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원의 재밌는 월드컵⑪] 남북한이 일으킨 기적···1966 북한 8강, 2002 한국 4강

[아시아엔=김현원 연세대의대 교수] 1966년 런던월드컵에서-지금은 축구 강국이지만 당시까지는 별 볼일 없던 변방의 팀-포르투갈이 처음 월드컵에 참가해 3위를 차지했다. 에우제비오는 9골로 득점왕을 차지했는데 그의 현란하기보다는 강한 드리볼과 대포알 같은 슈팅은 실제로 축구공이 월드컵에서 터져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런던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기적의 팀은 포르투갈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대한민국은 북한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알고 지는 것보다 아시아 예선 출전을 포기하는 선택을 했다.

그야말로 이름도 없었던 북한은 예선전에서 소련과의 첫 경기에서는 졌지만 칠레와 비기고 마지막 경기에서 박두익의 결승골로 이탈리아를 1-0으로 물리치는 대이변을 연출하며, 8강전에 진출했다. 이탈리아는 예선 탈락하고 공항에서 썩은 달걀 세례를 맞는 수모를 당했으나 그 다음 멕시코월드컵에서는 당당히 결승에 오른다.

8강에서 북한은 에우제비오의 포르투갈과 맞붙었는데, 놀랍게도 전반 25분이 지났을 때 스코어는 3-0으로 북한이 이기고 있었다. 북한은 제대로 수비만 잘 해도 준결승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그러나 포트투갈에는 당시 식민지였던 모잠비크 출신의 에우제비오가 있었다. 에우제비오가 살아나기 시작하면서 경기 흐름은 포르투갈로 넘어갔다. 

에우제비오는 2번의 페널티킥을 포함해서 총 4골을 몰아넣으면서 5-3 승리를 이끌었다. 북한의 돌풍은 아쉽게 8강에서 멈추었지만 북한이 일으킨 기적은 세계 축구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에우제비오가 속했던 포르투갈의 벤피카팀은 1970년 한국을 방문했는데 대표팀 2진 백호팀과 첫 경기에서 5-0으로 이겼다. 에우제비오는 하프라인에서 대포알 같은 슈팅으로 득점했을 뿐 아니라 휘어서 들어가는 프리킥 골도 선보였다. 지금은 흔하지만 당시 휘어서 들어가는 골을 처음 본 한국 팬들은 휘어 들어가는 골을 바나나킥으로 불렀다. 바나나킥을 국내에 처음 선보인 사람은 독일의 네처였다. 1969년 처음 나이터 시설을 갖춘 서울운동장에서 독일 보르시아 MG와의 경기가 있었는데 당시 세계최고의 선수 중 한명인 네처가 코너킥을 바로 골로 성공시키는 바나나킥을 선보인 바 있었다.

벤피카와 대표팀 1진 청룡팀과의 경기에서 의외로 이회택이 먼저 한골을 넣고, 에우제비오의 슈팅이 골라인을 넘어가는 순간 수비수가 손으로 막으면서까지 만들어진 페널티킥으로 1대1로 비겼다. 포르투갈의 단일팀 벤피카를 상대로 선전한 청룡팀에 찬사가 이어졌고 이 경기는 여러 번 재방송됐다.

1972년은 펠레의 산토스팀이 한국을 방문했다. 산토스는 바로 전 일본팀에 3-0으로 이겼다. 펠레의 득점도 볼 수 있었던 이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이회택과 차범근이 한 골씩 넣으면서 2-3으로 패했지만 선전했다. 이 경기는 수비수 서윤찬이 펠레를 너무 밀착하고 반칙을 해대는 바람에 펠레는 한 골을 넣고 스스로 교체해달라고 사인을 보냈다. 펠레 때문에 초청한 경기에서 더 이상 펠레를 볼 수 없었던 것이다. 당시 어린 나에게도 친선경기에서 펠레를 저렇게 마크할 필요가 있나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개한 일화들은 당시 대한민국 대표팀의 경기력이 세계수준에 비해서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1966년 월드컵 8강에 올라 월드컵 3위의 포르투갈 국가대표팀을 한때 3-0으로 이기고 있었던 북한 팀이 얼마나 강했는지 간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지금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은 A매치만으로도 벅차다. 이제 특별히 외국클럽팀을 초청할 이유는 없지만 과거 외국클럽팀의 한국 방문경기들은 대한민국 축구 경기력 향상에 크게 이바지 했다.

