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권의 훈훈한 세상] 인목대비 따님 정명공주 후손이 번창한 이유
[아시아엔=발복(發福)이라는 말이 있다. 운이 틔어서 복이 온다는 뜻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복을 염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종교 역시 복의 개념에서 기인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정초에 덕담으로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한다. 그러나 짓지 않은 복을 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복 많이 받으세요!” 대신 꼭 “복 많이 지으세요!”라는 덕담을 한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사소한 일에도 “Good luck to you.” 혹은 “God bless you”라고 한다. 우리보다 복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셈이다.
운이 트이는 것을 발복이라 한다. 풍수지리를 믿는 사람은 조상의 산소나 집터를, 무속신앙에서는 치성(致誠)으로, 일반 종교에서는 그들이 믿는 신이나 진리를 발복의 근원이라 믿는다. 그러나 명리학(命理學)이나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살펴보면 발복은 사람과의 만남이다. 세상 일은 초자연적인 해결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통하여 해결하게 되는 것이다.
<서경>(書經) ‘열명편’(說命篇)에 목종승정(木從繩正)이라는 말이 있다. 굽은 나무라도 먹줄을 친 대로 켜면 바른 재목을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나무는 먹줄을 따르면 곧아지고, 군주는 간언(諫言)을 따르면 성군이 된다”(木從繩則正 君從諫則聖)가 원문이다.
어떻게 하면 복이 터질 수 있을까? 서옹(西翁, 1912~1996) 스님이 탁발할 때의 일이다. 다리 밑 거지소굴을 찾아가 목탁을 치며 보시를 하라고 했다. 거지왕초는 혼잣말로 “별 거지같은 스님 처음 보겠다”며 볼멘소리를 하자 스님은 벽력같이 소리 질렀다.
“그래. 자손대대로 거지꼴로 보낼 텐가?” 왕초는 기가 죽어 먹던 밥 한 덩이를 바랑에 넣어주었다. 이렇게 스님은 거지 가족을 위해 축원을 해주고 돌아섰다는 얘기가 있다. 결국 짓지 않은 복은 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 씀씀이는 천지가 감동한다. 그러면 우주법계가 미소를 짓는다는 얘기다. 천지가 감동하는 마음 씀씀이는 특별한 것이 아니다. 티 없이 맑고 밝고 훈훈한 마음을 내서 그 마음 따라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넓고 큰마음으로 생명을 살리면 크게 발복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복을 많이 지어 큰 복을 받은 몇 사람의 예를 알아보자.
첫째, 양나라 무제와 국사인 지공스님과의 대화이다. 양무제가 지공 스님에게 자신의 전생을 알고 싶다고 했다. 지공스님은 양무제의 간청을 받고 전생 사를 얘기했다. “대왕은 전세에 나무꾼이었습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벨 때 오래된 절이 있어 가서 보니, 낡고 허물어져 있는 절을 보았습니다. 지붕도 다 허물어진 절 안에 오래된 불상이 비바람에 젖어 있었으며 공양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나무꾼은 착한 마음을 발하여 자기의 대나무 삿갓을 벗어 불상의 머리에 덮어주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보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요. 그 덕분에 이생에 인간이 되고, 왕의 몸을 얻게 된 것입니다. 대왕께서 전세에 이렇듯 착한 일을 지었기 때문에 금생에 이러한 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둘째, 송(宋)나라의 정치가 범중엄(范仲淹)의 일화다. 범증엄은 강소성 소주인(蘇州人)으로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절에 기거하면서 공부를 하였다. 한번은 농사일을 하는데 밭을 갈다가 큰 항아리에 가득한 금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다시 묻어버렸다. 나중에 출세하여 신분이 귀하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절의 스님께 알려 그 금은을 파내어 절을 짓는데 사용하였다.
소주에 남원(南園)이 있는데, 풍수가의 말을 따르면 만약 그곳에 집을 지으면 자손이 반드시 발복할 것이라고 하였다. 범중엄이 마침 승상의 직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에게 그 땅을 사라고 권했다. 그러나 그는 “한 집안에서 인재가 나오는 것은 한 현에서 인재가 나오는 것보다는 못하다”면서 그곳을 사서 집을 짓기보다는 소주서원을 열었다. 그리하여 그곳에서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 그 후 아들인 범순인도 재상이 되었으며, 그의 자손들이 근 천년을 내려오면서 결코 집안이 쇠락하지 않았다.
셋째, 선조의 정명공주(貞明公主, 1603년~1685) 이야기다. 공주의 어머니가 인목대비(仁穆大妃)다. 이 정명공주가 병자호란으로 강화도로 피신을 가면서 엄청난 양의 금은보화를 배에 싣고 갔다. 그러나 청나라가 쳐들어와 수많은 백성들이 강화도로 건너는 배를 타려고 아우성을 치자 정명공주는 배에 싣고 가던 금은보화를 모두 버리고 대신 사람들을 싣고 갔다.
이를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정명공주의 후손은 번창할 것이다”라고 했는데 실제 정명공주의 후손은 번창했다. 정명공주의 이런 행위가 바로 선업(善業)이다. 선업은 생명을 살리는 행위다.
넷째, 충청도 머슴과 주인의 일이다.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머슴살이를 온 사람이 있었다. 하루는 밥상을 받자 먹지 않고 한쪽 벽 쪽으로 밀어놓았다. 이를 본 주인이 “왜 밥을 먹지 않느냐?”고 물었다. 머슴은 “오늘이 아버지 제사인데 머슴 사는 주제에 제사를 지낼 수 없으니 이렇게 해서라도 제사를 지내야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야기를 들은 주인은 머슴 아버지를 위해 제사를 잘 지내주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야기인가? 주인의 이런 따뜻한 마음 씀씀이에 하늘이 무심하지 않았다.
복은 짓고 볼 일이다. 설사 당대에 복을 받지 못하더라도 내생에나 내 자손들이 대대로 복을 받는 것이다. 하늘은 짓지 아니한 복을 내리지 않는다. 사람은 짓지 아니한 죄는 받지 않는다. 원(願)은 크게 세우고 공(功)은 작은 데부터 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