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우 배한성, 연극인 박용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시아엔=이상기 기자] 28일 85세를 일기로 별세한 원로 연극인 박용기 선생은 1954년 12월 KBS 성우 1기로 방송 생활을 시작해 CBS와 TBC를 거쳐 불교방송에서 활동했다. 그는 성우로 출발해 라디오드라마 연출과 연극 연출 그리고 연극배우와 TV 드라마 배우로도 활약했다.
박 선생은 후배들 가운데 송도순·배한성씨를 특별히 아꼈다고 한다. <아시아엔>은 배한성씨로부터 박용기 선생의 삶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배한성씨의 박 선생에 대한 회고다.
“젊어서부터 도인같고 스님같은 풍모로 선배 세대들은 박 선생님을 ‘박공’이라 불렀다. 키가 아주 작으신 선생님은 강단 있고 자애로운 스승이셨다.
선생님이 설립한 극단 ‘고향’을 얼마나 아끼시는지 봉급 받으면 집에 가져가는 것보다 극단에 쓰는 게 훨씬 많았다.
KBS 1기 성우로 출발해 효과, 음향, 음악 등으로 장르 넓히셨다. 고은정·김수일·오승룡 선생이 성우 동기시다.
라디오 연출 때 작가들이 고맙다고 테이블 머니를 가져오면 ‘당신도 어려운데 원고 두달 쓰고 열달 놀지 스무달 놀지 모르는데 집에 가서 애들 교육비 보태라’며 돌려줬다. 인사 갔던 작가들이 머쓱해 하는 걸 여러번 봤다. 그분은 연극같이 돈 안 되는 것만 쫓아다니신 분이다. 그분의 청빈은 후배들에게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열정과 애정은 그분의 또다른 이름이다. 말씀으로 ‘너 잘한다’는 말씀은 안하셔도 눈빛으로 이미 말씀하고 계시다.
선생님은 한마디로 올곧고 원리·원칙주의자시다. 기본에 무척 충실하신 분으로 사심 없으시고 누구에게나 존경받으실 만한 분이셨다.
박용기 선생님은 평생 방송과 연극과 산을 사랑하신 분이다. 지리산 종주때 동행한 적이 있는데 그렇게 산을 좋아하시는 분은 별로 만날 수 없었다.
사모님과 미국에 사는 딸 아들이 있다. 너무나 한국적인 분으로 김치와 된장이 없으면 안되는 분이신데 자녀들이 사는 미국에 가셔서 어떻게 지내셨는지···.
한국에 오시면 송도순씨와 나에게 연락하셔서 식사를 모시는 게 참 좋았다. 차비 하시라고 조금이라도 드리면 그렇게 기뻐하시던 모습이 선하다.
방송생활 50년 해도 그 어른 같은 분이 몇 분 남지 않으셨는데, 자다가도 ‘그 어르신’ 할 정도이신 선생님이 그립다.”
배한성씨는 “28일 저녁 해비타트운동본부와 인도네시아 봉사활동에 가야 해 마지막 배웅을 못해드려 너무 송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