2002월드컵 최고의 기적-코리아, 변방에서 4강에 오르다

월드컵 사상 가장 놀라운 기적은 2002년 축구 변방의 나라 한국에서 일어났다. 4년 전 프랑스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멕시코에 1-3, 네덜란드에 0-5로 패하는 수모를 당한 후, 패배를 안겨준 네덜란드의 히딩크를 감독으로 영입했다. 히딩크는 장기간의 목표를 세우고 차근차근 팀을 준비했다.

멀티플레이어로 선수들이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하였을 뿐 아니라 철저한 체력훈련으로 체력에서 뒤지는 일이 없도록 준비했다. 대한민국은 처음에는 A매치에서 프랑스에 0-5, 체코에 0-5로 지는 등 대패를 반복하면서 ‘오대영’이라는 수치스러운 이름까지 얻기도 했다. 히딩크는 꿈쩍도 않고 목표대로 팀을 준비하였다. 드디어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스코틀란드에 4-1 대승을 거두고 잉글랜드와 1-1, 전 대회 우승팀 프랑스에는 2-3으로 역전패하는 등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드디어 월드컵이 개막되었다. 첫 경기에서 대한민국은 폴란드에 황선홍과 유상철의 골로 2-0으로 월드컵 사상 첫 승리를 거두었다. 미국과의 두번째 경기에서는 우세한 경기를 하면서도 안정환의 헤딩골로 1-1로 비겼다. 예선 마지막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는 비겨도 올라갈 수 있는 경기를 박지성의 환상적인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두고 강적 이탈리아를 16강에서 맞이하게 되었다.

16강전은 그야말로 혈전이었다. 전반에 대한민국이 먼저 페널티킥을 얻었으나 안정환이 실축했고, 오히려 이탈리아가 한골을 넣어 0-1 리드를 당하게 되었다. 후반 경기가 막바지로 들어갈 무렵 히딩크는 수비수들을 모두 공격수로 교체하는 황당한 모험을 했다. 그런데 그 작전은 성공해서 후반이 끝나기 직전 설기현이 한 골을 만회하였다.

연장전은 양 팀이 공수를 반복하면서 끊임없는 골 찬스를 만들어내며 선방이 이어지는 혈전이었다. 연장 후반도 끝나갈 무렵, 페널티킥을 준비해야 할 무렵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다. 패널티킥을 실축했던 안정환의 백헤딩이 이탈리아의 골문으로 들어갔다. 결자해지 드라마의 순간이었다. 대한민국 축구 사상 이렇게 감동적인 경기는 다시 없었다.

16강을 넘어 8강에서는 대한민국은 스페인과 맞붙어 서로 일진일퇴의 공방 끝에 연장을 넘어 페널티킥 승부에서 이운재의 선방에 힘입어 5-4로 이겨 드디어 준결승에 진출했다.

준결승에서는 독일에 아깝게 0-1로 졌으나 대한민국이 특별히 뒤쳐진 경기는 아니었다. 경기 초반 차두리의 질풍 같은 드리볼에 이어 이천수가 날린 번개 같은 슛을 올리버 칸이 몸을 날려 막았는데, 이 장면은 2002년 월드컵이 뽑은 최고의 수퍼세이브였다. 이 슛이 들어갔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수도 있다. 독일의 올리버 칸은 대회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돌아보면 2002년 대한민국이 일으킨 기적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의 큰 아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병은 아파야 낫는다. 어떤 결과든 어떤 아픔도 두려워하지 말고 지켜보고, 아픔을 치료해서 또 다른 아름다운 월드컵의 기적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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