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혁명 두돌②] 박근혜는 ‘광화문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사진=느린걸음 제공>

10월 29일은 2016년 ‘촛불혁명’이 타오르기 시작한 날이다. 촛불혁명은 최순실씨의 국정농단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사유화 및 무능 등에 대해 시민들이 매주 토요일 자발적으로 모여 2017년 4월 29일까지 23차례에 걸쳐 열려 마침내 불의의 세력을 내모는 데 성공했다. 전국적으로 연인원 1700만명이 참여했으며,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 등 관련자 대부분 사법처리됐다. <아시아엔>은 촛불혁명 2주년을 맞아 비영리사회단체 나눔문화와 함께 ‘촛불혁명’의 의미와 주요장면을 되돌아본다. 지난해 1주년 즈음 나온 <촛불혁명>(김예슬 지음 김재현 외 사진 박노해 감수, 느린걸음 펴냄)을 바탕으로 이뤄졌음을 밝혀둔다.(편집자)

그날 또 그날, 그 겨울 밤과 봄의 그날들

“이게 나라냐” 울분과 부끄러움으로 촛불을 들고

“나라도 나가야지” 눈발을 뚫고 광장에 모여든 사람들.

슬픔과 분노로 타오르던 불의 사랑, 불의 혁명.

우리가 손에 든 것은 촛불이었지만

우리 가슴에 든 것은 혁명이었다.

 

전쟁 같은 노동을 마치고 난 고단한 주말을 바치며

광화문 전선으로 나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찬 바닥에 연좌한 100만의 ‘빛의 전사’였다.

100만 촛불의 함성과 포위 행진이 지축을 울릴 때

폭력보다 더 무시무시한 전율이 흐르지 않는가.

우리는 분노한 만큼 절제했고, 절박한 만큼 끈질겼고,

엄정한 만큼 명랑했다.

 

그렇게 우리가 해냈다.

내 작은 촛불 하나하나가 파도가 되어 나라를 망친

대통령을 탄핵시키고 촛불혁명 정부를 탄생시켰다.

그대는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아니라

살아서 이생에 나라를 구하신 것이다.

그대의 헌신과 의지로 이 빛나는 역사를 써낸 것이다.

1,700만 명이 183일 동안 이어간 유례없는

겨울혁명, 평화혁명, 그리고 승리한 혁명을.

 

악의 정점에서 선의 도약이

 

지난 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의 세월은

우리 사는 세상이 어디까지 나빠질 수 있을까,

사람은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를 되묻는 나날이었다.

청년들은 “헬조선”에서 “이민가자”고 희망을 내리쳤고

노동자들은 “해고는 살인이다” 줄지어 자살로 내몰렸고

끝내 저 세월호 참사가 온 국민의 눈앞에서 벌어졌다.

불안과 불신과 불만의 불덩이가 사람들의

가슴마다 폭발할 듯 쌓여가고 있었다.

 

혁명이 일어나는 데는 조건이 있다.

첫째, 불평등의 양극화와 희망의 고갈.

둘째, 지배 권력의 부패 무능과 분열 정도.

셋째, 저항 주체의 의식의 높이와 조직성.

그런데 결정적인 것은 운, 시운時運이다.

우연하고 돌발적인 사건이 역사의 조명탄이 되어

악의 실체가 번쩍 드러날 때, 혁명은 행진을 시작한다.

 

촛불혁명을 일으킨 심층의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7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지난 10여 년간 급속히 심화된 불평등의 양극화와

‘현대화된 가난’, 그리고 인간 소외라는 ‘삶의 고통’.

 

그때 “돈도 실력이야, 네 부모를 원망해” 정유라가

말을 타고 뛰어들며 혁명의 성화를 봉송했고,

박근혜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그러니까

저 40년 검은 조직의 ‘비밀정부 국가내란’ 사태가

드러나자 혁명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아버지 박정희가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면

그 딸인 박근혜는 ‘광화문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누가 이런 역사의 대반전을 기획할 수 있었을까.

성찰 없는 인간의 길은 그의 성공이 그의 복수다.

정점에 달한 악은 선의 도약대가 되어 무너진다.

 

아이야 가라, 너의 길을 가라

 

우리는 너무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겪어야 했지만

분명한 것은 이것이다. 그래도, 역사는 전진한다!

비틀거리고 쓰러지고 좌우로 굽이치면서도

정의와 민주와 자유 쪽으로 진보해온 역사다.

우리 모두는 혁명의 아이들이다.

오늘의 나는 앞서간 이들이 울며 씨 뿌려 놓은

혁명의 이삭을 따먹고 자라났다.

 

흰 옷을 피로 물들이며 전진한 동학농민들,

눈보라와 이슬 속에 떨며 총을 든 독립운동가들,

3.1운동과 4.19혁명과 5월광주와 6월항쟁과

얼굴도 이름도 남김없이 헌신한 의로운 사람들.

그렇게 이뤄낸 민주화의 되돌릴 수 없는 토대 위에서

단 한 명도 죽지 않고, 단 한 명도 구속되지 않고,

세계 초유의 평화혁명인 촛불혁명을 써낼 수 있었다.

 

살아있는 모든 이는 죽은 자를 딛고 서 있다.

사랑이 너무 많아 앞서서 나아가 쓰러진 자,

자신을 기꺼이 불살라 저 높은 곳에서 빛나는 자,

나의 걸음마다 디딤돌과 이정표가 된 선인들.

그들이 우리 등 뒤에서 아이야 가라, 너의 길을 가라,

다치지 말고 지치지 말고 뒤돌아 보지 말고 가라고

촛불을 든 우리를 받쳐주고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있는 권력을, 무장력을 장악한

현직 대통령을 헌정 질서 내에서 파면하고 구속했다.

민주공화국의 헌법이란 민중의 피로 쓴 계약 문서다.

오늘 우리 헌법은 독립운동과 민주항쟁을 통해

만들어낸 위대한 유산이자 공동의 약속이다.

헌법 전문의 검은 활자 속에는

민중의 함성과 비원의 눈물이 살아있고

의인과 열사들의 붉은 피가 흐르고 있다.

박노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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