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천하통일 36] 태후 조희와 위험한 관계 이어가던 여불위, 그 바통 노애에 넘기다
[아시아엔=강철근 한류국제문화교류협회 회장, 한류아카데미 원장, <이상설 이야기> 저자] 정말 숨 가쁘게 달려온 세월이었다. 기원전 7세기 무렵의 제9대 왕 진목공의 찬란했던 영광의 시간들이 무참한 순장제도로 신기루처럼 사라진 후, 진나라엔 300여년 간 무거운 침묵만이 남아 있었다. 그 침묵의 시간이 끝나고 기원전 4세기 경의 제25대 왕 진효공 때에 이르러 상앙과 함께 법치주의를 근간으로 한 부국강병의 기틀을 세운 진은 새로운 출발에 나섰다.
제26대 혜문왕(惠文王)대 소진·장의의 합종 연횡책으로 천하를 움직이고, 50여년 재위한 제28대 소양왕(昭襄王, 혹은 소왕, 기원전 306~251년) 때의 재상 범저가 시행한 원교근공책으로 국제정치의 주역으로 발돋움하여 이룩한 엄청난 업적들, 제29대 효문왕(孝文王, 재위 기원전 251~250년), 그리고 여불위가 설계하고 일으킨 영자초 즉 제30대 장양왕(莊襄王, 기원전 249~247년)에 이르기까지…. 천하제국이 오직 꿈속에서만 기원하던 천하통일은 눈앞에 다가오게 되었다.
진나라는 마지막 6대에 이르는 왕들의 재위 기간에 기적과도 같은 발전을 이루었다. 제왕들과 당대 최고의 인재들의 피나는 업적으로 진나라는 이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막강한 나라가 되었다. 여불위가 설계하여 왕위에 앉힌 영자초 장양왕은 그 부친 효문왕이 2년만에 죽자 왕위를 넘겨받았으나, 그 역시 재위 3년 만에 죽고 만다. 이렇게 알 수 없는 의문사의 연속으로 선왕들이 짧게 재위한 후에, 드디어 영정이 열세 살의 어린 나이로 제31대 진 왕위에 올랐다.
기원전 259년 정월 조나라 수도 한단(邯鄲)에서 태어난 영정은 태어나던 때 “온 방 안에 붉은빛이 가득하고 온갖 새들이 날아올랐다”고 진 역사에 기록되었다. 천하를 통일할 영웅이 진나라에서 탄생할 것이라는 예언은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그 천하통일의 주인공이 아닐까 생각했다. 이는 마치 진 영정 이후 두번 째 천하통일의 주인공인 한 고조 유방이 거대한 백사를 한 칼에 두 동강 내고 적제의 아들이 백제의 아들을 죽였노라고 외친 것과 같은 이야기다.
어린 정은 조나라를 제 고향으로 생각했고, 진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았다. 다만 무서운 아저씨 여불위, 아버지와 어머니 조희가 하자는 대로 진나라에 왔을 뿐이었다. 부친 영자초 장양왕은 여불위의 설계로 왕위에 올랐기에 왕위에 오르자마자 여불위를 상국이라는 왕과 맞먹는 재상 자리에 앉혔다. 상국이라는 자리는 재상 중에서도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 갖는다. 그로부터 한참 뒤 후한 말기 동탁이 어린 왕 앞에서 상국의 지위에 오른 바 있다.
기원전 247년 영정은 아버지 장양왕이 재위 3년만에 죽자 왕위를 계승해 진나라 왕위에 올랐다. 그때는 여섯 명의 선대 왕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진의 영토는 이미 동서남북으로 크게 뻗어나 있었다. 사서에 나와 있는 대로 그 확장한 지명들을 다 옮겨 쓰려면 너무 많고 복잡하여 작가조차 헷갈릴 정도다. 한 마디로 천하통일은 실제로 거의 이루어져 있는 상태였다. 천하의 다른 6국에 대한 진나라의 확실한 접수절차만 남아있는 상태였다. 다만 그들은 마지막을 향해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이었다.
