊은 배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으며 재인용한다.
“요즘 시대엔 블로거, 시민논객 등 온라인에 글을 올리는 모든 사람이 기자다.” 싱가포르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트 타임즈>에서 기자로 재직하다 사업가가 된 동료는 소셜미디어 출현이 기자들과 매체를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필자에게 페이스북, 트위터, 인스타그램, 링크드인, 텀플러 등 SNS 플랫폼이 불러올 세계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제시했다. 그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자유로이 글을 쓰는 시민논객이나 블로거와 달리 전통적인 기자들은 정확성과 신속성을 중시하며 공익을 추구하는 기사를 작성한다. 이러한 점을 간과한 채 기자를 불필요한 존재로 치부하는 것은 다소 어폐가 있다. 전통적인 저널리즘에 입각한 언론윤리가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이 시점에 이를 따르는 기자의 역할도 그만큼 중요해 지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일부 주류매체는 지난 몇 년간 친정부적인 성향을 보이며 신뢰도를 잃어왔다. 싱가포르에선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 여러 언어의 매체를 대량 발행하는 ‘싱가포르 프레스홀딩스’(SPH)가 정부의 관리와 감독을 받으면서 이러한 문제점이 두드려졌다. 그 결과 매체들은 집권당에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는 반면 야당에는 불리한 기사를 보도하거나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일방적인 보도 행태는 정치 엘리트들로 하여금 정부의 방향성과 정책에 대해 보다 객관적으로 보도하는 온라인 매체를 지지하게 만들었다. 야당이 이전보다 더 많은 의석을 차지한 2011년 총선 이후 싱가포르엔 정부에 대해 보다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웹사이트가 200곳 이상 생겼다. 집권당인 싱가포르 인민행동당은 페이스북 등 온라인에서 약세를 나타냈다. 이러한 연유로 싱가포르에선 집권당이 온라인 여론에 대응하는 단체를 조직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정치평론가 체리안 조지는 “흥미로운 점은 싱가포르의 온라인 공간이 현실세상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받아들일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스폰서의 실체가 불분명한 온라인 매체의 콘텐츠와 이른바 ‘인터넷 여단’을 통해 온라인 여론을 관리하는 정부는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다소 인용이 길어졌지만, 필자는 이런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당신은 꼭 해야할 말 뒤에 숨어 있어서는 안된다.” 머지않아 물러나는 ‘리셴룽 총리의 후계는 누가 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싱가포르의 언론들이 주목하는 주제다.
여당인 인민행동당 지도부는 지난 60년 가까이 집권하면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막대한 국력을 키우는 역할을 해왔다. 내각의 장관들과 의회 의원들은 현장의 시민들을 찾아 그들의 의견을 물으며 답변 또한 시원하게 해준다. 내년도 예산을 세우면서 정부와 의회 당국은 稅收 증대를 위해 국민들에게 입바른 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그것은 단어 5개로 이뤄진 다음과 같은 문장이다. “I promise you free lunches.” 즉 “나는 당신에게 언제고 점심을 대접할 준비가 돼 있어”라는 말 한마디면 얼마든지 국민들을 설득해낼 수 있다고 그들은 자신한다. 이 말속에 담긴 속뜻이 무엇인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1959년 독립 이후 싱가포르를 지배해온 리콴유 이후 지도자들은 높은 도덕성을 토대로 국민을 하나로 결속시켜 국가발전을 이끈 공로가 분명히 있다. 행정만능주의의 이 나라에 어두운 그림자는 정말 없는 것일까? 포퓰리즘으로 잘 포장된 정치가 없었더라도 60년 장기집권이 가능했을까?
싱가포르 언론과 정치 그리고 포퓰리즘의 삼각관계를 이처럼 잘 설명하는 말을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싶다. “정치인과 언론인이 별 생각없이 정부정책의 옹호에만 매달린다면 그들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추락하고, 민주주의 정신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 비용은 고스란히 유권자와 그 후손들의 몫으로 남겨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