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원의 재밌는 월드컵⑫] 누가 이 여인에게 돌을 던지랴?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의대 교수] 축구공은 둥글다. 10번 슛에 한번 정도 골이 들어가니 그만큼 운이 따르고 이변도 많을 수밖에 없는 경기이다.?축구경기 결과가 항상 예측과는 다른 이유이고 또 축구의 매력이기도 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전 대회 우승국 프랑스는 세네갈에 일격을 당하고 예선 탈락하는 치욕을 당했다.?또 이탈리아는?16강전에서 대한민국에게?1-2로 패하였다.?이 두 경기는 월드컵 사상 대이변 경기 중 하나로 손꼽힌다.
4년 후?2006년 독일월드컵에서?2002년 대한민국에 패배했던 이탈리아와 독일월드컵 예선전에서 대한민국과 비겼던 프랑스는 결승에서 대결하며,?이탈리아가 연장전 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우승한다. 4년 만에 하늘과 땅이 바뀐 셈이다.?반면에 한일월드컵?4강에 올랐던 대한민국은 예선에서 탈락한다.?축구에 “영원한 강자도 약자도 없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도 월드컵 사상 가장 큰 이변중의 하나가 일어난다. 2014년 브라질을?7-1로 대파하며?4년 동안 최강자로 군림했던?FIFA랭킹?1위 독일이?FIFA?랭킹?57위의 대한민국에 일격을 당해 예선탈락한 것이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준우승 팀이며?2014년 브라질월드컵?3위 팀인 네덜란드는 이번 러시아월드컵 예선에서 스웨덴에 밀려서 참가도 못했다.?월드컵을?4번이나 우승했던 이탈리아도 이번 월드컵 예선 플레이오프에서 역시 스웨덴에 져서 참가하지 못했다.
대진 운 가장 나빴던 대한민국, 그러나
러시아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대진 운은 최악이었다.?네덜란드와 이탈리아를 이기고 본선에 진출한 스웨덴,?오랫동안 월드컵을 대비해 준비했고 나날이 경기력이 상승하고 있는 멕시코,?전 대회 우승팀이고?FIFA?랭킹 세계?1위인 막강의 독일과 한 조가 되었다.?객관적으로는 우리의 실력이 가장 떨어지니 우리가 예선에서 탈락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 것이다.?그런데 대한민국의 축구팬들은 아무도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스웨덴에?0-1?멕시코에?1-2?패배하고 마지막 독일 경기를 앞두게 되었다.?사실 대한민국은 우리의 생각보다 준비된 강한 팀이었으나 꼭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던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수비에 치중하는 전략을 세웠다.?이 전략은 잘못된 전략이라고 볼 수는 있어도 크게 실패한 전략이었다고 볼 수는 없었다.?하지만 과거 같으면 지나갔을 페널티킥으로?0-1로 패배했다.
두 번째 멕시코와의 경기에서는 스웨덴전과는 다르게 매우 용맹하게 싸웠으나 위험하지도 않고 고의적이지도 않은 상황에서 당한 핸드볼에 의한 페널티킥으로 한 점을 실점했고,?맹백한 멕시코의 파울을 심판이 지적하지 않음으로 인해 두 번 째 실점했다.?하지만 손흥민의 경기직전 아름다운 골로 한 골을 만회해서?1-2로 패배했다.
막판에 몰린 마지막 독일과의 일전에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싸워서?2-0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비록?16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이 경기는 대한민국의 투혼을 발휘한 아름다운 경기라고 할 수 있으며 월드컵 역사상 가장 큰 이변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팀은 운이 좋았다면?16강에 진출할 수도 있었지만 아쉽게 멕시코가 스웨덴에 지는 바람에 실패했다.?하지만 전 세계 축구팬들의 찬사를 받았다.?일본이 마지막 공 돌리기로 간신히?16강에 진출했지만 전 세계의 비난을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런데 자랑스러워야할 대한민국 팀의 귀국 기자회견에서 달걀이 던져졌다.?선수들의 얼굴이 굳어졌다.?이 장면을 두고 세계의 매스컴은 “대한민국에 패배한 독일 팀에게는 벽돌을 던져야 하나?”라고 놀라워했다.
