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겨진 여성노동③] 심혜정·게릴라 걸즈·마리사 곤살레스·폴린 부드리·레나트 로렌즈
[아시아엔=알래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4월 15일 압구정동 코리아나미술관(관장 유상옥·유승희)에서 시작한 ‘히든 워커스’는 이번 주말(16일) 막을 내린다. 여성 아티스트들의 작품을 통해 여성의 사회적 역할을 조명하고 있는 이 전시회를 <아시아엔> 독자들께 강추한다. 이제 닷새밖에 안남았으니 서두르셔야겠다. 전편에 이어 작가들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편집자>
◇ 심혜정
어머니를 간호하는 재중동포 아주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심혜정(51)의 영화 <아라비아인과 낙타>(2013)는 여성의 이주노동에 얽혀있는 깊고 예민한 문제를 들여다 본다. 늘 어머니를 곁에서 돌보고 집안 살림을 하다 보니 동포 아주머니는 집을 본인의 방식대로 정리하고 꾸며놓는데, 정작 딸인 작가는 어머니의 집이 낯설고 어색하다.
국가와 국가를 오가며 활발하게 일하는 이주노동자 중 여성들은 주로 가사, 돌봄, 육아노동을 도맡아 하는 까닭에 개인의 사적인 공간을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심혜정은 <아라비아인과 낙타>를 다양한 이주민들이 보고, 영화를 통해 소통할 수 있도록 자막 번역 워크숍 <아라비아인과 번역사무소>도 진행하였다. 프로젝트를 통해 <아라비아인과 낙타>는 베트남어, 태국어, 방글라데시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등 5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미술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심혜정은 퍼포먼스를 비롯해 실험영화, 극영화, 다큐멘터리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하고 있다. 주요 개인전으로는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열린 ‘동백꽃이 피면’(2016)과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먼스에서 개최된 ‘아라비아인과 번역사무소’(2013) 등이 있다. 전주국제영화제(2017), 광주여성영화제(2015), 서울독립영화제(2015),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2014) 등 영화제에도 참여했다. 2016년작 <동백꽃이 피면>은 2017년 제38회 청룡영화상 단편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 폴린 부드리 & 레나트 로렌즈
1998년 이래 듀오로 활동하며 젠더 이슈에 관한 작업을 선보인 독일 출신의 폴린 부드리과 레나트 로렌즈는 ‘차밍 포 더 레볼루션’(2009)에서 경제의 틀 안에서 여성의 노동이 차지하는 위치와 그와 얽힌 복잡한 관계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외치는 대로,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병원에서, 노인의 집에서, 온라인에서, 부엌에서, 미술관에서, 그리고 영화관에서’ 즉 어디에서나 주부는 경제라는 백인 이성애자 남성과 결혼한 것이다.
가부장적 질서와 경제(자본주의)를 결합함으로써 부드리와 로렌즈는 젠더에 의해 이원화된 노동의 구조와 그 안의 불평등을 한번에 비꼰다.
폴린 부드리와 레나트 로렌즈는 2007년부터 최근까지 베를린을 중심으로 함께 활동해오고 있다. 이들은 영상을 위한 퍼포먼스를 제작하며, 주로 평범함, 법, 경제 등에 맞서는 개인과 집단의 삶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부드리와 로렌즈의 영상작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시대를 초월하며 다층의 레이어를 끌어들이고 제시함으로써 일반적으로 용인된 역사적 대서사를 뒤집는다.
파리·뉴욕·도쿄·암스테르담 등 세계 각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였으며, 2016년 광주비엔날레, 2011년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 스위스 파빌리온 등에 참여하였다.
◇ 게릴라 걸즈
1985년부터 지금까지 핑크 립스틱을 바른 고릴라 가면을 쓰고 익명으로 활동해 온 여성예술가 집단이다. 게릴라 걸스는 예술계 내의 성불평등을 때로는 위트있게, 때로는 신랄하게 고발하는 포스터들을 제작하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액티비즘의 성격이 강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저평가되어 온 여성 및 非백인 작가들의 활동 이면에서 드러나지 않게 작동하고 있는 이분법적 젠더의 권력을 비꼬는 포스터들을 거리에 도배하고, 여성 예술가들이 겪는 불평등한 상황을 수치화된 기록으로 증명한 작업들을 선보인다.
‘예술계의 양심’(Conscience of the Art World)이라고 스스로 칭하는 게릴라 걸즈는 페미니스트 액티비스트 예술가 집단이다. 고릴라 가면을 쓰고 대중 앞에 서며, 유머러스하고 충격적인 시각자료들을 활용해 인종과 젠더 불평등을 고발하고 정계·예술계·영화계 등의 비리를 폭로하기도 한다. 이들은 차별에 대항하고, 성을 초월해 누구의 인권이든 지지하는 ‘상호교차성 페미니즘’(intersectional feminism)의 힘을 믿는다.
◇ 마리사 곤살레스
전세계의 각종 위기(crisis)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두고 작업하는 마리사 곤살레스(73)는 홍콩에서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필리핀 이주노동자에게 초점을 맞춘 다큐멘터리 <여성, 바깥 공간 점령자들>(2010-12)을 제작하였다. 필리핀 여성들의 유일한 휴일인 일요일, 이들은 홍콩의 주요 거리와 광장에 모여 그들만의 여가를 즐기고, 본국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부치는 일련의 활동을 한다.
교육수준도 높고 영어에도 능통한 필리핀 여성들은 홍콩 가사도우미의 60%를 차지한다. 이들이 홍콩에서 일하고 받을 수 있는 임금은 필리핀에서 받는 임금의 3배에 달하지만, 이는 홍콩에서 일하는 현지인들이 받는 최저임금보다도 낮다.
마리사 곤살레스는 20세기와 21세기의 여러 도시와 그 안에서 일어나는 위기들에 관심을 가지고 40년 이상 작업해 온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다. 스페인에서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결합에 일조한 선구자로 꼽히며, 비디오와 사진은 물론 디지털 미디어와 네트-아트(Net-Art) 작업까지 선보이며 다양한 언어로 작가만의 독특한 작업세계를 구축하였다.
코리아나미술관 개관 15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이번 전시회는 코리아나미술관(서울시 강남구 언주로 827) 주최, ㈜코리아나화장품 후원이다. 오전 10시~오후 7시 문을 열며, 요금은 성인 4000원, 학생 3000원. 65세 이상, 7세 이하, 장애인은 무료. 문의 (02)547-9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