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떠난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한컴오피스 한/글 맞춤법 검사 섬세하게”
[아시아엔=편집국] 문학평론가 황현산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73)이 지병인 담낭(쓸개)암으로 8일 별세했다. 황 전 위원장은 2017년 1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으로 취임했으나 담낭암이 발견돼 취임 4개월 만에 자진사퇴했다.
그는 사퇴 후 항암 치료 도중에도 두번째 산문집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과 불문학 번역서 <말도로르의 노래> 등 두 권을 마무리해 지난 6월 펴냈다.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후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경남대·강원대 교수를 거쳐 1993~2010년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한국번역비평학회장, 미당문학상 심사위원 등을 역임했다. 팔봉비평문학상, 대산문학상, 아름다운작가상 등을 받았다.
대중적인 인기를 누린 산문집 <밤이 선생이다>를 비롯해 <얼굴없는 희망>, <말과 시간의 깊이> 등 다수의 책을 쓰고 번역작업을 했다.
그는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썼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문학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오랫동안 물어왔다. 특히 먼 나라의 문학일 뿐인 프랑스 문학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늘 고뇌해왔다. 내가 나름대로 어떤 슬기를 얻게 되었다면 이 질문과 고뇌의 덕택일 것이다. ‘밤이 선생이다’, ‘우물에서 하늘 보기'(비평집) 이후에 썼던 글을 묶은 이 책은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그 고뇌의 어떤 증언이기도 하다.”
그는 특히 이 책에 수록된 ‘한글날에 쓴 사소한 부탁’이란 글에서 “표준국어대사전에 단어 뜻을 정확하게 올려놓을 것과 ‘한컴오피스 한/글’의 맞춤법 검사 기능을 섬세하게 다듬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언어는 사람만큼 섬세하고, 사람이 살아온 역사만큼 복잡하다. 언어를 다루는 일과 도구가 또한 그러해야 할 것이다. 한글날의 위세를 업고 이 사소한 부탁을 한다. 우리는 늘 사소한 것에서 실패한다.” (97쪽)
<연합뉴스> 임미나 기자에 따르면 그는 지난 6월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과 함께 출간한 번역서인 프랑스 시인 로트레아몽의 <말도로르의 노래>에 관해서는 “가장 격렬한 낭만주의, 가장 격렬한 청소년기 반항의 기록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이 책은 그가 3년 전 처음 암 판정을 받았을 때 번역하기 시작해 최근까지 매달린 번역 작업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신문과 잡지에 글을 기고하면서 문학뿐만 아니라 문화 전반, 나아가 사회 전반에 대한 성찰과 비판도 멈추지 않았다.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밤이 선생이다>에 수록된 ‘과거도 착취당한다’ 중)
“자유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라는 말이 이 땅에서 자유를 억압한 적은 없지만,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은 민주주의도 자유도 억압했다. 이를테면 ‘한국적 민주주의’가 그렇다.” (<밤이 선생이다>에 수록된 ‘민주주의 앞에 붙었던 말’ 중)
그는 수년 전부터 트위터를 통해 젊은이들과 소통도 활발히 했다. 늘 정제된 문장으로 사안의 핵심을 짚는 글들을 올렸다.
<밤이 선생이다>와 <황현산의 사소한 부탁>을 편집한 출판사 난다(문학동네 출판그룹) 김민정 대표는 “선생님께서 트위터 글을 정리해달라고 하셔서 모아보니 A4 용지로 400장이 나왔다. 마지막까지 번역에 관해 쓰신 글도 2800매 분량이다. 곧 책으로 낼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식장은 고대 안암병원, 발인 10일 오전 10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