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왜 남에게 인정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나
이 글의 필자인 박상설 선생이 ‘아시아엔’ 창간 4주년 기념 금강송과 나란히 서있다. 박 선생은 “남의 인정받기 보다 자신을 관조하며 자연과 더불어 사는 게 행복의 첫걸음이자 최선”이라고 말한다.
[아시아엔=박상설 <아시아엔> ‘사람과 자연’ 전문기자, 캠프나비 대표, <잘 산다는 것에 대하여> 저자] 고통의 근원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남들은 모두 다 행복해 보이고 희희낙락하는데 나만 왜 이렇게 괴로울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느낄 때가 자주 있다. 이처럼 남과 비교할 때 상대적 빈곤감, 열등감은 점점 커지며 실망한다. 이렇게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인간은 크고 작은 고통을 수없이 겪는다.
자기 실수로 넘어지거나 버스를 놓쳤거나 하는 자기에게 귀결되는 고통은 쉽게 가라앉지만 인간관계에서 야기되는 감정은 심각하다. 상사로부터 업무에 대하여 야단을 맞거나 친구에게 무시당하는 등의 괴로움은 자주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애인간에, 부부간에 가족간에도 늘 인정받고 싶어하는 동기로 갈등을 겪는다. 또한 업무상이나 타인과의 교류에서도 같은 맥락의 진통을 받는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상대적 인간관계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조롱이나, 비난, 모함, 무시 등 인권의 손상을 받을 때는 심각한 적대감과 자포자기自暴自棄에 휘말린다. 이런 것은 또한 남들과 공존해야 하는 사회공동체에서 남들과 더불어 형성된 사회적 관계는 폐기할 수도, 거역할 수도 없다. 기본적인 사회적 ‘질서’ ‘법’ ‘제도’는 개인이 좌지우지할 수 없는 이미 태어나기 이전부터 형성된 제도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열망한다. 하지만 삶의 현장에서는 불행하게만 느껴진다. 이 불행은 인간의 다양한 욕구 때문이다. 불행과 행복을 느끼게 되는 동기는 무엇인가? 인류는 공감사회共感社會를 다양하게 이룩해오며 타인으로부터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본능적 욕구로 확산되어 왔다. ‘인정욕구’는 변화무쌍한 이해함수로 얽혀있으며 사람들 사이에 서로 소외되지 않는 인정 마지노선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의 구속성을 고려할 때 우리의 욕구는 전적으로 충족되기 어렵다. 사회적 요구조건이 지닌 구속성이 크기 때문이다. 나의 욕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의 욕구와 연관되어 있고 그래서 어느 누구에게나 타인으로 인해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일이 빈번히 생긴다. 계획을 실행하는 과정에서 타인과 만나게 되고 그들이 지닌 서로 다른 욕구로 인해 충돌이 발생한다.
갈등과 충돌이 생긴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자신의 욕구가 타인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반대로 자신도 타인의 욕구를 인정 못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갈등과 고통을 완화시키기 위해 나의 욕구가 정당하다는 것을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은 공동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
철학과 사상을 전하려는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의 생활에서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는 생각 하나하나, 몸짓 하나하나, 호흡 하나하나 몸과 마음으로 곱씹어본다. 이를 배움이라 하지 않고 삶이라 하자. 인간의 삶은 동감同感의 세상이다. 인정과 동감은 다른 뜻을 갖지만 동감을 전제로 한 수긍이 인정이다. 동감의 그래프를 그리며 인정으로 이르는 궤적이 인생살이다.
인간욕구의 두 갈래-자연적 욕구와 의식적 욕구.
사람이 욕구를 느끼는 것은 자신에게 무엇인가가 결핍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할 때 결핍을 느낀다. 욕구와 행복은 사람과 시대에 따라 다르며 그만큼 다양하다.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을 욕구(need)라 하고 이에 비해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을 원하는 경우를 욕망(desire)이라고 한다. 욕구는 인간에게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욕망은 간접적인 필요다.
욕구와 욕망은 인간본성의 발현과 계발이라는 인성이 담겨져 있다. 인간의 욕구는 자연적 욕구와 의식적 욕구로 크게 나눈다. 자연적 욕구는 본능적으로 무의식 속에 발생하는 욕구이다. 이에 반해 의식적 욕구는 자발적으로 의식해서 발생하는 비자연적 욕구다. 이는 의도적 의지에 의한 욕구로 사회적 욕구라고도 한다.
‘인정욕구’는 자연적 욕구와 의식적 욕구의 표상이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생명을 유지하고 몸을 보전하는 것이며 의식주와 관련된 본질적인 충동이다. 이런 개체 보존 욕구도 있지만 종족 보존욕구도 있다.
