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든 남자’의 나라 러시아에서 꽃 선물 잘못 했다간···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러시아 원곡에 담긴 슬픈 사연
[아시아엔=남현호 <러시아, 부활을 꿈꾸다> 저자] 러시아 사람들처럼 꽃을 좋아하는 국민도 없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꽃에 집착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수 심수봉이 부른 ‘백만 송이 장미’의 원곡이 러시아 노래라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 러시아 최고 여가수 알라 푸가초바가 부른 노래를 번안에서 부른 것이다. 이 노래가 가진 전설을 듣다보면 러시아 국민들이 얼마나 꽃을 좋아하는 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옛날 러시아의 남코커서스 지방(지금의 조지아)에 니코 피로스마니라는 이름의 화가가 살았는데 어느 날 유랑극단의 여배우 마르가리타와 짝사랑에 빠졌다. 그는 자신의 사랑의 깊이를 보여주기 위해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과 그림을 팔아 백만 송이 빨간 장미를 샀다. 그리고는 밤새 그녀의 숙소 앞마당에 모두 깔았고 다음날 아침 그녀는 백만 송이 장미를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꽃을 통해 니코는 사랑을 얻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그녀는 부잣집 남성을 따라 홀홀히 떠나갔고 니코는 사랑앓이 끝에 세상을 떠났다.
모스크바 거리를 걷다보면 많은 남성들이 꽃다발을 손에 들고 바쁘게 걷고 있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사교클럽 근처나 유명 음식점 앞에서는 꽃을 든 남자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치베뜨이(가판점 형태의 꽃가게), 즉 꽃 가게이라는 간판은 모스크바 어디에서건 쉽게 볼 수 있으며 24시간 영업하는 꽃 가게도 많다. 한 가지 기억할 것은 꽃을 살 때 기념일과 생일에는 꽃송이 수를 홀수로 해야 하고 장례식 같은 슬픈 일에는 짝수로 해야 한다. 러시아 관습이다.
송이꽃(cut flowers)으로만 치면, 러시아는 세계 6위의 꽃 수입 국가다. 그 중 75-80%가 네덜란드 산인데 한국산 장미도 러시아로 수출되고 있다.
러시아에서 꽃을 가장 많이 판매하는 시기는 매년 3월 8일 `국제 여성의 날′과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다. 특히 여성의 날엔 러시아 모든 남성들은 자신들이 알고 지내던 모든 여성들에게 꽃을 선물해야 한다. 연인사이가 아니라고 해도 말이다. 이 두 날에만 2500만 송이의 꽃이 팔린다고 한다. 이때가 되면 꽃값도 천정부지로 뛴다. 우리 돈으로 10만원 정도 줘야 꽃다발다운 꽃다발을 살 수 있다. 또 9월1일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는 날, 그리고 5월25일 마지막 수업종이 울리는 날 선생님에게 꽃 선물하는 것도 전통이다.
또 하나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버이날과 스승의 날 부모님과 선생님의 가슴에 달아주는 카네이션이 러시아에서는 비극 또는 전쟁을 상징하기 때문에 좋은 날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것은 금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