여불위는 여전히 상국으로서 중부라는 호칭도 겸했다. 그는 10만호를 봉토로 받았고 호를 문신후(文信侯)라고 했으며, 널리 빈객과 학자들을 초빙하여 천하를 병합하려고 했다. 모든 국사는 여불위가 알아서 처리했다. 영정이 정식으로 왕 노릇 하기까지 9년간 중요한 나랏일은 재상인 여불위가 맡아서 다 처리한 셈이다. 이때 여불위는 제자백가 사상을 집대성해 <여씨춘추>를 지었다. 여씨춘추는 오늘날 백과사전의 기원으로 누구나 읽어야할 필독서가 되었다.
영정 재위 9년간, 장군 몽오가 위나라를 공격해 20개성을 빼앗았다. 특히 이때 훗날의 재상 이사가 여불위의 개인 집사가 됐으며, 몽오(蒙?), 왕의(王?), 표공(?公) 등이 진나라 장군이 됐다. 그들은 앞으로 서술할 진의 천하통일 전쟁의 영웅으로 성장한다.
진나라의 욱일승천하는 기세에 위기를 느낀 한·위·조·위·초 등 다섯 나라가 함께 진나라를 공격해 전쟁을 벌였으나, 오히려 이들 합종군은 진을 당해내지 못했다. 내친 김에 아예 끝을 보려는 진나라는 승전의 기세를 타고 계속해서 위나라 영토를 점령해 나갔고, 동군까지 쳐들어갔다. 다급해진 위나라 임금 각(角)이 일족을 이끌고 거주지를 옮겨서 험한 산세에 의지해 하내(河內)를 지켰다. 이제 진나라는 짐승들을 한쪽 구석으로 몰아 목을 따려는 포수로서의 여유를 부리며 짐짓 산천경개를 감상하고 있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얘기고, 이제부터가 진짜다. 킹메이커 큰 장사꾼 여불위가 장양왕이 별 볼 일 없던 인질 시절, 자신의 애첩 조희를 선물로 준 일이 있음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이다. 그녀가 생각지도 못하게 태후가 되자마자 나이 서른여섯의 한창 나이에 남편 장양왕이 죽었다. 어린 영정 왕이 즉위하고도 조태후는 첫사랑 여불위를 잊지 못하고 툭하면 밤마다 마차를 타고 승상 여불위의 집을 찾는다. 여불위는 점차 위기를 느끼게 된다.
여불위는 서둘러서 자신을 대신할 조태후의 애인감을 찾기에 이른다. 장사꾼다운 감으로 자신의 삼천 식객을 총동원하여 전국에 쓸 만한 인재(?)를 찾아보다가 고진감래라고 실로 딱 맞는 재목을 구한다. 그가 바로 일만년 중국사를 통틀어 이름 난 노애다. 사마천의 표현대로라면, 노애는 음란한 곡을 연주하면서 음부에 단단한 오동나무로 만든 수레바퀴를 매달고는 돌려댔다고 한다. 여불위는 수하들을 시켜서 태후에게 은근히 이러한 소문이 전해지게 하여 그녀의 욕정을 불러일으켰다.
이 소문을 듣고 몸이 달아오른 태후는 노애를 만나게 해달라고 여불위를 달달 볶는다. 여불위는 “거, 사람 참!” 하며 애를 태우게 하다가, 못이기는 체하며 노애를 태후에게 보낸다. 처음엔 점잖게 셋이서 다 같이 술 한 잔하면서 탐색전을 벌이다가, 적당한 때에 여불위가 쓱 빠지고 둘만 남겨 놓고 나왔다. 그 즉시 조태후가 노애를 희롱하니 과연 명불허전! ‘내 어찌 그동안 너 없이 살았던가?’ 지난 세월이 너무도 아쉽기만 하였다. 이야말로 하늘이 보내준 선물 중에 선물이 아니던가!
그날 밤 이후 조태후는 만사 제치고 노애에게 매달려 뜨거운 불장난을 벌였다. 낮에 잠깐 보는 정무도 노애를 시켜 일찌감치 처리하고는 그냥 둘이서 낮이고 밤이고 없었다. 무릉도원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