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원의 재밌는 월드컵16] 토탈사커와 티카타카···‘축구 혁명가’ 크루이프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의대 교수] 러시아월드컵 4강이 결정되었다. 월드컵을 한번씩 우승했던 전통적인 축구 강국 프랑스와 영국은 2대0으로 우루과이와 스웨덴에 승리했고, 벨기에는 괴력을 발휘하여 최강팀이라고 할 수 있는 브라질에 2대1로 이겼다.

크로아티아는 16강전 덴마크에 이어 8강전에서도 개최국 러시아를 승부차기에서 이겨 4강전에 진출하며 개최국의 괴력을 굴복시켰다.

벨기에와 크로아티아는 각각 1986년과 1982년 월드컵 4강에 진출한 바 있다. 결승전에는 프랑스-벨기에, 영국-크로아티아 경기의 승자가 대결한다.

이번 월드컵대회의 특징은 점유율과 승리가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교한 티카타카(탁구와 같이 공이 왔다갔다 하는 장난감 게임) 패스로 높은 점유율의 스페인도 막상 골은 넣지 못해 탈락했고, 막강한 개인기로 높은 점유율의 우세한 경기를 하는 브라질도 개인기에 의존하는 단조로운 공격만 하다 벨기에 일격에 탈락했다.

티카타카로 대표되는 스페인의 높은 점유율 축구는 요한 크루이프가 바르셀로나 감독으로 있으면서 처음 시도했고, 스페인의 대표적 전술이 되었다. 스페인은 그동안 티카타카로 월드컵 우승과 유로컵을 2번이나 제패하면서 최강팀 지위를 누렸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티카타카의 전술은 낱낱이 분석되고 격파되면서, 드디어 이번 월드컵에서는 거의 수명을 다하게 된 것 같다.

티카타카는 토탈사커를 패싱 플레이로 완성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티카타카에서는 정확한 패스와 선수들의 유기적인 협력 플레이와 함께 뛰어난 수비력과 전체를 지배하는 미드필더 지휘관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개인적인 능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구현하기 힘들다. 대한민국에서도 조광래 감독이 한때 대표팀에 시도했으나 기량차이로 구현이 불가능하다는 것만 알게 되었다.

티카타카가 쇠퇴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은 계속 몰리면서도 골을 허용하지 않는 수비기술의 발달과 골을 막는 골키퍼의 능력 향상이라고 할 수 있다. 점유율이 낮은 팀은 결국 역습을 시도하게 되는데 역습상황에서 수비가 무너질 수 있고 골을 허용하게 된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점유율이 낮은 팀들이 승리하는 경우가 특히 많았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토탈사커는 요한 크루이프에 의해서 완성되었다. 전원공격 전원수비라는 말로 표현되는 토탈사커는 현대축구를 만들어낸 축구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토탈사커에서는 공격수도 전방에서 수비를 담당하고, 수비수도 공격에 적극 가담한다. 모든 선수가 기본적으로 멀티플레이를 해야 한다.

축구가 토탈사커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현재 전 세계 축구는 토탈사커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티카타카도 결국은 패싱플레이로 특화된 토탈사커인 것이다.

요한 크루이프는 네덜란드 축구영웅으로, 킥앤러시로 대표되는 당시의 축구 전술 속에서 1974년 독일월드컵에서 처음 토탈사커를 선보이면서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골을 많이 넣은 선수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펠레, 마라도나와 함께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일컬어지고 있다. 그는 동시에 축구라는 스포츠 자체를 바꾼 혁명가였다.

“축구기술은 서커스가 아니다. 축구의 기술은 1000번의 리프팅이 아니라 동료의 발에 정확한 속도로 패스하는 것이다.” “골키퍼는 첫번째 공격수이고, 골잡이는 첫번째 수비수이다.” 

크루이프의 이 말들은 그의 토탈사커에 대한 사상을 정확히 표현해주고 있다. 크루이프는 어릴 때 야구를 하면서 포수로서 전체적인 경기를 파악하는 경험을 통해 전체 축구공간을 이해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는 공간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빠른 주력, 순발력, 테크닉을 갖추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요즘은 드리볼의 기본소양으로 배우고 있는 슛이나 패스할 듯하다 발 뒤꿈치로 공을 멈추고 수비수가 멈칫하는 순간 재빨리 방향을 바꾸어 치고 나가는 크루이프 턴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크루이프가 처음 실전에서 선보였다.

누구나 인정하는 축구천재였지만 그는 게으름뱅이에다 담배 골초였다. 훈련도 싫어하고 연습도 거의 안했으며, 경기 중에도 하프타임 때 담배를 피워댔다. “훈련은 싫어하지, 몸 관리도 안 하지, 담배는 뻑뻑 피워대는 놈인데도, 타고난 재능 하나만으로 세계 최고인 부러운 놈···.” 네덜란드 아약스 감독의 말이다.

네덜란드를 1974년 독일월드컵에서 준우승으로 올려놓은 후, 19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에서는 가족의 안전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대표팀 합류를 거부했다. 실제로 크루이프의 가족은 납치된 적도 있었다.

크루이프는 발롱드르(세계 최고의 선수상)를 연속 수상하면서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하였고, 은퇴 후에는 바르셀로나의 감독으로 티카타카를 완성해서 장장 8년 동안 11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크루이프의 철학과 스타일은 세계 최강팀 바르셀로나에 아직도 계승되고 있고, 스페인 국가대표팀을 세계 최강의 팀으로 만들었다.

골초로서 유명했던 크루이프는 결국 폐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2016년 6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선수와 감독으로 최고의 평가를 받았으며 현대축구의 패러다임을 만들었던 특별했던 ‘게으른 축구 천재’ 요한 크루이프는 그가 남긴 축구의 전술을 통해서 아직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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