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강의 콜롬비아 커피이야기 1] 콜롬비아 커피의 유래

마크 강. 한국명 강병문. 커피, 카카오, 사탕수수를 농가와 직거래하는 글로벌 업체인 아마티보(Amativo)의 한국지사장이자 커피비평가협회(CCA)의 라틴아메리카 담당 커피테이스터. 최근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새로운 트렌드를 한국에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마크 강. 한국명 강병문. 커피, 카카오, 사탕수수를 농가와 직거래하는 글로벌 업체인 아마티보(Amativo)의 한국지사장이자 커피비평가협회(CCA)의 라틴아메리카 담당 커피테이스터. 최근 콜롬비아와 에콰도르의 새로운 트렌드를 한국에 알리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아시아엔=마크 강 아마티보 한국지사장] 한국만큼이나 커피문화가 빠르게 변하는 나라도 없을 것 같다. 1990년대 인스턴트커피와 다방 커피가 대세였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프랜차이즈 바람이 불어 아메리카노 커피를 손에 쥐고 걷지 않으면 문화인이 아닌 듯한 분위기까지 조성됐다. 그러더니 지금은 좋은 커피원두를 골라 손수 내려마셔야 진정한 커피애호가 대접을 받는 듯한 모습이다. 바야흐로 홈브루잉(Home Brewing) 문화가 빠르게 퍼지고 있다.

좋은 원두를 생산하기 위해서 맛이나 향미가 좋은 아라비카 커피생두의 소비가 많아지면서 세계 최대의 커피 생산국가인 브라질과 3위의 콜롬비아 등 커피수출국가들은 그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한국무역협회(KITA)의 자료만 보아도 이 같은 사실이 쉽게 증명된다. 지난 3년간 생두 수입량은 2013년 10.6만 톤에서 2015년 12.8만 톤으로 증가했다. 베이스 또는 싱글 오리진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콜롬비아 아라비카생두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커피 생두의 수입 또한 증가하였다. 2013년에 1만3549톤, 2014년과 2015년 각각 1만8851톤과 2만1712톤이 수입되면서 꾸준히 시장 점유율을 넓혀나가고 있다.

콜롬비아 커피로 알려진 엑셀소(Excelso)의 본명은 ‘엑셀소 데 엑스포르타시온(Excelso de Exportacion)’, 한글로 번역으로 하자면 ‘콜롬비아산 수출용 생두라는 뜻이다. 콜롬비아커피연맹(FNC;Federacion Nacional de Cafeteros de Colombia)의 규정(Resolucion 1 de 1999)에 따라서 콜롬비아는 품질 높은 엑셀소의 생산을 고집해왔다. 아라비카 품종 중에서도 카투라(Caturra), 커스티조(Castillo), 콜롬비아(Colombia) 그리고 버본(Bourbon)등이 안데스산맥을 따라 많이 재배되며 수출 품질 규정을 통과한 생두들이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 콜롬비아산 생두는 100%가 아라비카이고 수출규정(스크린사이즈 14이상, 12/72 디팩트율 )에 맞춘 품질이 FNC로부터 보증되고 있다.

COFFEE HARVEST SCHEDULE

현재 콜롬비아에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지역은 안티오키아(Antioquia)이다. 하지만 이 밖에도 10개 이상의 주에서 아라비카 품종의 커피를 생산하고 있다. 해발 1300m이상의 고도에서 적절한 일교차, 일조량, 국지성 기후(microclimate)가 갖추어짐에 따라서 망고, 바나나 보다 커피 재배가 선호되고 있다. 한국에도 잘 알려진 후일라(Huila), 나리뇨(Narino), 안티오키아, 산탄데르 (Santander) 등이 콜롬비아 안데스의 3개 산맥(Oriental, Central, Occidental)을 끼고 있는 대표적인 생산 지역들이다. 콜롬비아는 한국보다 몇 배가 더 큰 국가이고 브라질처럼 끝없는 평야도 존재한다. 어떤 이유로 안데스 산맥을 따라서 험한 산속에 커피 재배 지역들이 위치하게 된 것일까?

지금 대부분의 커피 농장들은 안데스 산맥을 타고 북쪽의 안티오키아로부터 아래로 중앙 지방인 킨디오나 바예 델 카우카를 통해 남쪽으로 후일라나 나리뇨까지 이어지나 초창기 때는 그렇지 않았다. 콜롬비아에 커피가 유래된 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커피 씨앗이 카리브 해의 섬들로부터 옆 나라인 베네수엘라를 통해 상인 또는 예수회(Jesuit) 선교사들을 통해 들여졌다는 설들이 다양하다. 그러나 그중에서 가장 유력한 것은 1731년 콜롬비아의 대주교인 호세 구미야(Jose Gumilla)와 1787년 총독 카바예로(Caballero)가 콜롬비아에 처음 커피씨앗을 들여와 심었다는 설이다.

18세기 콜롬비아에서 재배에 성공한 커피는 1835년 노떼 데 산탄데르(Norte del Santander)에서 처음 대규모로 경작된다. 재배 지역들이 꾸준히 증가하면서 6만 포대(1포대= 70kg)였던 연 생산량도 19세기 말까지 60만 포대로 늘어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 생산은 대부분 동쪽 지방인 산탄데르 (Santander)와 쿤디나말카(Cundinamarca)였다. 콜롬비아 총 생산의 80%가 이 두 지방에서 나온 걸로 미뤄 중서부에서 커피 재배는 아직은 활발하지 않았다고 추정할 수 있다.

산탄데르와 쿤디나말카에서 성공적인 커피 경작을 계기로 콜롬비아 커피에 대한 투자가 이어져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콜롬비아 커피 산업의 방향이 새로 잡히게 된다. 그러나 20세기 초반 세계적으로 커피 가격이 폭락하면서 대규모 농장들이 연이어 파산하고 커피에 투자된 돈들이 다시 빠져나갔다. 이 여파로 끝없이 추락하던 콜롬비아 커피산업은 정부의 개입으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콜롬비아 정부는 커피연맹(FNC)를 설립함으로써 커피에 대한 모든 정책들을 관리하도록 하였다. FNC는 1927부터 커피에 대한 품질 관리, 품종개발, 가격 정책 등 커피에 대한 모든 것을 이끌어왔다. 대형 농장들의 파산을 경험한 콜롬비아 정부와 커피연맹은 더 이상 이러한 방식의 대규모 재배를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관리가 더 용이한 중소형 농장 운영 방식을 농가에 추천하고 있다. 콜롬비아 커피 재배도 동부 지역에서 안데스산맥의 중서부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커피 농장들의 현재 모습들이 갖춰지게 됐다. 이웃 국가인 브라질만 보아도 끝이 없는 평야에 대규모 농장들이 자리 잡으면서 아라비카와 로부스타커피를 함께 생산하고 있지만, 콜롬비아는 ‘대폭락의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 소규모-고급화 전략을 택했다. 이것이 콜롬비아 커피라고 하면 맛이 좋은 커피라는 인식을 낳게 한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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