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영상’ 디그롬과 ‘전설의 유격수’ 김재박

사이영상 디그롬(좌)과 전설의 유격수 김재박(우)

과거는 오래된 미래?···뉴패러다임의 서막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 의대 교수, 뉴패러다이머] 제이크 디그롬은 2018년 메이저리그에서 사이영상을 수상한 뉴욕메츠의 투수이다. 사이영상은 야구 역사상 유일한 500승 기록의 투수인 사이영을 기려 메이저리그의 최고의 투수에게 주는 상이다.

김재박은 선수로서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타자이자 가장 뛰어난 유격수로 인정받고 있으며, 현대유니콘스의 감독으로도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다. 둘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디그롬은 2018년 단지 10승만을 거두었다. 역사상 사이영상을 받은 투수 중 최소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디그롬은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유일하게 1점대 방어율을 기록했고, 26게임 연속 3실점 이하를 기록했다. 단지 불운했을 뿐이다. 야구에서 승리는 투수뿐이 아니라 타석에서도 힘을 발휘해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방어율은 순수 투수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는 투수에게서 다승을 최고 가치로 여겼으나 최근에는 방어율을 우선하는 추세로 바뀌고 있다. 1.7의 탁월한 방어율을 기록한 디그롬이 30명의 투표인단에서 29명으로부터 1위 표를 받아 사이영상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로리다 출신의 디그롬은 고등학교 때는 야구와 농구를, 야구장에서는 투수와 유격수를 병행했다. 한우물을 파지 않았던 디그롬은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했고, 대학으로 진학했다. 디그롬은 스텟슨대학 2학년까지 유격수로만 뛰다가 3학년부터 투수겸업을 시작했다.

유격수로 뛸 때 디그롬은 0.25의 타율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평범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투수로도 처음에는 패전처리용으로 사용되다가 선발투수로도 던지면서 4.48의 자책점을 기록했다. 이 정도의 대학리그 기록으로는 메이저리그에 명함을 내밀 수 없다.

하지만 뉴욕메츠의 한 스카우터가 볼넷을 거의 허용하지 않는 유연한 투구폼의 디그롬에서 미래를 보았다. 그러나 디그롬의 가능성을 모든 스카우터가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2010년 드래프트에서 간신히 9라운드만에 뉴욕메츠 지명을 받았고 겨우 9만달러에 계약할 수 있었다. 더구나 2011년 팔꿈치에 이상이 생겨서 ‘토미 존 수술’(척골 측부인대 재건술)마저 받았다. 도대체 이 나이 많은 투수의 미래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디그롬은 재활 중에 체인지업을 비롯한 새로운 무기들을 장착할 수 있었다.

유연한 투구폼으로부터 가볍게 던지는데도 148km을 기록하던 구속이 점점 증가해서 158km까지 기록하게 되었다. 2014년 드디어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을 수 있었고, 그 해 올해의 신인상을 수상했다. 디그롬의 투구능력은 특이하게 매년 발전하여 드디어 2018년 사이영상 수상에 이르렀다. 메이저리그 최고 투수로 등극하게 된 것이다.

김재박은 1971년 서울 대광고 유격수로 그해부터 시작된 봉황기 결승전에 출전했다. 대광고는 창단 1년 만에 결승전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했다. 하지만 대광은 당시 모든 대회 우승을 휩쓸던 투수 남우식이 이끌던 경북고에 0대1로 패했다. 경북출신이지만 어느 학교도 불러주지 않아서 그해 야구팀을 창단하는 서울의 대광고에 진학했던 김재박은 이번에는 서울의 어느 대학도 불러주지 않아 다시 대구 신생팀인 영남대로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남대에서 김재박은 괴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1974년 추계 대학리그에서 2학년인 김재박은 타격상을 받음으로써 최초로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다. 창단 팀인 까닭에 선수가 부족한 영남대에서 김재박은 투수로도 등장하면서 재능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영남대는 김재박의 대활약으로 대학리그 우승을 항상 다투는 팀으로 발전했다. 이 후 국가대표로 선발된 김재박은 유격수 외에도 투수로도 활약하며 위기 때마다 불을 끄는 역할을 담당했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보여준 개구리 번트는 김재박의 뛰어난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대광고가 팀을 창단하지 않았다면, 신생 영남대팀이 없었다면 김재박은 야구를 계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한국 대표타자 장종훈은 아예 연봉도 없는 연습생으로 프로를 시작했다. 김현수도 수비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드래프트에서 선발되지 못했고, 신고 선수로 프로야구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리그에서 비오는 어느 날 9회에 패전처리를 하기 위해 마운드에 오른 디그롬을 눈여겨 본 메츠의 스카우터가 없었다면 사이영상에 빛나는 디그롬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메이저리그 다저스의 최고의 마무리 투수인 켄리 젠슨은 몇년전까지 평범한 포수였다. 루키리그에서 4년을 보내는 가운데 어깨는 튼튼했으나, 타격이 형편없었던 젠슨이 포수로 성공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던지는 젠슨의 공이 대단한 커터인 것을 알아본 불펜포수 보젤로에 의해 투수로 보직이 변경되었고(젠슨은 자기가 던지는 공이 커터인지도 몰랐다) 오늘날 메이저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가 되었다.

우리는 과거를 보고 미래를 짐작한다. 하지만 과거와 미래가 직선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우리는 그 비선형으로 나타나는 미래를 짐작하는 유일한 방법이 과거를 보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야구의 스타들이 보여주고 있다. 야구뿐 아니라 숨어있는 천재들은 음악에도, 미술에도, 과학에도, 축구에도 숨어있다. 대한민국 축구가 여태까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스트라이커 황의조를 보라. 불과 몇 달 전 황의조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선발했다고 김학범 감독을 비난하던 많은 네티즌들을 기억한다.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것은 패러다임 안에 안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계속되었으며, 새로운 패러다임이 세상을 이끌었다는 사실을 역사는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새 패러다임에 두려움을 느끼고 기존의 안전한 패러다임을 벗어나지 못한 채 ‘우물 안 개구리’에 자족하고 있다.

과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현대과학의 패러다임은 물질이다. 물질 패러다임이라는 우물을 벗어나면 비교도 할 수 없는 넓은 세상이 펼쳐진다. 하지만 우리는 과거라는 패러다임으로 미래를 설계한다. 미래는 과거의 연속이 아니다. 편견 없는 현재로부터 시작한다.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잠재력을 살펴보는 것이 미래다. 디그롬을, 김재박을, 그리고 젠슨을 봐라. 숨어있는 보물들을 발견하고 싶다면 과거를 버리고 현재를 바라봐야 한다. 수도 없이 많은 보물들이 곳곳에 숨어있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필자는 뇌하수체 종양으로 종양과 함께 뇌하수체를 제거한 딸을 두고 있다. 그녀와의 특별한 인연으로 기존 물질과학을 넘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의 과학을 연구하고 되었다. 물질을 넘어서는 뉴패러다임 연구를 진행하면서 힐링과 생명과 우주를 제대로 편견없이 바라보게 되었다. 디그롬과 김재박이라는 엉뚱하게 보이는 인트로덕션의 본문은 뉴패러다임이다. 앞으로 뉴패러다임 과학으로 여러분을 만나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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