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채아의 핀란드 통신] 최대 학생 로봇대회 ‘이노까스 토너먼트’ 참관기
[아시아엔=핀란드/박채아 핀란드 오울루대학교 석사과정] 핀란드에선 15년째 전국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로봇 토너먼트가 열리고 있다. 이노까스 로봇 토너먼트가 바로 그것이다. 2003년 헬싱키대학 산하 교육기술 연구기관인 ‘이노까스’(Innokas)가 처음 시작했다. 첫 행사 때는 참가자가 40여명에 불과했으나 5월 17일 오울루대학교에서 열린 올해 대회에는 학생 680여명이 참가했다.
이노까스 로봇 토너먼트에는 프리스타일, 씨름, 댄스 및 연극, 구조, VEX 등 5가지 종목으로 진행된다. 짧게는 2, 3개월, 길게는 1년 전부터 학생들은 학년·성별에 상관없이 친구들과 한 팀을 이뤄 참가하고 싶은 종목을 정하고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필자는 행사 기간 이틀 동안 이노까스 로봇 토너먼트에 참가한 학생들과 교사들을 인터뷰했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내내 “교육의 목적은 기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는데 있다”고 한 장 자크 루소의 말이 맴돌았다. 프로그래밍이나 기술보다는 미래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세대에게 인간에게 필요한 역량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행사장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협력 없이 ‘우승’은 한갓 바람일 뿐
일반적으로 경연대회라고 하면 상대보다 더 많은 점수를 얻거나, 상대편을 넘어뜨려야 우승을 하는 게 통례다. 그런데 이노까스 로봇 토너먼트에서 열린 VEX 로봇대회에서는 이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 경기에 두 팀이 참여하는데, 두 팀이 정해진 3분 안에 미션을 함께 완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A팀과 B팀이 미션을 마치는데 30초가 걸렸고 C팀과 D팀이 1분이 걸렸다면, A팀과 B팀이 동시에 함께 올라가는 방식이다. 만약 3분 안에 미션을 완수하지 못했다면 두 팀 모두 탈락하게 된다. 경기에 참여한 상대편이 경쟁자가 아니라 협력을 발휘해야 한다. 경기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어느 한 쪽을 응원하기보다 두 팀 모두 잘 되길 바란다.
스포츠 시합 등에서의 경쟁은 관객들에게 재미를 높여준다. 하지만 흥미와 인기보다는 교육적 측면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함께 하는 방법을 익혀갈 수 있는 판을 짜주는 곳이 이곳 로봇 경진대회였다.
과정 속에서 배우는 것들
프리스타일 로봇을 전시한 장소에서는 본인이 만든 로봇을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5학년인 니꼬(Niko)는 3개월 동안 로봇을 만들면서 구글 닥스(Googld Docs)에 기록한 일기를 한 장씩 보여주며 자신의 작품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니꼬의 일기장을 보니 로봇을 만드는 과정뿐 아니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발생했던 문제점과 해결방법도 날짜별로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 친구들과 한 팀으로 일하면서 느꼈던 어려운 점과 깨달은 점도 재밌게 적어 놓았다. 니꼬의 일기를 보면서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로봇 관련 지식과 기술 외에 문제 해결능력과 친구들과의 협력방법도 몸소 경험하며 배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노까스 로봇대회 평가 항목에는 자신의 프로젝트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기록물 평가항목이 있다. 기록물은 글, 비디오, 사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준비할 수 있다.
헬싱키 지역 학교의 디지털화 전략을 담당하고 있는 파시실란더(Pasi Silander)는 “학생들이 문제 해결 과정을 문서 등으로 시각화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문서를 작성하면서 학생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와 그에 대한 해결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게 되고 이는 결국 보이지 않는 학습을 돕기 때문”이라고 했다.
인간과 로봇의 조화
댄스 및 연극 로봇대회를 마지막으로 이노까쓰 로봇 토너먼트가 막을 내렸다. 대회에서는 학생들이 반드시 로봇과 함께 직접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쳐야 한다. 프로그래밍이나 하드웨어, 로봇의 움직임뿐 아니라 로봇이 스토리 및 음악과 조화를 이루는 지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로봇이나 프로그래밍을 표현수단의 하나로 보고 예술에 접목한 행사를 마련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노까스의 총책임 티나코르호넨(Tiina Korhonen)은 이노까스 로봇 토너먼트의 향후 목표나 비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핀란드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참가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를 통해 학생들이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자신의 기술이 다양한 상황에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기술은 인간이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결국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는 인간이기에 학생들에게 기술보다 먼저 가르쳐야 할 것은 사람으로서의 덕목이다.
뉴욕시립대 교수이자 자기조절학습 연구분야 대가인 베리짐머맨(Barry Zimmerman)은 “환경이 학생의 학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하였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성장하고 학습한다. 이번 행사를 통해서 미래세대가 바른 가치와 인성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핀란드 어른들의 책임감을 엿볼 수 있었다. 작년 7월 이곳에 온 이후 핀란드가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은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