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산업혁명의 주역 ‘인공지능’과 생명윤리 어떻게 조화시킬까?
[아시아엔=서정화 DK그룹 회장, 전 국회의원, 전 서울대총동창회 회장] 앞으로 20∼30년 이내에 일상화될 AI와 기후변화, 공기오염, 대양오염, 미국을 덮친 허리케인 ‘하비’ 등의 현상과 관련 4차 산업혁명의 주역인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인간감성 지능을 어떻게 육성할 것인가? 세계 자본의 이익추구(과학기술, 정보의 독점)를 어떻게 규제, 통제하고, 인간의 자유와 권리를 지켜낼 것인가?
유사 이래 인간의 길은 욕망, 약탈, 자본추구의 길로 치달려 왔다. 그 수단이 자본을 등에 업은 과학의 무자비한 자연파괴와 전쟁 등으로 인한 자연재앙을 심화시키고 있다. 자연생태계 파괴와 이용을 바탕으로 한 과학기술의 시민적 통제라는 관점에서 생명·인간·과학·기술 등에 대한 학문적 노력과 과학 오만에 따른 오늘의 환경, 생명경시 문제점을 지적하고, 미래 대응을 위한 과학관의 변화 방향을 생명윤리의 관점에서 제시해 본다.
첫째, 생명과 자연은 인공을 어떻게 얼마만큼 활용해야 하나? 과도한 인공기술과 자본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둘째, 노벨상 수상자들의 인류미래 ‘재앙’ 예측은 인구폭발과 환경재앙, 핵전쟁, 전염병, 인간의 부정적 심성, AI, 마약, 페이스북 등을 들고 있다. 환경의 ‘보복’과 과학의 오만에 대한 자연과 생명중심적 접근이 긴요한 시점이다.
21세기의 화두는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GNR(유전공학, 나노기술, 로봇공학)로 통칭되는 의학적인 성형·장기이식·복제·인공장기·나노기술의 발달·생명공학·게놈 프로젝트 등으로 표현되는 ‘인공’의 절정에 과학과 ‘기계’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변형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근거가 된다.
뉴턴에 의해 완성된 과학혁명이 우리에게 남기고 간 것은 바로 시계의 톱니바퀴를 이해하고, 그 작동을 조절할 수 있는 것처럼, 자연의 작동원리도 같은 방식으로 이해하고 재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 혹은 자만심이다. 자연적인 몸과 인공적인 기계의 만남의 신조어 ‘사이보그’(Cybermetics+Organism)가 오늘날의 세계관을 대변하는 메타포다. 인공심장이 몸에 부착되고, 인공귀는 전기전자공학이, 조직공학은 장기를 인위적으로 배양시킨다. 우리의 몸(또는 자연)은 자신의 의지와 타자의 의지가 언제나 개입 가능하게 되고, 부착된 ‘기계’는 기계 이상의 의미를 띠게 되었다.
빌 조이는 과학기술문명이 파생시킨 문제는 첫째 자본주의 경제체제, 둘째 인간의 이기적인 물질적 탐욕, 셋째 도덕의식의 결핍, 넷째 근시안적이고 미시적인 지적 시각에서 유래한다고 경고했다. 기술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석학들은 기술 영역을 넘어 철학과 윤리학의 뿌리로 되돌아가야 한다고도 말한다. 기술이 한계를 넘나들수록 그에 걸맞은 심오한 인문학적 해결책을 항상 모색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0세기 대량파괴 무기로 사용된 NBC(핵·생물·화학) 중심의 기술들이 대부분 정부기관의 실험실에서 개발된 군사용 기술들이었다면, 21세기 GNR 기술들은 명백히 상업적인 용도를 가지고 있으며, 거의 예외 없이 기업들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상업주의가 기승을 부리는 이 시대에 테크놀로지는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엄청난 돈벌이가 되는 거의 마술적인 발명품들을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다. 인류는 현재 전 지구적 자본주의 체제와 그 속의 다양한 경제적 인센티브와 경쟁압력 내에서 이들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제시하는 약속들을 공격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윤리와 과학의 상보와 합의된 비전 제시가 과제다. 즉 과학기술은 가치와 도덕의 인도를 받을 수 있도록 사회 윤리적 정초가 재정립되어야 한다. 인간의 삶에서 결정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사안에는 반드시 과학적인 사실의 파악과 더불어 인문적인 직감과 비판이 상보적으로 요청되는 것이다.
