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송환’ 주장 보면서 국군포로를 생각함

<사진=뉴시스>

[아시아엔=김국헌 전 국방부 정책기획관] 1994년 북한에 국군포로로 억류되어 있던 조창호 소위가 돌아왔다. 실로 역사상 보기 드문 인간 승리의 표본이었다. 김영삼 대통령과 이병태 국방장관은 생도 열병식으로 용사의 귀환을 치하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 발생하였던 국군 포로 문제는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까지도 미결의 과제로 남아 있다.

정전협정 체결 후 유엔군은 국군 1647명과 미군 389명을 포함한 2233명의 유엔군 미송환 포로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북한은 아무런 해명도 없이 송환하지 않았다. 유엔군은 1960년대까지 군사정전위원회와 수석대표 서한을 통해 해명과 송환을 요구하였다. 북한은 “국군포로는 전원 중립국송환위원회에 이관하였고 북한 내에서는 단 1명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오히려 “한국이 석방한 반공포로 2만7천명이야말로 억류포로”라고 주장하며 송환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북한의 억지주장으로 송환문제 진전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에서 국군포로들은 북한군에 징집되어 전장에 투입되거나 긴급복구 등 강제노역에 투입되었다. 이들은 1956년 6월에 ‘해방전사’로서 석방되어 북한 공민으로 편입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 후반까지 모두 통제구역으로 추방되었다. 미송환 국군포로들은 북한 체류가 장기화되면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가졌으나 성분 불량자로 분류되어 진학이나 사회적 이동이 엄격히 제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4년 당시 정부가 명단을 확보하고 있는 생존추정 국군포로는 538명이다. 정전 이후 이미 65년이니 당시 20세를 기준으로 잡더라도 85세가 되었을 것이니 이제까지 생존한 분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1970년대 이후 정부는 대한적십자사를 통하여 1천만 이산가족들의 상봉, 재결합을 위한 의제로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다.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에서 이산가족 문제해결로 명문화하고 남북경제교류협력위원회에서 이행한다는데 합의하였다. 1994년 말 조창호 소위의 귀환과 국군포로의 참상에 대한 증언으로 정부는, “국군 포로문제는 국가의 본분과 도리에 관한 문제로서 납북자, 이산가족과 연계하여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포괄적 해결 대책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1999년 국회는 “국가를 위해 책임을 다한 군인에 대해서는 국가가 끝까지 책임진다”는 의지를 구현하기 위해 ‘국군포로대우 등에 관한 법률’을 공포하였다. 2000년 9월 제1차 남북 국방장관회의에서 조성태 장관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위해서는 국군포로 문제 해결이 매우 중요하다는 우리의 뜻을 지도부에 전달해줄 것을 김일철 무력부장에 강력히 촉구하였다.

최근 중국을 통해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를 북한 요구에 따라 돌려보내야 된다는 말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이 문제의 부당함에 대해 인권의 당위적 명제를 제기할 필요도 없다. 국군 포로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정부가 행한 노력의 자취를 들여다본다면 이 문제에 함부로 말하지 못 한다. 국방부가 2004년 발행한 소책자 <국군포로 문제>를 읽어본다면 이런 무책임한 말은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거쳐 한국의 품안에 안긴 탈북자에 대해 국가의 본분과 도리를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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