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문화①] ‘김치’,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들어간 까닭···밥상 위 ‘주연급 조연’
[아시아엔=박명윤 <아시아엔> ‘보건영양’ 논설위원, 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최근 우리나라는 가을은 너무 늦게 오고, 너무 빨리 떠나 우리를 아쉽게 한다. 들녘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가정에서는 김장준비를 시작한다. 농촌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무청으로 ‘시래기’ 건조작업을 시작하여, 잘 마른 시래기는 내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겨울철 별미’로 출하된다.
김장은 예로부터 가족들이 겨우내 먹을 김치를 준비하는 큰 행사로 지역마다 시기에 차이는 있지만 대개 11월 중순께 중·북부 지역을 시작으로 12월 중순까지 이어진다.
‘김장문화’는 2013년 12월 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김장은 가족이 기초가 된 공동체가 함께 만들고, 여러 세대에 걸쳐 전수됐으며, 독창적이고 유익한 발효식품인 점 등을 높이 평가받았다.
김치(Kimchi)가 세계화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어 1984년 LA올림픽에서 선수촌 공식 음식으로 지정되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도 선수들에게 제공되었다. 김치가 국제 스포츠 행사에서 부각된데 이어 2003년 사스(SARS)가 김치를 건강식품으로 각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즉, 사스가 아시아 전역에 퍼졌지만 유독 한국에서는 감염자가 거의 없었고 감염자도 건강을 회복했다. 이에 해외 언론들은 “한국인들이 김치를 먹어 사스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보도하여 김치의 명성이 확고해졌다.
옛적에는 밥과 김치가 추운 겨울을 살아내게 한 생명의 음식으로 사람들은 탄수화물과 단백질 등을 제공하는 밥을 식량, 무기질과 비타민 등을 제공하는 김치를 반식량(半食糧)이라고 불렀다. 김장은 한국인에게 특별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에 각 가정은 연료 준비와 함께 김장을 해둬야 했다. 김장김치를 짧게는 4-5개월, 길게는 1년 내내 먹어야 하기 때문에 집집마다 배추 수백포기와 무 수백개를 김장했다. 요즘엔 김장을 하더라도 4인 가족의 경우 배추 10-20포기 담그는 게 일반적이다.
1970년대까지 김장하는 날은 이웃끼리 ‘김장품앗이’를 했기 때문에 온 동네가 잔칫날 같았다. 또 친척 중심으로 품앗이 문화도 이어졌다. 과거에는 배추를 직접 구입하여 소금물에 절이고 다시 씻어서 물을 빼는 중노동이었다. 최근 김장을 고된 노동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로 인식하기 시작한 사회분위기와 함께 손쉽게 할 수 있게 한 ‘절임 배추’와 김치 양념이 등장했다. 이에 절임배추, 김치 양념 등 가공 형태의 재료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지금은 김치 하면 당연히 배추김치를 생각하지만, 배추는 20세기 전반까지도 귀한 식재료였다. 배추는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배추’란 시에 ‘청색 백색이 섞인 싱싱한 배추’로 처음 등장하지만 국이나 나물로 먹었다. 배추로 담근 김치는 17세기 후반 김수증(金壽增,1624-1701)의 <곡운집>(谷雲集)에 겨울 김치로 처음 나온다. 그러나 배추는 속이 차지 않는 비결구(非結球)형 배추로, 줄기 사이가 성글어 양념 속을 풍부하게 넣어도 자꾸 빠져나오는 단점으로 김치로는 드물게 사용했다.
오늘날과 같이 잎이 여러 겹으로 겹쳐서 둥글게 속이 꽉 찬 결구배추(heading chinese cabbage)는 중국 산동성에서 18세기 말 한반도로 넘어와 19세기 초반부터 국내에서 재배했다. 결구배추의 초록색 배춧잎을 벗기면 뽀얗고 노란 배추 속살이 드러난다. 과거에는 배추를 소금에 절이고 무채와 새우젓, 굴, 고춧가루를 배춧잎 사이사이에 집어넣고 독에 담아 땅속에 묻으면 김장은 끝이 난다. 그리고 방금 담근 겉절이 김치에 돼지고기 수육을 곁들여 막걸리 한 사발로 행복한 노동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