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화가 빌랄 바살이 ‘창문’ 너머 바라본 세상

Front Of Opera Palais Garnier, Paris 2018 by the photographer Arthur Pelletier

[아시아엔=알레산드라 보나노미 기자] 1973년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에서 태어난 빌랄 바살은 현재 파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화가다. 레바논에서 드로잉과 페인팅을 공부한 그는 2000년 첫 개인전시회를 베이루트에서 열었고, 2002년엔 제 12회 서울공간국제판화비엔날레에 참여하며 활동무대를 넓혔다. 그는 프랑스의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비롯한 여러 매체에 삽화를 게재하고, 여러 차례의 해외 전시회를 가지며 아티스트 빌랄 바살이란 이름을 알려왔다.

<아시아엔>은 빌랄 바살과의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그가 창문 너머 바라본 세상을 전한다.

작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작품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전하려 한다. 인간은 신비스럽기 그지 없는 정서적 교감을 나누며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교감의 대상은 때론 자연, 때론 타인이 되기도 한다. 나는 특정 매개체를 빌어 세상에 실존하는 개념들과 그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다. 첫 개인전시회의 매개체는 가면이었다. 인간은 서로 소통하며 살아가지만 자신의 본 모습을 가면 아래 숨기곤 한다. 그 다음 전시회의 매개체는 바코드였다. 이를 통해 비즈니스와 소비지상주의가 전통적 가족 구조와 사회에 미친 영향을 표현했다.

최근엔 창문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춰왔다. ‘창문’은 내 철학이 담겨있는 핵심적인 매개체다. 우리는 다른 형태와 크기의 창문들을 통해 외부의 세상을 바라본다. 인간은 또한 창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며 내면과 소통한다. 창문은 우리 내면의 가장 비밀스러운 부분을 발가벗기곤 한다. 역설적으로 창문이란 사물은 ‘폐쇄’와 ‘개방’이라는 서로 상충되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닫혀있을 때도 있지만 인간은 창문을 열어 외부 세상과 만나고, 또 조화되기 때문이다.

auto-shooting photo

작업과정과 기법들에 대해 설명해달라.
내 안에서 소용돌이치고 있는 여러 감정들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스케치를 하며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것들을 정리하는데 오랜 시간을 보내는 이유다. 스케치는 생각들을 시각화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스케치 후에는 작품에 사용할 재료들을 정한다. 요새는 전자기기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도 더러 있지만, 개인적으론 전통적인 도구들을 선호하는 편이다. 때때로 생 피에르 마켓에 들러 다양한 도구와 재료들을 구입하곤 하는데, 나는 이 모든 것이 창작활동의 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이 준비되면 빈 도화지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다. 마치 운동선수가 게임에 들어가기 직전 긴장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는 그런 순간과도 같다. 잠시의 침묵이 끝나면 결전의 시간이 다가온다. 한 손엔 붓을, 또다른 손엔 팔레트를 들고 작품에 집중한다. 집중할 때면 내 영혼이 날아다니는 것과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그 순간을 말로 표현하긴 어렵다.

어디서 영감을 얻나.
눈 떠 있는 매 순간 영감을 얻는다. 내 주위의 모든 것을 관찰한다. 정말 모든 것을. 예술가에겐 시각적인 기억들이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언제라도 머리 속에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창의적인 생각들이다. 고등학생 시절, 어느 재능 있는 작가가 내게 건넨 말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진짜 예술가는 그가 본 것뿐만 아니라 상상한 것도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어린이를 위한 마법과도 같은 그림을 오랫동안 그려왔다. 10대 시절, 내가 쓴 단편 이야기들을 매거진이나 책 등에 실은 적도 있다. 어린이는 좋은 독자이자 비평가이기에 이들을 위해 항상 최선을 다한다. 좋은 그림을 그리고 아이들을 환상의 나라로 초대하는 것이 너무나 좋다. 개인적으론 성인들도 이따금 상상의 세계에서 모험을 즐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파블로 피카소는 이런 말을 했다. “어렸을 때 어머님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병사가 되려고 하면, 장군이 될 것이고, 사제가 되려고 하면, 교황이 될 것이야.’ 대신 나는 화가가 되었고, 마침내 피카소가 되었다.” 당신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어린 시절부터 항상 그림을 그렸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아티스트가 되고 싶었다. 당시 전업 아티스트의 이미지가 그리 좋진 않았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술가는 더 이상 불안정한 직업이 아니다. 나 역시도 여전히 그리고 칠하는 것이 좋다. 15살 때까지만 해도 예술가란 직업이 취미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러나 고령의 나이에도 작품활동을 이어가는 화가의 그림을 본 순간 매료됐고, 또 내 생각을 바꿨다. 그 사람 같은 작가가 되기로. 내가 죽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하고 싶다.

This slideshow requires JavaScript.

미래에 대해 불안은 없나.
3차 대전. 많은 사람들이 이 단어만 들어도 공포에 떨지 않나. 또다른 걱정거리도 있다. 인공지능과 같은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수천 개의 직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낙관론자지만 언젠가 스스로에게 물을 거 같다. “우리 모두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해달라.
앞서 말했듯, ‘사람’은 내 주된 관심사다.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각 개인은 그들의 존재에 따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는 여러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에 참여하며 사람과 인체에 대한 흥미를 공유했다. 이러한 철학은 2000년 첫 개인전시회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개인적으론 2002년 서울 전시회에 참여하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이후 프랑스, 튀니지, 스페인, 독일, 쿠웨이트 등 여러 국가에서 전시회를 열게 됐다. 언젠가 ‘빛의 도시’ 파리에서 또다른 전시회를 갖길 기대하고 있다.

Front Of Opera Palais Garnier, Paris 2018 by the photographer Arthur Pelletier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