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당선] 핀란드 유학 중 한국인 부부가 대통령께 보내는 두 표의 메시지
[아시아엔=박은찬·박채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핀란드에서 11개월째 거주하고 있는 신혼부부입니다. 저희가 한국을 떠나 있던 지난 동안 여기서 접한 한국 관련 뉴스는 정말 엄청나고 강렬하였습니다. 외국인 친구들이 물어보는 한국의 이런저런 소식들은 때론 부끄러웠습니다. 반면,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한국의 모습을 이야기 할 때 그들은 몹시 부러워했습니다. 깨어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 그것이 현실에 반영되는 그 값진 경험을 한국인은 해내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진작 정치에 관심을 갖고 투표권을 좀더 적극적으로 행사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정치를 싫어하게 만든 정치인과 그렇다고 정치를 정말 싫어해 버리는 우리들의 합작품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번 재외국민투표에 아주 조금은 망설였습니다. 왕복 1200km, 13시간, 26만원의 교통비를 들여서 저희 부부의 투표 용지 두장에 도장을 찍는 것이 대한민국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 지 확신이 서지 않았었습니다. 그 찰나에 촛불을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한명 한명이 모여 철옹성 같던 권력을 무너뜨린 것을 떠올려보니 울컥하는 맘과 함께 책임감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아직은 없지만, 미래에 태어날 저희 자식들에게도 변화한 대한민국을 부모가 직접 만들었다는 일종의 ‘영웅담’을 들려줄 것을 생각하니 투표하기 전부터 뿌듯했습니다. 미래에 투자하는 것 치고는 결코 비싸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결국 저희는 새벽에 출발하여 자정에 집에 돌아오는 원정투표를 하고 왔습니다. 저희가 담은 두 표의 메시지를 이렇게 전달할 수 있어서 기쁩니다.
남편의 한 표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주십시오. 정의에 대한 정의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적어도 우리 아이들에게는 타인을 짓밟고 올라서지 않고도 생존하며 행복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가르치고 싶습니다. 편법과 반칙을 하지 않으면 바보가 되는 세상에서 정의를 지키겠다며 용감하게 행동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버티거나 살아남지 못한 채 순응하며 결국 편법과 반칙의 대표주자가 되어버린 사회악을 우리는 종종 목격하고 있습니다. 과거 정의감에 불타오르던 검사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고개 뻣뻣이 쳐들고 법정에 들락날락 거리는 사람들을 보는 게 일상화됐습니다. 그들이 현명한 걸까요?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는 것이었을까요? 순응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존이 어려운 이 불합리한 세상에서, 순응하고 악의 편에 서면 떵떵거릴 수 있는 이런 세상에서 오로지 개인에게만 모든 책임을 떠넘길 수 있을까요? 그들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것은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불의에 맞서는 것은 엄청난 용기와 열정 그리고 희생을 치를 각오가 돼있어야 하며 그것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길입니다. ‘불’의 세상에서 ‘얼음’의 행동을 하라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탁드립니다. 불의에 맞서서 잃게 되는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사회적·법적·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십시오. 불의를 저지르는 사람이 제대로 처벌될 수 있도록 해주시고 재벌과 거물 정치인 등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처벌의 경중이 자본에 좌지우지 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곧 그 사람이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비례하기 때문에 월급 150만원을 받는 사람에게 벌금 5만원은 하루의 시간을 의미하지만 월 1000만원을 버는 사람에게는 단 몇 분의 시간일 뿐입니다. 따라서 그 경중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을 해결한 좋은 예가 핀란드에 있습니다. 핀란드의 교통범칙금은 수입에 비례해서 누구나 자신이 가진 것만큼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법적 처벌은 큰 부담이 되게끔 해주십시오.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는 말이 바보 같은 말이 되지 않도록 해주십시오. “법을 지켜봐야 나만 손해”라는 말이 멸종되어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저 또한 한명의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노력하겠습니다. 이번 대선투표를 하러 간 긴 여정이 결코 헛되지 않고 자랑스러울 수 있도록 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내의 한 표
이번만큼은 개인의 명예와 경제적 잇속을 챙기기 바쁜 대통령이 국민의 대표가 아니었으면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의 안정, 행복, 평안을 위해 헌신하는 리더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서 막중한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핀란드를 보면 이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 보입니다. 교육강국이라는 명성에 다소 가려져 있지만 핀란드 정부와 공공기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세계 1위입니다. 핀란드 국민들이 정부와 공공기관을 신뢰하는 이유는 깨끗한 정치에 있습니다. 그들은 국민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헌신적으로 일하며 이와 관련한 모든 예산집행 정보는 공개합니다.
핀란드의 정치는 핀란드 국민의 행복도에 크게 기여합니다. 핀란드의 국민행복지수는 전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뽑힐 정도로 높습니다. 이곳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국민 모두에게 이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핀란드의 복지시스템에 많은 국민들이 혜택을 받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반면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 정부는 ‘행복을 추구해야 할’ 국민의 기본권에 먹칠을 해놓았습니다. 세금은 개인의 사사로운 이익으로 줄줄이 새어나가서 정작 수혜자여야 할 국민을 위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은 가파르게 치솟는 주거비용에 월급의 절반 이상을 대출금 이자나 월세로 지출하고, 남은 월급을 쪼개 힘들게 아이들을 학원에 보냅니다. 그리고 나면 영화 한편 볼 돈은 사치처럼 여겨집니다. 국민이 생존에 대한 걱정 없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일이 끝난 후엔 가족들과 함께 앉아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을 돌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이 행복한 건강한 국가가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이를 가진 여성이 설 자리가 없습니다.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행복을 느끼는 워킹맘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여자로서 아이를 키우며 일자리를 지켜가는 것은 전쟁 같은 일입니다. 탁아시설의 태부족, 보육시설에서의 아동학대 뉴스, 육아와 일의 불균형, 직장 내 워킹맘의 좁은 입지가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살펴주시길 바랍니다.
대통령님, 대한민국의 자식을 키우는 모든 여자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해 주십시오. 출산휴가, 육아휴직이 당연한 선진적 문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합니다. 수준 높은 탁아·보육시설을 충분히 마련하고, 양질의 보육교사를 양성하여 고용할 수 있는 기반이 필요합니다. 아직 갈 길은 멀지만 최소한 아이 있는 여성이 마음 편히 경제활동을 할 수 있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이번만큼은 교육자로서 그리고 아이의 엄마가 될 여자로서 제가 기다리던 대통령이 한국을 위해 일해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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