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동굴실종’ 소년축구클럽 코치와 세월호 승무원

[아시아엔=김덕권 원불교문인협회 회장] 태국 동굴에서 구조된 유소년축구팀이 전원 안전하게 구조된 지 보름이 다가오고 있다.

동굴탐험에 나섰다가 실종되면서 비관적 전망까지 나돌았던 태국 소년 12명과 코치 모두가 구조된 이 사건은 한편의 영화처럼 실종자 전원이 극적으로 구조됐다.

마지막으로 동굴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축구단 코치 25살 에까뽄 찬따웡세다. 그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간 죄책감 때문에 내내 괴로워했다고 한다. 에까뽄 코치는 아이들의 작은 메모지에 미안한 마음을 담아 부모들에게 전달했다.

“아이들은 모두 건강해요. 제가 최선을 다해 보살피겠다고 약속드립니다.”

일부 현지매체는 아이들에게 음식을 양보한 코치가 건강이 악화돼 지난 8일 먼저 구조됐다고 보도했으나 이는 오보였다. 그는 동굴에서 끝까지 아이들을 돌봤다.

태국 치앙라이의 ‘무 빠’(야생 멧돼지) 축구 클럽 소속 소년들과 코치는 6월 23일 오후 훈련을 마치고 관광 목적으로 동굴에 들어갔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내린 비로 동굴 내 수로(水路) 수위가 높아지면서 고립됐다.

이후 9일간 지속한 수색 끝에 영국 동굴탐사 전문가 2명에 의해 동굴 입구에서부터 3.2㎞ 가량 떨어진 지점에서 7월 2일 밤 발견됐다. 소년들은 발견 당시 유니폼을 입고 맨발인 상태로 캄캄한 동굴 속에 줄지어 앉아 있었다. 오랫동안 먹지 못해 다소 여윈 모습이었으며 이들의 발밑에선 뿌연 흙탕물이 흐르고 있었다.

열흘 가까이 굶주려 건강이 악화했을 것이라는 애초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이었다. 이 소년들은 동굴에 갇혀 있는 동안 과연 어떻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코치 에까뽄의 역할이 컸다.

우선 에까뽄 코치는 소년들의 체력이 떨어질 것을 염려해 소리를 지르거나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소년들이 집에서 가져온 과자를 조금씩 나눠 먹게 했다. 흙탕물은 복통을 일으킬 수 있어 종유석이나 천장에 맺힌 물을 마시게 했다. 덕분에 소년들은 구조대에 의해 발견될 당시 다소 야위었으나 건강을 잃지는 않았다. 대신 코치는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양보하고, 자신은 거의 공복(空腹) 상태로 버틴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동굴에 갇힌 순간부터 아이들에게 극한의 공포와 불안을 극복하도록 정신적 지주 역할도 했다. ‘우리는 한 팀’이라는 의식을 계속 심어 주며 희망을 버리지 않도록 이끌었다. 아이들은 축구 게임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가 되어 코치가 시키는 대로 동작을 하고, 구호를 외치고 뛰는 시늉도 했다.

에까폰은 때로는 아이들에게 명상을 하면서 침착하게 시간을 보내게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줬다. 특히 아이들에게 살아나갈 것이라는 확신과 의지를 심어줬다. 발견 당시 구조대원들은 “아이들은 음식 없이 지내 다소 지쳐 보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건강했다”고 말했다.

에까폰 코치의 이모는 “조카는 아이들을 매우 사랑하고, 아이들도 코치를 잘 따른다”고 전했다. 소년들의 부모는 코치를 원망하기 보다는 동굴 안에서 아이들을 잘 보살펴준 코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애초 우기(雨期)가 시작됐는데 아이들을 데리고 동굴로 들어간 것에 비난 여론도 많았다. 그러나 그의 헌신적인 활약상이 알려지면서 비난은 잦아들었다. 또 에까뽄 코치가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보육원에서 자랐고, 12살부터 사찰에 들어가 10년간 수도승 생활을 했다는 사연도 전해졌다.

그는 3년 전 병에 걸린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수도승 생활을 접고 무빠 축구팀 보조 코치로 일하기 시작했다.

헌신적으로 아이들을 보살핀 에까뽄 찬따웡세 코치의 리더십과 활약상은 앞으로도 태국인은 물론 세계인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을 것이다.

2014년 중국 쓰촨(四川)성 이빈(宜賓)시 도심에서 방화로 추정되는 버스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노선버스가 갑자기 폭발음과 함께 불길에 휩싸였다. 바로 전 정류소에서 뒷문으로 버스에 올라탄 남성이 봉투에 담긴 인화물질을 바닥에 붓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것이다.

26년 경력의 운전기사 샤오쿤밍(肖坤明)은 그 와중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버스를 멈추고 시동을 끈 뒤 액화석유가스(LPG) 밸브를 잠갔다. 추가 폭발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이어 뒷문 쪽으로 뛰어가 소화기로 불을 끄기 시작했다. 불길이 쉽게 잡히지 않자 안전 망치를 떼어 유리창을 깬 뒤 승객들을 탈출시켰다. 이 과정에서 샤오쿤밍은 팔뚝과 머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독가스가 버스에 가득 찼지만 그는 승객이 모두 탈출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버스에서 탈출했다. 사고로 방화범 위웨하이(余躍海·51)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승객 59명과 행인 등 77명이 부상을 입었다.

승객을 버리고 먼저 탈출한 한국의 세월호 승무원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지도자의 지혜와 용기는 위기에서 발현(發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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