인간에게는 3대 본능적 욕구가 있다. 먹는 것, 성생활, 쾌락추구다. 생명유지를 위해 먹는 것이 아니고 먹는다는 욕구본능이 생명을 유지한다. 종족을 이어간다는 의도적 섹스가 아니고 참을 수 없는 생태적 본능 욕구의 소산이 섹스다. 시도 때도 없이 몸을 편하게 하고 즐기려는 욕구본능으로 쾌락을 욕망한다.
인간은 아무리 잘 먹고 섹스를 마음껏 즐기고 쾌락의 늪에 빠져도 결국에는 늙고 죽는다. 이러한 극복 불가능한 운명으로 인해 갖게 되는 허망과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다른 고통과 비교 안 되는 인생 최고의 아픔이다. 한계 극복에 대한 욕구는 유한성을 극복하는 것이다. 반대로 고통을 없애기 위해 무한성과 영원성 즉 불멸성을 갖고자하는 허황된 망상으로 삶을 왜곡하기도 한다.
의식적 욕구에 대한 자각
자연적 욕구로는 실현하기 어려운 ‘자유’ ‘창조적 이성’ 등은 의식적 욕구에 의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고 한다. 이를 ‘인정욕구’라고 하며 독립적 인격체로 인정받으려는 욕구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는 자기고유의 자유로운 욕망을 실현하려는 측면이 담겨져 있다. 자기의식은 자신을 외적인 자연물처럼 대상화시키는 그 대상화 속에서 인식되는 것은 바로 자신이다.
자기의식은 나라는 대상을 통해 나를 반성하는 활동이므로 자기의식은 자기를 자성하는 활동이다. 이렇게 자신의 독립성을 정립하고 반성하는 활동성을 지닌 사람은 자유로운 존재가 되며 그 자유를 인간 삶에 다각도로 발휘하는 가운데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실현하게 된다.
인정받을 수 없는 이유와 인정해 줄 수 없는 이유를 서로의 이해관계를 통해 들여다본다. 타인에게서 인정받지 못하면 심한 상처를 입는다. 반대로 타인이 나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도 고통을 받는다. 왜 나는 인정받지 못하는 가를 생각해보자. 이는 타인의 입장에서도 같다. 마음 속에 있는 욕구의 이해관계가 서로 상충하기 때문이다. 만일 욕구가 같더라도 각자 자기중심으로 사안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풀 수 없는 숙제다. 이로 인해 삶이 어려워지지만 이는 국가나 권력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바로 인간의 삶의 자유의지의 꽃이기도 하다.
‘헤겔’은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를 그의 책 <법철학>에서 ‘시민사회’라고 풀이했다. 시민사회는 자연적이며 이기적인 인간들이 각자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경쟁하는 사회다. 이 안에서 개인들은 자신이 지닌 권리를 최대한으로 행사한다. 국가나 그 어떤 권력도 개입할 수 없어야 하고 오직 시민사회의 자유의지에 의한 실현만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시민사회의 각자는 자신의 이기적 욕구와 이윤을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둔다.
인간사회에서 서로 이해관계로 얽혀 경쟁하는 양상의 원천에는 쌍방의 인정욕구가 본질이다. 시민사회는 국가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폴리스사회는 시민사회이면서 동시에 무형의 국가공동체다. 이는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천부적 권리이며 이 천부적 권리는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주어진다는 인류 보편성의 진리다. 개인에 대한 자각은 자연법칙 기본권의 따르는 ‘인간존엄성’에 대한 자각을 강조하고 공동체 중심적 발상에서 개인적 발상으로 삶의 태도를 유도한다. 공동체는 개인보다 우선적인 것이 아니라 개인의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로 이용한다. 공동체는 개인의 욕구를 실현시키는 보조역할이다.
이처럼 사회적 조건은 고정 불변함으로 나 자신과 타인과의 협력에 의해 계획을 슬기롭게 관철해 나가는 길을 터야 한다. 그 길이란 것이 바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본질을 정성을 들여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욕구와 목표를 조절하여 구구하게 변명하고 땜질하는 비굴함이 아니라 정정당당한 정면 돌파의 정의로 인정받는 것이다.
인정받는다는 조건은 만인이 인정을 해주는 참다운 사안 이여야 한다. 이럴 때 인정받고 싶은 고통은 기쁨으로 변한다. 인정욕구는 조건부 기쁨이 된다. 나무 자체보다는 나무를 얻을 수 있는…. 나무를 심는 산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