그러한 가치와 도덕관의 제시는 인문학의 역할이며, 책임이다. 즉 과학기술은 인류의 공존공영과 자연보전을 위해 사용하여야 하며, 후손을 위해 기술은 통제받고 절제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윤리관이다. 이러한 윤리관을 세분하면, 과학기술문명의 역기능 해결을 위해서는 첫째, 거시적인 차원에서 과학적 진리와 과학기술의 근본적 의미의 재검토, 둘째, 목적과 수단의 관계 재고, 셋째, 집단적인 지혜의 창출, 넷째, 도덕의 근원적 토대로서 타자와의 공존, 이타주의 원칙의 실천 토양 구축을 제도화하는 일이다.
인공지능 제작과 관련, 윤리적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지침 마련을 위한 움직임이 늘어나고 있다. 2016년 9월 구글의 지주회사인 알파벳, 아마존, 페이스북, IBM, MS 등 5개 IT 기업들은 모임을 갖고 토의를 시작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윤리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영국의회는 보고서를 발표하고, 윤리 지침을 마련하기 위한 모임을 갖겠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인공지능 관련 윤리적인 문제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며 지침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국제기구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미국 전기전자학회(IEEE)는 올초 ‘Ethically Aligned Design’이란 제목의 문서를 발표했다. 136쪽의 이 문서는 인공지능 제작에 앞서 관심을 기울여야 할 4가지 쟁점을 제시하고 있다. 인권, 책임, 투명성, 교육이다. AI 제작에 앞서 인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그 여부를 판단해봐야 하며,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그 책임 정도를 물을 수 있는 잣대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래사회의 교육은 로봇이 할 수 없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교육해야 하고,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사회의 도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인간들은 연대하여 인공지능이 할 수 없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인공지능 사회에 대비한 적합한 윤리를 개발하고 자본 축적에 대한 무한한 욕망을 가진 인간들에게 적합한 윤리교육이 더욱 중요해지는 사회가 될 것이다.
자연의 도덕적 지위
급속도로 발전한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은 더 극적이다. 인간은 생명공학 기술의 힘을 통해 완벽해지려는 항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급기야 인간을 복제할 수 있는 가능성의 문턱까지 다다랐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생명공학 기술의 발전이 밝은 전망과 어두운 우려를 동시에 안겨준다고 말한다. 밝은 전망은 인간을 괴롭히는 다양한 질병의 치료와 예방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고, 어두운 우려는 우리의 유전적 특성을 마음대로 조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생명윤리를 둘러싼 다양한 도덕적 난제들을 제시하면서, 인간 생명의 근원을 재설계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에 관한 도덕적 판단을 촉구한다.
이 문제와 씨름하려면, 현대사회에서 거의 간과되고 있는 문제들과 마주할 필요가 있다. 바로 자연의 도덕적 지위에 관한 문제, 이 세계에서 인류가 취해야 할 적절한 태도에 관한 문제가 그것이다. 스티븐 호킹은 앞으로 100년 이내 인류가 멸망하거나 우주 진출을 예측하고, 에릭 뉴트는 2050년 전염병으로 인류문명 몰락을 예측했다. 즉 2300년경 인구가 1000억에 이르고, 온실효과로 동식물 75%가 멸망하게 된다고 보았다.
유사 이래 인간의 자율적 욕망 통제 역할은 인문학의 주요 역할이었으나, 급속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적절한 통제능력을 상실하고, 사회적인 전통의 붕괴, 가치관의 침식, 위기사회의 대두 등에 대한 대안이나 통제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생태위기와 인류대재앙’을 안고 사는 인류의 미래행복을 위해서는 자연관의 변화와 인문학적 통제와 가치관의 정립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기계와 인간의 미래와 현실 및 특히 GNR의 유익성과 위험성에 대한 시민적 인식 및 통제 필요성에 대한 공감확산과 제도화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유사 이래 인류 3000여년 역사가 지리적, 인식적 경계를 넓히기 위한 외면성장에 치중하고 그 결실을 얻어 왔다면, 이제 21세기는 내면가치 중시로 그 관점을 전환시켜야 할 때이다. 왜냐하면 오늘은 근대성에 토대를 둔 절대적인 진리와 권위가 부정되고 인공적 과학기술에 기반을 둔 상대적이며 불확실한 다원적 가능성들이 미래로 향하여 열려 있는 21세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