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7일] 걸프전쟁 종료, 쿠웨이트 탈환

2010년 比 반군 아부 사야프 정부군 공격

2010년 2월27일 알카에다와 연계된 필리핀 무슬림 반군 ‘아부 사야프(Abu Sayyaf)’가 필리핀 남부의 한 마을을 공격, 민간인 등 13명이 숨졌다. 반군 70여명은 이날 새벽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900㎞ 떨어진 바실란 지역의 말루소 마을을 공격, 민간인 12명과 정부군 1명을 숨지게 했다.

이날 공격은 필리핀 정부군이 지난해 11월 말루소 마을 합판 공장에서 일하다 아부 사야프에 의해 납치됐던 중국인 2명을 구출해낸 지 몇 시간 만에 일어났다.

꼭 6년 전인 2004년 2월27일에도 ‘아부 사야프’ 반군들은 거사를 치렀다. 유람선 수퍼페리호에 폭탄 공격을 감행, 민간인 등 116명이 사망한 필리핀 최악의 테러 공격이 이날 이뤄졌다.

‘아부 사야프’ 반군들은 무슬림이 많은 남부 민다나오의 독립 국가 건설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는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다. 1500명의 병력을 보유한 이 단체는 지도자 아부 사바야의 지휘 아래 민다나오 서쪽 바실란섬과 술루 군도를 중심으로 테러행위를 일삼고 있다.

모로민족해방전선(MNLF)과 여기서 갈라져 나온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과 함께 필리핀의 이슬람 분리주의 3개 파벌의 하나로 가장 과격하다. 1980년대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서 지원병으로 참전했던 무자헤딘(이슬람 전사)이 90년대 귀국해 이 단체를 조직했다. 미국이 발표한 28개 외국 테러조직 명단에도 포함돼 있다.

2007 지구촌 주가 폭락한 ‘회색 화요일’

2007년 2월 27일 중국 상하이주식시장이 대폭락 했다. 무려 -8.8%의 낙폭을 보이며 세계주가의 동반 폭락을 불러온 것. 이른바 ‘회색 화요일(gray Tuesday)’ 사건이었다.

중국 상하이시장의 대폭락은 먼저 영국 런던시장을 직격했다. <파이낸셜 타임즈>가 지정하는 100개의 우량 종목으로 구성된 ‘FTSE100지수’가 2.3% 하락한 데 이어, 미국 뉴욕에서는 다우지수가 -3.3%로 500포인트 가까운 대폭락을 기록했다.

중남미에서도 멕시코가 4.7%, 브라질이 7.3%, 아르헨티나가 7.5% 하락했다. 오스트레일리아가 2.4%, 한국이 3.1% 하락, 24시간 동안 유럽, 북미, 남미, 아시아에 걸쳐 세계 주식시장은 연쇄적으로 대폭락 상태를 맞았다.

당시 분석가들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이미 세계적으로 거품 붕괴 조짐이 나타났다고 진단했다. 주가가 하락하기 전까지 상하이 주가는 1년 동안 700%나 올랐다. 이는 완전한 거품 상태였다. 상하이의 투자 과열과 주택시장의 거품은 굉장했다. 회색 화요일 직전인 2007년 1월에는 한 달 동안만 138만 증권계좌가 개설됐으며, 새로운 투자자들이 일제히 주식시장으로 몰려들었다.

상하이주식시장이 과열되는 동안 서브프라임 모기지 채권에도 많은 문제점이 발생했다. 세계 최대급 은행이자 금융그룹인 HSBC의 일원인 HSBC홍콩은 100억 달러나 되는 대손충당금을 쌓아두고 있었다. HSBC그룹은 최대 100억 달러를 회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융자금을 돌려받지 못할 경우까지 상정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100억 달러의 자금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험한 상황이 닥치자 눈치 빠른 투자자들은 일단 자금을 빼내야 한다고 판단했으며, ‘회색 화요일’은 바로 이런 이유로 촉발된 것이었다.

미국 주택시장의 거품은 아시아 경제를 지탱해왔었다. 주택과 부동산의 재료가 되는 목재, 시멘트, 철 등을 아시아 각국이 대량으로 수출해왔기 때문. 수출로 벌어들인 자금은 증시로 유입됐다. 미국의 부동산 거품이 상하이증시 거품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미제사건으로 남은 고드라 열차 사건?

2002년 2월27일 새벽 인도의 구자라트 주도(州都) 아메다바드 남서쪽 150킬로미터에 위치한 고드라(Godhra)시에서 힌두교 활동가들이 탑승한 열차가 무슬림 폭도들의 공격을 받아 수십 명이 살해되는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힌두 민족주의 단체의 집회에 참가한 뒤 귀향중이던 힌두교도들이 탑승한 열차에 대한 무슬림들의 습격사건으로 알려진 사건이다.

인도 정부는 ‘고드라’시 일원에 통행금지령을 내렸고 구자라트주 경찰에게 말썽을 일으키는 자들에 대해 즉석에서 발포하도록 명령했다.

열차는 사바르마티 익스프레스 열차. 힌두 성지인 아요디아에서 돌아오던 150여명의 힌두 성지순례단이 타고 있었다. 그 열차가 구자라트의 고드라역에 도착했을 때 한 무리의 무슬림 폭도들이 한 객차 안에 휘발유를 뿌린 다음 창 밖에서 불타는 천을 던져 화재가 발생했다.

이 불로 58명의 힌두들이 숨졌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힌두들이 무슬림들에 대한 보복을 감행, 대규모 폭동으로 번졌다. 힌두교도들은 방화 배후로 이슬람교도를 지목하고 조직적 보복 테러를 저질러 2000여명의 이슬람교도가 사망했다. 또 수천 곳의 이슬람 성지를 파괴했다.

처음엔 이 열차 화재가 폭도들에 의한 방화가 아닌 단순한 사고였다는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인도 전역은 그 진위를 둘러싸고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조사보고서는 정치적으로 이용됐고, 사태 발생 11년이 지난 2013년 2월 현재까지 사건의 배후 및 책임을 놓고 논란은 식지 않은 상태다.

1991년 이라크로부터 쿠웨이트 독립

1991년 2월27일 미군과 영국군 등 다국적군이 이라크로부터 쿠웨이트를 탈환했다. 약 한달 전 다국적군의 공습으로 시작된 걸프 전쟁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전쟁은 많은 상처를 남겼다. 이 전쟁으로 이라크병사와 민간인 등 이라크인 15만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다국적군도 사망 126명, 실종 56명으로 집계됐다.

1990년 8월 초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원유시장에 물량을 과량 공급, 유가를 하락시켜 이라크의 경제를 파탄에 몰아넣었다”며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이어 쿠웨이트를 점령, 19번째 속주로 삼아 통치했다.

이에 미국과 다국적군은 같은 해 1월 하순 이라크에 전쟁을 선포, 무려 10만회 이상 출격해 공중폭격을 퍼부었다. 이라크의 도로, 항만, 군수시설 등 주요시설 대부분이 파괴됐다.

2월24일부터는 2차 대전 이후 최대의 전면지상전을 개시, 이라크 42개 사단 가운데 41개를 무너뜨렸다. 당시 부시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쿠웨이트 해방과 함께 전쟁의 종식을 선언했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전투를 중지하고, 유엔 안보 이사회가 제시한 12개 결의안을 모두 수락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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