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 터키출신 알파고 기자 묻다 “소설이란 내게 무엇인가?”
매년 이맘때만 되면 때아닌 설렘 속에 ‘맘살’을 앓는 이가 있습니다. 아날로그 시대의 소중한 것들이 사라져가는 중에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신문사 ‘신춘문예’를 준비하는 이들입니다. 이들 가운데 소설 지망생이 특히 더 그렇습니다. <매거진N> 독자께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적이 있으신지요?
매거진N 8월호 스페셜리포트는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는 셰익스피어의 고국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소설, 아라비안 나이트로 대표되는 아랍세계의 소설을 독자들에게 소개합니다. 또 ‘소설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을 던지며 잊혀져온, 혹은 잃어버린 소설에 대한 꿈을 다시 꾸어봅니다. 영화로 만들어진 소설은 어떤 게 있으며, 그들은 왜 대부분 실패의 길을 갔는지 등을 함께 들여다 봅니다.<편집자>
[아시아엔=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필자는 소설이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설렌다. 왜냐하면, 내게는 아직도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없지만 매번 이 질문의 답변을 찾는 게 늘 유쾌하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에 와서 필자에게 소설은 더욱 신기한 존재가 되었다. 얼마 전에 필자의 시인 친구인 지핫 두만(Cihat Duman)이 <사건은 베이오굴루에서 벌어졌다>(Olay Beyo?lu’nda Ge?iyor)라는 제목의 소설을 내면서 소설이란 단어에 더 집중하게 되었다.
필자는 그 시인 친구를 터키에서 2013년 여름 발생한 ‘게지공원 시위’로 알게 되었다. 그는 게지공원 시위 당시 민주화운동을 하면서도 계속 시를 썼다. 이미 시집 몇권을 내고 문학상도 받은 이 친구가 뜬금없이 소설을 낸 것이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와 소설은 문학에서 완전히 다른 두개의 장르다. 시인이 좋은 소설을 쓴 적이 거의 없고, 소설가가 좋은 시를 쓴 것도 드문 일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묻었다. “왜 갑자기 소설을 썼어? 너 시인 아냐?” 나는 내심 친구가 문학적으로 답변해주길 기대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 “알파고 기자, 난 게지 사태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그때 거기서 일어난 사건들을 일일이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싶었어.”
그는 역사에 남기고 싶은 현상을 문학기법을 통해 기록물 이상의 작품으로 내려 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시작한 이 과정이 작가로서의 예술적 감각이 발동해 결국 예술작품을 쓰게 됐다는 것이다.
필자는 그의 답을 통해 이런 깨달음에 이르게 됐다. 분노든 행복이든 혹은 또 다른 감정이든, 소설가는 본능적으로 무엇인가를 기록하고 싶을 때 그 욕구는 문학적 흐름을 타고 소설로 표출된다는 사실 말이다.
많은 학자들이 인류의 첫 소설작품으로 인정하는 <겐지 이야기>를 예로 들자. 이 작품은 11세기 일본 여성작가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 덕분에 궁으로 들어가 고급교육을 받은 후 시인이 되었다. 그녀가 쓴 이 소설은 급이 떨어지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 황제의 아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자 관점에서 보면 무라사키 시키부는 앞에서 언급한 터키의 시인 친구처럼 궁에서 보고 느꼈던 것을 기록하기 위해 시작했고, 시인으로서 쓰려던 그 산문이 상상 과정을 거쳐 소설로 변신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술가들은 어떤 사회현상이나 심리적 감정이나 종교 혹은 철학적 깨달음을 기록하는 욕망을 느낀다. 바로 이러한 본능이 여러 감정과 합쳐져 한 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지면 그때 비로소 명작이 탄생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작품들은 때로는 인간에게 정치적으로 도움을 주고, 때로는 심리적으로 위로가 되며, 때로는 철학적으로 큰 빛을 비추곤 한다.
소설 원작으로 히트 한 드라마나 영화 혹은 뮤지컬이나 연극작품의 성공 뒤에는 이러한 원리가 작동하지 않을까 싶다. 정치 풍자의 아이콘이 된 조지 오웰의 <1984>, 한국 영화시장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공하며 한국영화를 국제무대에서 등장시킨 백동호의 <실미도> 등이 그렇다.
그뿐 아니다. 동서양 문명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터키의 애매모호한 국민성을 섬세히 묘사한 덕택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내 이름은 빨강> 역시 이 관점에서 다시 보면 “소설이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 질문에 어느 정도 일치하는 답변을 찾았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시인 지핫 두만(Cihat Duman)은 최근에 MBC에서 방송된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 터키편에 출연하여 한국에서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알파고 편집장님 글 잘 읽었습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