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경제강국들, 북극으로 눈 돌리다
지구온난화가 계속되는 가운데 북극 해로가 뚫리면 빙하 속에 있는 천연자원을 두고 각국이 치열한 각축전을 벌일 것으로?예상된다. 중국, 일본, 한국은 물론 싱가포르 역시?북극을 둘러싼 체스게임을 두고 다양한 전략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러시아는 이미 2007년 아더 칠린가로프(Arthur Chilingarov)가 이끄는 잠수함 미션을 통해 북극 안쪽에 깃발을 꽂고 북극이 러시아 영토이며 북극에 묻혀 있는 천연자원 또한 러시아 소유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자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인 캐나다에서 북극 주변에서 군사훈련을 하며 북극이 캐나다의 영향력권에 있음을 과시했다.?미국은 그동안 중동 문제 등으로 북극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작년에?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북극위원회에 보내 앞으로 적극적인 행보를 이어갈 것을 시사했다.
세계 최대 에너지 소비국인 중국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싱가포르국립대학 동아시아연구소 첸 강(Chen Gang)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약 북극 대륙 아래 해역이 러시아 영토라는 주장이 힘을 받게 되면 중국은 북극의 풍부한 천연자원에 접근할 권한이 없어지게 됩니다. 러시아는 또 중국 선박이 북극 해로를 이용할 때마다 통행료를 내라고 할 수도 있지요.”
현재 중국은 직접적으로 러시아와 대척하지 않고 있다. 대신 캐나다, 북유럽 국가들과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최근에는 북극을 더 자주 탐사하겠다는 계획과 함께 8000t급 쇄빙선을 건조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우크라이나에서 건조한 기존의 설룡(雪龍)호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의 또 다른 전략은 일본, 한국, 타이완 등과 함께 북극을 공동 접근하는 것이다. 중국, 한국, 일본 등은 북극위원회에 가입해서 극지방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데 특별히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북극 해로가 뚫리는 것에 대한 기대가 크다.
스코트 보거슨(Scott Borgerson)은 ‘북극의 용융, 지구온난화의 경제적?안보적 영향’이라는 제목으로 <포린 어페어즈(Foreign Affairs)>에 기고한 글에서 “얼음 덩어리인 북극이 단순히 녹아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빠른 속도로 녹아 내리고 있다”고 했다. “북극이 녹아 내린다는 것은 이제 기정사실입니다. 북극 해로가 열림에 따라 새로운 무역길이 열리고 빙하 속에 있는 천연자원 개발도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캐나다를 경유하는 북-서 해로와 러시아 시베리아를 가로지르는 북-남 해로는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는 선박들의 이동거리와 시간을 단축시켜 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글로벌미래연구본부의 조영일 박사는 “한국이 이 같은 사업기회를 활용하는 데 무척 적극적”이라고 했다. 이미 극지용 쇄빙선 아라온에 대한 1000억원 가량의 투자가 이뤄졌고 연구소 건립 등도 계획 중이다.
삼성중공업의 경우 쇄빙선 3척을 건조했다. 러시아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원유를 수송하기 위해 러시아 최초 해운선사인 소브콤플로트(Sovcomflot) 회사가 발주한 것이다. 한국가스공사는 액화천연가스 개발을 위해 캐나다 회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북서지역에 액화천연가스 터미널을 세우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컨테이너 수송 허브와 석유화학 정제센터를 자랑하는 싱가포르 역시 북극 사업에 적극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여기서 관건은 북극 항로 활용인데, 말라카 해협 사이로 유럽과 아시아를 오가면서 싱가포르를 기항지로 삼는 선박들에게 과연 아무런 변화가 없겠냐는 것이다.
난양기술대학의 유안 그레이엄(Euan Graham) 박사는 1년에 최소 4개월에서 최대 12개월 내내 북-남 해로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2030~2040년에 이르러서야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다. “총 이용 선박 중 5% 정도가 북극 해로를 직접 통과할 수 있겠지만 싱가포르에 특별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아시아 국가간 무역이 늘어남에 따라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한 싱가포르는 이익을 보게 될 것입니다.”
싱가포르의 고민은 중국, 한국, 일본 등이 북극에?급격한 관심을 보이는 데에 있다. 이에 반해 북유럽 국가들의 고민은 러시아와 유럽이 이미 석유 개발 경쟁에 뛰어든 데 이어 아시아 국가들까지 가세하니 천연자원을 둘러싸고 충돌이 있지 않을까 하는 데에 있다. 또 다른 고민거리는 환경 문제다. 석유, 가스 개발 등은 해양을 오염시킬 수 있고 극지방의 태고적 자연을 파괴할 수 있다.
오로지 과학적 연구 목적을 위한 자연보호구역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와세다 대학의 히로시 오타 박사는 “북극 해로가 열림에 따라 경제적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근시안적인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남중국해 환경보호와는 달리 북극 환경보호를 위한 국제적인 노력은 부족한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상업적인 이해는 북극위원회의 목적인 지속가능한 발전과 충돌합니다.” 싱가포르 에너지 연구소 대표인 후만 페이마니(Hooman Peimani) 박사는 절박하게 호소한다. 북극의 경제적 효과를 노리고 개발에 들어가기 전 다시 한 번 생각해 달라고 말이다. “북-서 항로의 활용은 오가는 선박들로 인해 해양 오염을 가중시킬 것이며 석유 개발은 지구온난화를 앞당길 것입니다.”
이상의 여러가지 이유로?러시아, 미국,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아이슬란드, 스웨덴 등으로 이뤄진 북극위원회는 중국, 일본, 한국, 싱가포르 등의 입회를 막고 있다(어쩌면 류 샤오보 노벨평화상 수상을 둘러싼 중국과 노르웨이의 힘겨루기도 일정 부분 작용했을 수 있다).
한편 석유와 가스 개발을 넘어 친환경기술 개발을 위한 경제협력도 강화되고 있다. 또한 무역과 투자의 세계화와 함께 유럽 국가들이 이미 북극위원회 회원국이라는 점도 아시아 국가들의 가입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알래스카 대학에서 지리와 북극 정책을 가르치고 있는 로슨 브리검(Lawson Brigham) 교수는 미국의 자유 무역과 자유 항해를 주장한다. “언론에 하고 싶은 이야기는 국제 질서를 지키면서 일하는 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국제해사기구나 북극위원회에는 소수의 대표단과 외교관만 있으면 됩니다. 자유 항해를 논의하고 석유와 가스 개발 못지 않게 환경 보호를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저는 싱가포르, 한국, 중국 등이 북극위원회에 가입하는 것을 긍정적으로 봅니다.”
아시아의 경제강국들이 가입하게 되면 북극의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 한층 더 심화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북극의 석유, 가스 매장량은 전세계 매장량의 15~3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008년 미국 지질학 조사 자료). 북극위원회 규정을 지킨다는 것은 북극 지역 발전을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북유럽이 꿈꾸는 친환경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 기사에서 인용된 발언은 지난 1월 10~11일 싱가포르 에너지연구소가 주최한 ‘에너지 안보와 북극의 지정학’ 컨퍼런스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번역 이명현 기자 EnjoyMiracle@theasian.asia
{KOR}: 아시아 경제강국들, 북극으로 눈 돌리다 http://t.co/7zoFVZn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