멕시코가 스웨덴에 이겼더라면
축구경기의 결과는 당연히 상대적이다.?멕시코가 스웨덴에 이겼다면 대한민국이?16강에 올랐을 것이다.?독일이 대한민국을 이겼으면 멕시코가 탈락했을 것이다.?그 뿐이 아니다.?심판이?판단을 조금만 달리 했어도 스웨덴전은?0-0,?멕시코전은?1-1으로 비겼거나 혹은?1-0으로 대한민국이 이겼다고 해석될 수도 있는 경기였다. 16강 진출은 대진운도 중요하고,?우리 팀이 아무리 잘해도?3승을 거두지 않는 한 다른 팀들의 대전결과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그러니 최선을 다하지만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러시아월드컵에서 우리는 불리한 조건에서 괴력을 다해 싸웠으나 운이 따르지 않아서?16강에 실패했다.?이것이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선과 악만큼 주관적인 것도 없다.?선악을 판단하는 주체가 나이기 때문이다.?축구에서 선악이 과연 꼭 이기고 지는 문제인가??그렇다면 한 나라의 선은 다른 나라의 악이고,?한 나라의 환호는 다른 나라의 피눈물이 될 수밖에 없는가?
1994년 미국월드컵에서 콜롬비아는 미국과의 경기에서 자책골로 인해 패배하고 예선탈락하게 되었다.?자책골을 넣은 선수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두려워했고,?결국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살해당했다.?자책골을 넣은 선수를 살해한 콜롬비아의 축구팬만큼 축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름다운가??이것이 진정한 축구 사랑인가??최선을 다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선수들에게?16강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달걀을 던지는 것이 아름다운 것인가?
존카를로스와 토미 스미스 그리고 피터 노만
50년 전 마틴 루터 킹이 살해당한 그 해, 1968년 멕시코올림픽 육상?200미터 경기에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시상대에서 금메달과 동메달을 수여받던 미국의 흑인선수,?존 카를로스와 토미 스미스는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의미로 맨발과 함께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하늘 높이 들었다.?맨발은 흑인들의 가난한 처지를 상징하고,?검은 장갑은 미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상징이었다.?정치적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그들은 미육상계에서 제명당했다.?은메달을 받았지만 인종차별 항의에 동참하는 뱃지를 흑인선수들과 함께 가슴에 달았던 호주의 육상영웅 피터 노만 마저 이단자로 낙인이 찍혀 호주 육상계에서 매장당하고 매스컴으로부터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호주 역시 미국 못지 않게 백호주의라는 이름으로 인종차별이 진행되고 있었다.?피터 노만은 인종차별에 항의하는 지지를 철회하면 징계를 풀고 공식적인 무대에 설 수 있게 해주겠다는 호주 육상계의 회유를 물리쳤다.?그는 공식적인 직업을 갖지 못하고 모두에게 잊혀진 채로 잡일들을 하면서 어렵게 살다가?2006년 쓸쓸히 사망했다. 2012년 호주의회는 이 위대했던 선수에게 공식 사과성명을 발표한다.
임국찬 당신께 용서를 빕니다
1970년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페널티킥을 실축한 후 비난을 견디다 못해 대한민국을 떠난 임국찬 선수를 용서할 때가 아니라 임국찬 선수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때다.?꼭 시간이 흘러야 흑백이 가려지는 시대가 아니다.?더 이상 부끄러운 업을 만들지 말자.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세계최빈국에서 온 이름도 알 수 없는 코리아의 선수들은?0-9로 지면서도 사자와 같이 용맹하게 싸웠고,?그 경기는 승패를 떠나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이제 우리의 의식도 성숙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축구가 전쟁이 아니라 축제임을 항상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