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의 ‘치매’ 주장에 대한 또다른 ‘시선’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명예회장] 인간이란 착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존재일까? 전두환 전 대통령이 8월 26일 자신의 회고록 관련 재판에 출석하지 않겠다고 측근을 통해 밝혔다. 전두환씨는 민정기 전 청와대 비서관 명의의 입장문을 내고, 2013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어 27일로 예정된 재판에 나가기 어렵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목격했다는 고 조비오 신부의 증언이 거짓이라고 언급했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이 가물가물한 사람이 회고록을 써서 출판까지 했다니 참으로 납득이 안간다.
80년 5월 광주의 참혹했던 양민학살을 생각하다 보면, 도대체 인간의 성품은 착한 것인가 아니면 악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 문제는 예로부터 성리학의 심성론에서 크게 논의된 것이다.
성품설(性品說)에는 성선설·성악설·무선무악설·혹선혹악설·성삼품설 등이 있다. 우선 대표적인 몇 가지만 알아보자.
첫째, 맹자(孟子)의 성선설.
인간의 본성은 선한 것이기 때문에 인의예지(仁義禮智)를 갖추었고, 거기에서 측은지심(惻隱之心),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나타난다고 한다.
둘째, 순자(荀子)의 성악설.
인간의 성품은 원래 악하며 선하다는 것은 위선이며 거짓이라 한다. 인간의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온갖 부정부패, 위선, 죄악 등은 악하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라 이러한 악을 선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예의나 교육이 필요하다는 설이다.
셋째, 고자(告子)의 무선 무악설.
고자는 성품을 천명(天命)으로 본 것이 아니라 식욕·색욕 등 자연적인 욕구로 보았기 때문에 삶의 욕구에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고 주장했다.
넷째, 양웅(揚雄)의 혹선 혹악설.
사람의 성품은 때로는 선하기도 하고 때로는 악하기도 하다는 주장.
넷째, 한유(韓愈) 성삼품설.
인간의 성품은 세 가지 계급이 있다. 상등의 사람은 가르치지 않아도 선하고, 중등의 사람은 가르치기에 따라 선하기도 악하기도 하며, 하등의 사람은 어떻게 할 수도 없는 악한 것이라고 하는 설.
다섯째, 불교의 입장.
인간의 본래 성품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언어도단(言語道斷)의 입정처(入定處)라 선악(善惡)·미추(美醜)·염정(染淨)·시비(是非)·장단(長短)·정사(正邪) 등의 분별이 없다고 한다. 그러니까 상대적인 일체의 분별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성품의 체(體)를 강조한 것이다.
여섯째, 원불교의 입장.
소태산(少太山) 부처님께서는 정(靜)과 동(動)의 입장에서 성품을 파악하고 있다. 정은 체요 동은 용(用)이다. 정의 입장, 곧 체의 입장에서는 모든 분별이 끊어졌기 때문에 선도 없고 악도 없는 무선 무악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동의 입장, 곧 용의 입장에서는 사람의 성품은 능선 능악이 된다. 능선 능악이라는 것은 선악의 주체가 대상, 곧 경계(境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 그 자체에 있다. 곧 사람의 자기 선택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원불교다.
어느 설이나 일장일단이 있다. 흔히 살인을 하거나 도둑질 등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주위의 환경 탓을 잘 한다. 환경만 좋았더라면 결코 나쁜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현실 경계에 책임을 돌린다. 그러나 아무리 가난하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다 도둑질을 하는 것은 아니다. 즉, 죄를 짓는 원인은 경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있다.
정약용은 인간의 성품을 착하다고 보았다. 그런데 어찌하여 오늘날에는 오히려 악한 행위를 하고도 부끄럽거나 수치스럽게 여기지를 않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광주의 5월에 그렇게 많은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고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뻔뻔스럽게 잘만 살고 있는 사람들, 국법을 어기고 국정을 농단한 범행으로 국민의 미움을 사면서도 자신은 아무런 죄가 없다고 태연하게 살아가는 이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전두환의 치매는 아마도 그가 수 없이 저지른 악행의 과보(果報)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치매는 인간으로서는 더할 수 없는 형벌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성품이 정한 즉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동한 즉 능히 선하고 능히 악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