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21세기 최악의 테러”
기후변화는 이제 파키스탄의 일상
기후변화는 이제 눈 앞에 닥친 현실이다. 과학적 증거와 함께 전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홍수, 태풍, 가뭄 등은 기후변화가 실제 상황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해마다 큰 편차를 기록하고 있는 기온 폭과 비정상적으로 더운 여름, 세찬 강풍 등도 기후변화의 일부분이다.
파키스탄은 지금 모든 종류의 기후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인도 국경지대의 타르(Thar)같이 건조한 지역에서는 수십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수많은 사람들이 키우던 가축과 함께 다른 곳으로 떠났다. 남쪽 신드(Sindh) 지역과 펀자브 지역의 대부분, 그리고 발로키스탄(Balochistan) 지역에서는 일년 열두 달 중에서 8달이 여름이고 섭씨 50도를 넘는 폭염이 맹위를 떨치는 날이 많다.
북쪽 산악지대인 카이버 파크툰코(Khyber Pakhtoonkhaw)와 길지트 발티스탄(Gilgit Baltistan), 그리고 국경지대의 잠무 카슈미르(Jammu & Kashmir)에는 혹한과 함께 폭설이 내리는 날이 부지기수다. 특별히 2005년 대지진으로 땅이 가라앉기도 하고 신드 지방의 경우 10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한 사이클론이 해안가 일대를 휩쓸고 가기도 했다.
파키스탄의 북부 및 중부 지역에는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는 한편 남부 및 남서부에는 비가 거의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평균 강수량에 못 미치는 형편이다. 강수량이 줄어든 데다가 히말라야 산맥에서 녹아 내려오는 빙하의 양마저 감소하니 파키스탄 강물 유입에 문제가 생겼다. 이에 급수에 비상등이 켜졌었다.
하지만 2010년에는 전혀 다른 상황이 발생했다. 카이버 파크툰코 지역과 신드 지역, 그리고 펀자브 지역 일부가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물에 잠기게 된 것이다. 정부 공식 통계에 따르면 2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2천만 명 이상이 대피했으며 파키스탄 국토의 5분의 1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학교 건물과 공공 청사 등은 수재민들을 위한 대피소가 됐고 수천 개의 임시 막사 역시 세워졌다. 7월부터 시작된 폭우는 그 해 9월까지 계속됐으며 수재민들이 아픔을 극복하고 복구를 채 마치기도 전에 다음해인 2011년에는 예상보다 훨씬 이른 4월부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시 9월까지 계속됐다.
농지가 침수되고 수천 채의 가옥, 학교, 공공 청사가 무너졌다. 파키스탄 기상청은 처음에는 예년에 비해 강우량이 적을 것이라고 발표했으나 폭우가 시작되자마자 발표 내용을 번복해야만 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또다시 학교로, 정부 건물로, 임시 막사로 대피했으며 350명 이상의 사망자와 함께 수천 마리의 가축이 떼죽음을 당했다.
가뭄 후 기록적인 폭우 쏟아지는 등 극단적인 날씨
전문가들은 신드 지방에 내린 폭우가 세계기후변화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기상청 고문인 카마르 우즈 자만 차우드리(Qamar-uz-Zaman Chaudhry) 박사는 한 인터뷰에서 4주 동안 신드 지역에 내린 폭우의 양이 무려 3700만 에이커 피트(약 1조 6112억 입방 피트)에 달한다고 했다. 그는 또한 최근 몇 년간 파키스탄에서 나타나고 있는 극단적인 날씨의 형태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기후 변화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고 했다.
신드 지역은 전혀 비가 오지 않는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다가 2011년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졌다. 2003년 7월에도 홍수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 적이 있는데 이같이 극단적인 날씨는 타르 사막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원래 타르 사막은 3년 주기로 가뭄이 왔다가 12개월 정도 지속이 되곤 했는데 이 같은 흐름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다. 3년 주기로 오는 가뭄이 12개월 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되자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는 대이동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기상 전문가인 이슬라마바드 GCISC(Global Change Impact Studies Centre)의 무하마드 모신 이크발(Muhammad Mohsin Iqbal)박사는 극단적인 날씨 형태의 증가, 빙하의 해빙, 건조기후 지역의 기온 상승 ? 이렇게 3가지가 파키스탄이 처한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다. “기온이 상승함에 따라 건조 지역에서의 수확량이 줄고 있고 수산업 종사자들도 2006년부터 어획량이 줄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겨울 유난히 길 것···올해 처음으로 눈 내린 지역도 많아
올해 파키스탄의 겨울은 유난히도 길게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라니냐 현상의 영향으로 3월 중순까지 혹한이 이어질 것이라는데 파키스탄 기상청의 아리프 메흐무드(Arif Mehmood) 국장은 지난 수 주간 파키스탄 전역이 영하의 기온을 보였다고 밝혔다. “파키스탄의 수도인 이슬라마바드에서조차 5주 이상 영하의 날씨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이면 섭씨 50도 이상으로 올라가는 신드 지역에서조차 영하 1도를 기록했습니다. 이것은 기상 관측 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라니냐는 스페인어로 ‘여자아이’란 뜻인데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은 고수온 현상이 일어나는 ‘엘니뇨’와는 달리 저수온 현상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라니냐와 엘니뇨는 종종 상호작용하며 영향을 끼치기도 하는데 압력의 차가 바람의 교환을 불러 일으키며 동태평양의 따뜻한 물을 서쪽으로 밀어내고 대신에 동쪽의 깊고 차가운 물로 그 자리를 대신한다고 한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파키스탄의 많은 지역에 올해 처음으로 눈이 내렸다. 앞으로 남아시아 지역에 상당한 기후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전조이기도 하다. 보통 해발 6000 피트 이상의 산악 지대에 눈이 내리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인 현상이지만 올해는 해발 4000 피트 정도의 산악 지대에도 눈이 많이 내렸다.
저수온 현상의 라니냐는 육지의 기온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앞으로 몇 달 동안 이상저온현상이 계속된다면 농작물 수확량 감소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파키스탄의 농업은 이미 작년 대홍수로 막대한 타격을 입은 바 있다.
카마르 우즈 자만 차우드리 박사는 기후변화가 파키스탄의 일상이 됐다고 이야기한다. “사실 파키스탄은 후진국으로서는 드물게 기후 변화에 대해 국가적 정책을 세운 나라입니다. 기후변화대처는 테러와의 전쟁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입니다.” 파키스탄은 전무후무한 대홍수를 겪은 이후 기후변화관련 정책 초안을 마련했다.
번역 이명현 기자 EnjoyMiracle@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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