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권오현 회장과 ‘나비의 꿈’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지난 10월 23일자 중앙일보 배명복 대기자 ‘초격차(超隔差)의 평범한 비밀-진솔함, 겸손, 무사욕’이라는 칼럼이 이 사회의 지도자에게 주는 교훈이 아주 큰 것 같아 소개한다.
“크든 작든 조직을 이끈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조직을 책임진 리더는 항상 세 가지를 자문(自問)해야 한다고 권오현(66) 삼성전자 종합연구원 회장은 말한다. ‘내가 맡은 이 조직은 구성원 스스로 알아서 일을 하고 있는가.’ ‘우리 구성원은 서로서로 협력하고 있는가.’ ‘조직에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그것을 드러내놓고 해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리더가 일일이 개입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굴러가는 자율적인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만드는 것이 리더의 임무란 얘기로 들린다.
권 회장은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쓴 일등공신 중 한 명이다. 창업자인 고(故) 이병철 회장의 결단으로 삼성전자가 반도체 사업에 진출하고 2년이 지난 1985년 반도체 개발 연구원으로 입사해 삼성전자 대표이사 회장까지 올랐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미국의 인텔을 누르고 세계 1위의 반도체 기업으로 등극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권 회장은 지난해 243억원(특별상여 148억원 포함)의 연봉을 받았다. 그는 2015년부터 3년 연속 국내 전문 경영인 중 ‘연봉 왕’ 기록을 세웠다.
그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초격차>란 책이 요즘 세간의 화제다. 그는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세 가지를 꼽는다. ‘진솔함’(integrity), ‘겸손’(humility), ‘무사욕’(no greed)이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유·불리에 상관없이 당사자들과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자세가 그가 말하는 진솔함이다.
자신에게 부족한 게 있다면 누구에게라도 배울 수 있다는 생각, 동료와 직원 등 타인에 대한 예의 바른 행동이 권 회장이 정의한 겸손이다. 그리고 개인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부정한 행동을 하거나 편법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자세가 ‘무사욕’(無私慾)이다.
통찰력, 결단력, 실행력, 지속력 등 리더에게 필요한 다른 덕목은 훈련을 통해 익힐 수 있지만 진솔함, 겸손, 무사욕 같은 내면의 덕목은 일정 부분 타고나는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사람을 쓸 때도 겸손과 예의를 중시한다. 인재를 고르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제외할 사람부터 솎아내는 나름의 방법을 쓴다고 한다.
권 회장이 배제하는 1순위가 오만하고 무례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입사하거나 승진하면 반드시 조직을 망가뜨리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부터 후보군에서 제외한다는 것이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입시가 있던 시절, 권 회장은 원하던 서울의 명문 중학교와 명문 고등학교 입시에서 낙방하는 좌절을 맛보았다.
학부와 석·박사 과정은 국내외 최고 명문학교를 나왔지만, 어린 시절 두번의 입시 실패는 큰 상처였을 것이다. 삼성전자에 입사해서도 먼저 승진한 후배 밑에서 8년이란 인고의 세월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발견하고 실패에 대한 내성(耐性)을 키웠다고 한다. 원하던 명문 중·고교에 갔다면 어려서부터 기고만장해졌을 것이고,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라는 게 그의 고백이다.
솔직히 나는 남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차이, 즉 초격차를 가능케 한 리더십에는 뭔가 대단한 비밀이 숨어 있을 걸로 기대했다. 하지만 권 회장이 공개한 비결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평범’하다. 진솔하고, 겸손하고, 사리사욕 안 채우는 사람을 리더로 발탁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 스스로 알아서 굴러가는 조직을 만들면 성공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삼성의 ‘반도체 신화’는 상식과 순리를 좇은 결과란 얘기다.
시간이 흐른 뒤 “그때 그가 그런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먹고살 수 있게 됐다”는 평가를 받는 리더가 진짜 훌륭한 리더라고 권 회장은 말한다. 그는 ‘내 임기에 모든 것을 해치운다’는 태도는 매우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리더가 그런 태도를 보이면 모든 구성원이 늘 짧은 호흡으로 단기성과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길게 보는 사람,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라는 지적이다.
이윤 창출이 목적인 기업경영과 국리민복(國利民福)이 목표인 국가 경영이 같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미래를 내다보고 부단하게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은 기업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리더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미래를 향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비로 우화(羽化)하지 못하고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애벌레 신세를 면키 어렵다.
권 회장이 말하는 이상적인 조직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런 조직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리더가 할 일이다. 기업도 그렇고, 국가도 그렇다. 그런 리더가 많을수록 대한민국은 더 나은 나라가 될 것이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 아닌가? 장자의 설화에 ‘나비의 꿈’(胡蝶之夢)이라는 것이 있다. 꿈속에서 나비로서 팔랑 팔랑 날고 있다가 깨어났지만 과연 자신은 나비가 된 꿈을 꾸고 있었는지,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자신은 나비가 꾸고 있는 꿈인가 하는 설화다.
이 설화는 ‘무위자연’이라는 장자의 생각이 잘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서 유명하다. ‘무위자연’을 장자의 말로 하면 ‘소요유’(逍遙遊)가 되어, 그것은 목적의식에 묶이지 않는 자유로운 경지이며, 그 경지에 이르면 자연과 융화해 자유로운 삶의 방법이 생긴다고 하는 말이다.
‘앎’에는 어떤 확실한 판단은 없으니까,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앎의 판단으로부터 떨어져 보면, 차이나 구별을 넘은 세계가 보인다. 이것이 장자가 말하는 ‘소요유’의 세계다. 장자가 나비의 꿈을 통해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지도자가 진리를 깨닫지 못하면 나비로 우화(羽化)하지 못하고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애벌레 신세를 면키 어렵다. ‘경륜통우주 신의관고금’(經綸通宇宙 信義貫古今). 우리 경륜은 우주에 통하고, 신의는 고금을 일관하는 지도자가 되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