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당선] 트럼프 vs 시진핑 사드갈등 해법은?

[아시아엔=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미중 패권경쟁과 한국의 전략> 저자]

2016년의 미국 대선 결과를 예상 밖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트럼프는 이미 1987년부터 미국의 ‘대통령 감’으로 인식되었던 인물이다. 트럼프는 10권 이상의 저서를 펴낸 지식인이며 하루에 적어도 4시간 정도 책 읽는 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하는 독서인이기도 하다. 트럼프를 대책 없는 인물로 폄하하거나 비정상적인 인물로 치부할 경우 우리는 제대로 된 대미정책을 수립할 수 없고 미국이라는 세계 패권국가와 잘 지내지 못하게 될 경우 피해를 입는 것은 우리나라지 미국이 아니다.

우리 언론과 식자들은 마치 중국이 미국과 맞먹는 나라인 것처럼 미중 두 나라를 ‘G2’라고 칭하든가(G2라는 용어는 주로 한국에서나 쓰이는 용어다) 혹은 “미국과 러시아가 제2의 냉전을 벌이고 있다”는 등 현실성 없는 표현을 하고 있는 통에 미국 국력의 진면목을 잘못 알고 있다. 미국은 중국보다 GDP 총액이 1.63배인 나라이며 1인당 소득은 7배가 넘는다. 중국인은 하루 평균 7달러를 소비하지만 미국사람들은 97달러를 소비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력은 동맹국을 포함시키지 않을 경우 중국 군사력의 10배 정도로 평가되고 있다. 두 나라는 아직 상대가 되지 않는다. 미국과 러시아가 제2의 냉전을 벌인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의 2016년도 GDP는 미국의 6.9%에 불과하며 한국의 그것보다도 작다. 한국보다 경제력이 약한 나라가 미국과 냉전을 벌일 수는 없을 것이다.

미래 어느 날 미국의 국력이 중국에게 뒤질 것이라는 주장들이 있지만 미래를 규정하는 4차산업혁명이 주로 미국의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미국의 세기가 저물고 있다는 말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셰일혁명’ 덕택에 앞으로 200년 쓸 석유와 100년 쓸 가스를 확보하고 있다. 에너지와 식량을 모두 자급자족하는 역사 이래 초강대국이 출현하고 있는 즈음이다. 트럼프의 막 가는 듯한 외교정책은 이같은 막강한 국력을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트럼프는 대선 기간 중 “나토는 무용지물”(NATO is Obsolete)이라고 외치고, “한국은 방위비를 더 내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군을 철수하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된 후 “나토는 중요하다. 그런데 방위비를 좀 더 써야 한다”고 말했고, 한국에 대해서는 “한미동맹은 ‘철갑 동맹’ (ironclad alliance)이니 걱정말라”고 했다. 그러다가 “사드 미사일은 한국을 방위하기 위해 배치하는 것이니 한국이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한국 국민들을 당혹하게 만들고 있다. 한국의 반미주의자들은 “미국이 상전이고 한국은 호구냐”라는 구호의 현수막을 재빨리 도심 한복판에 내다걸었다.

그러면 한국은 미국과 어떤 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트럼프 대통령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트럼프의 미국이 원하는 것과 우리나라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정리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은 한국에 대해 두 가지를 원하고 있다. 하나는 무역 불균형 문제를 해소하자는 것이고 두 번째는 한미동맹의 유지비용을 한국이 조금 더 부담하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는 중국, 일본과의 무역 불균형에 대해서,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방위비 분담 문제 역시 한국에 대해서라기보다는 세계 전역의 미국 동맹국들에게 똑같이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해서는 한국에 대해서보다 더욱 거친 말투로 방위비 증액을 요구했다.

미국이 불공정 무역국가로 규정한 기준은 미국과 무역거래를 통해 1년에 200억 달러 이상의 무역흑자를 내는 경우다. 한국은 한미 FTA가 발효된 지 1년 후인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매년 미국에 대해 205억~280억 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한미 FTA 이후 5년(2012~2016년) 동안 한국은 대미 교역에서 1119억 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이 중국과의 무역에서 같은 기간 약 1조 7000억 달러 적자를 본 것과는 비교되지 않지만 트럼프의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

다음은 방위비 분담 문제로, 미국 일각에서는 미국이 해외주둔 미군을 철수시키고 고립주의로 돌아가자는 의견이 점차 강한 지지를 얻고 있다. 2015년도 <TIME>지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72%가 더 이상의 개입주의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입정책의 지속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28%에 불과했다. 이같은 사정을 배경으로 트럼프는 개입을 지속하되 동맹국들의 분담금을 더 올리자는 발상을 갖게 된 것이다. 유럽 동맹국들에 대한 미국의 방위비 증액 요구는 이미 오바마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나타난 것이다. 오바마는 영국 등 나토 동맹국들에게 GDP 대비 국방비를 적어도 2% 이상으로 올릴 것을 요구했다. 전년에 비해 대폭 감축된 미국의 2015년 국방비는 GDP 대비 3.3%이며 같은 해 한국의 국방비는 GDP 대비 2.35%였다.

미국은 한국의 국방비는 한국이 처한 국가안보 상황에 대비할 경우 너무 적은 것이라고 보고 있다. 참고로 이스라엘의 국방비는 GDP 대비 5.8%다. 미국의 경우 국방비와 복지비가 비슷한 규모인데 한국의 경우 복지비가 국방비의 약 3배 정도 된다는 사실에 분노한 더그 밴도우(Doug Bandow) 같은 학자는 “한국을 미국의 세계 방어망에서 걷어 차 버려라. 한국은 복지의 여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나라다”라는 제목의 글을 수년전 발표한 바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기치로 내건 트럼프 역시 한국의 국방비와 관련해 이보다 더 심한 견해를 가지고 있음을 2011년 간행한 책 <Time to Get Tough>에서 가감 없이 표현했었다.

무역의 경우 한국은 미국 적자의 대부분을 야기시키고 있는 중국에 바로 이웃하고 있기 때문에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미국과 협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방위비에서 한국은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들어줄 수밖에 없다. 그동안 트럼프가 불쑥 불쑥 요구했던 비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주한미군 주둔 지원금을 한국이 다 내야 한다. 혹은 사드(THAAD) 비용 10억 달러(1조여원)를 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군 주둔비를 우리가 다 낼 경우 약 1조원이 더 든다. 우리나라 현재 국방비의 2~3% 정도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한국의 안보 이론가들은 GDP의 3% 정도를 국방비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GDP 3% 국방비란 미국이 현재 요구한 비용을 모두 다 제공하고도 남을 돈이다.

미어셰이머 같은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는 작년 여름 <Foreign Affairs> 기고문을 통해 “독일 주둔 미군을 철수시키라”고 제안했다. 아시아 주둔 미군 역시 중국의 상황을 보고 서서히 철수 여부를 결정해야 하리라고 주장했다. 미국이 처한 국제정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능히 나올 수 있는 주장이며 트럼프 외교정책의 배경이기도 하다. 궁극적으로는 자주국방이 원칙이지만 지금 당장은 미국의 요구를 일정 부분 들어주며 용미(用美)정책을 취하는 것이 현책(賢策)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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