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2일] 이란 왕정 종식된 날

2005년 도로시 스탱 수녀 피살

“만약 내가 총탄을 맞는다면, 누구 짓인지 모두가 알 것이다.”

2005년 2월12일 브라질 파라주에서 한 살인 청부업자의 총탄에 맞아 숨진? ‘아마존 지킴이’ 도로시 스탱 수녀(당시 73세)가 죽기 3년 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아마존의 환경과 브라질의 가난한 농민의 인권 보호에 앞장서 ‘아마존의 성녀’로도 불렸던 한 환경인권운동가가 인류의 저급하고 이기적인 탐욕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죽기 3년 전인 2002년 그녀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을 떠올린다면 누가 살인청부를 했는지는 너무도 분명했다. 도로시 스탱 수녀는 미국 출신으로 1966년 브라질 마란하오주에 도착, 70년대 초 브라질 정부가 아마존강 유역 이주자들에게 땅을 제공하자 정착민들을 따라 아마존으로 들어갔다. 82년 브라질 주교단이 창설한 인권단체 ‘패스토럴 랜드 커미션’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불법 벌목업자들의 눈엣가시가 된다.

그녀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말 브라질 가톨릭 토지위원회가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환경운동가 260명이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대농장주나 벌목 기업,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목초지를 형성해 소를 키워 그 고기를 전 세계로 팔아넘길 생각에 들뜬 축산자본들에게 아마존 삼림은 탐욕의 대상일 뿐이다. 브라질이 전략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바이오에탄올도 역시 지구의 허파 아마존을 위협하고 있다. 기후변화 협약을 개최하는 것도 좋지만, 브라질 정부는 “아마존 파괴가 기후변화와 생명다양성 파괴를 야기,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는 지구촌 지속가능계의 충고에 먼저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04년 한국의 비전향장기수 강동근 별세

2004년 2월12일 한국의 비전향 장기수 강동근(1916년 경남 하동 출생)이 별세했다.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민족독립에 앞장 선 독립투사였지만, 남한 정부가 요구하는 전향(북한을 인정하지 말라)을 받아들이는 대신 평생 감옥살이를 택한 사람이다.

경상남도 하동군의 빈농가에서 태어나 1930년대 초반 진주에서 야학을 다니던 중 반일 운동에 뛰어들었다. 탄압을 피해 1934년에 중국으로 피신한 뒤 항일 운동을 계속했다. 태평양 전쟁 종전 후 1945년부터 1949년까지는 중국 공산당 소속으로 군 생활을 하였다. 1949년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넘어와 조선인민군 6사단 소속의 군인이 되었다. 조선인민군 상위로 1950년 한국 전쟁에 참전, 후방부대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후퇴하던 중 퇴로가 막히면서 지리산에 들어가 조선인민유격대에 합류했다.

1952년에 지리산에서 대한민국 국군 토벌대와 전투 중 체포됐다. 이때 오른쪽 팔을 잃어 외팔이가 됐다. 강동근이 제네바 협약에 따른 전쟁포로로 취급됐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으나, 포로 대우는 받지 못했다.

1957년 남한 정부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제2공화국에서 20년형으로 감형을 받았다. 형기를 마치고 한 차례 출소했으나 사회안전법에 따라 1975년에 재수감, 1989년에 다시 출소했다. 총 수감 기간은 초기의 미결수 생활까지 포함하여 약 37년이다.

출소 뒤 부산 북구의 한 양로원에서 생활했다. 가족들은 그 때문에 입장이 곤란해지자 사망신고를 냈다. 호적에서 삭제된 상태였고, 아들도 사망해 무적자로 혼자 살게 됐다.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북한으로 송환, 북에서 조국통일상을 받았다. 북으로 송환된 비전향 장기수 가운데 다섯 번째로 사망했다. 북한의 ‘애국렬사’ 칭호를 받고 ‘애국렬사릉’에 묻혔다.

그는 “기구하다”고?말하기에는 참으로 언어의 한계를 느끼는, 분단된 한국의?아픈 삶을 살다 간 독립운동가였다.

1979년 이란 왕정 종식된 날

1979년 2월12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란의 이슬람 혁명군은 국왕과 총리를 모두 몰아내고 이란을 장악했다.

이라크는 이란의 압력에 따라 자국에 있던 호메이니를 추방, 호메이니는 프랑스 파리로 망명해간다. 그의 프랑스 망명은 이란 반(反)정부운동이 국제적 주목을 받게 하는 계기가 됐다.

1978년 12월 팔레비 국왕은 온건파인 국민전선 지도자 바크티아르(Bakhtiar)에게 총리직을 맡기고 이듬해인 1979년 1월 이란을 떠났다. 그러나 1979년 출범한 바크티아르 정부에 대해 호메이니는 타도에 나선다. 2월1일 호메이니가 귀국하자 군부마저 호메이니 지지로 돌아섰다. 바크티아르도 망명해버리고 2월12일 왕정은 완전히 종식됐다. 이른바 이란 이슬람 혁명의 순간이다.

1979년 2월 5일 호메이니는 메흐디 바르자간(Mehdi Bazargan)을 임시 정부 수반으로 지명한다. 하지만 이슬람 최고 혁명 위원회가 사실상의 정부였고, 정규군과 별도로 이슬람 혁명 수비대가 만들어져 무력으로 뒷받침했다. 12월에는 이슬람 공화국을 표방한 새로운 헌법이 채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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