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의 SNS소통 제한 필요한가?
중립성·공정성?위해?필요?vs?판사들?양식?믿어야
“SNS는 즉각성, 감정과 정보의 혼재성 등의 특징을 갖고 있어 자칫하면 중립성이나 공정성을 잃을 위험을 초래한다. 법관의 SNS 사용은 일반인보다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돼야 한다”(이상원 서울대 로스쿨 교수)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방법만은 사후 규제뿐이라는 것이 헌법의 명령이다. 결국 법관의 SNS는 법관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에 맡길 수밖에 없다”(경향신문 이범준 기자)
법원 내 연구 모임인 사법정보연구회(회장 노태악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가 10일 서울 서초동 법원 대강당에서 주최한 공개토론회에서 법관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가이드라인 제정 여부를 두고 찬반양론이 오갔다.
‘법관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시론적 연구’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노동일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가이드라인을 제정한 플로리다, 사우스 칼롤리나, 뉴욕 등 미국의 9개 주의 사례를 소개하며 “미국의 여러 주에서 제정했다고 해서 곧 우리도 반드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만 보편화된 서비스로서 SNS를 이용하는 법관들이 많아질수록 뜻하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바 이를 예방하는 차원에서 가이드라인 제정을 심각하게 고려할 시점이 됐다”고 밝혔다.
지정토론자로 나선 이상원 서울대 로스쿨 교수와 이헌 변호사는 노동일 교수의 의견에 동감하며 가이드라인 제정에 찬성의 뜻을 나타냈다.
이상원 교수는 “판사는 갈등의 최종적 판단자이고 그 말에 의해 사회적 갈등이 종식돼야 하는 권위를 가져야 하는 사람이므로, 가급적 개인적 신념에 대해 말하지 않아야 한다”면서 “맡은 사법기능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을 경우이면 모르나, 객관적인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는 SNS의 특성상 그러한 경우는 흔치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는 “표현 방식에서도 SNS에서는 강하고 짧은 글이 더 영향력이 큰데, 이러한 것은 법관과 거리가 멀다”며 “속어를 사용하는 것도 법관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저급하게 만드는 경우에 이른다면 적절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헌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도 “법관의 SNS 사용에 관한 가이드라인 제정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시기가 됐다”면서 “구체적 사건이나 사안에 대한 법관의 의견 표명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하게 되는 일이고, ‘뼛속까지 친미, 가카 빅엿, 가카새끼짬뽕’ 등으로 저속하게 표현하는 것은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법관윤리강령 중 ‘법관은 품위 유지와 직무 수행에 지장이 없는 경우에 한하여, 직무외 활동을 할 수 있다. 법관은 타인의 법적 분쟁에 관여하지 않으며, 다른 법관의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규정도 법관의 SNS 사용기준의 구체적인 내용으로 충분히 반영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이범준 경향신문 기자와 최은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법관의 표현의 자유를 존중해 가이드라인 제정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범준 기자는 “헌법은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보장하고 있기 때문에 편향성을 우려하며 중립성을 강제하겠다는 SNS 규제는 위헌 가능성이 높다”며 “SNS가 파생시키는 문제가 있다면 법관의 자율적 판단에 맡기고, 사후에 평가·규제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법관은 판결로만 말해야 한다’는 일부 학자와 언론의 주장은 ‘실제 공정한 것 못지않게 공정하게 보일 필요가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는, 마음은 온갖 편향으로 가득찬 법관이 공정한 척하며 수백 건씩 재판하고 사법행정을 주도하는 게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냐”며 “판사의 입을 다물게 한다고 해서 사법의 부조리가 해소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번 토론회의 이해당사자이기도 한 최은배 부장판사는 방청객으로 나와 “법규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는 심각한 헌법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면서 “법관윤리강령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류제성 사무차장은 “법관의 SNS상 표현에 대한 헌법적 쟁점을 통해 볼 때, 법관의 SNS 이용에 대한 가이드라인은 법관의 표현의 자유와 독립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제정되어야 할 것”이라며 “대법원이 일방적으로 제정해 하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모든 판사들이 공개적·자발적으로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해 합의점을 찾아가는 민주적 방식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법정보연구회는 이날 토론회를 포함, 그 동안의 세미나 결과물 등을 토대로 2월 말 최종 연구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다.
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는 지난해 11월 현직 판사들이 SNS를 통해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통령에 대한 비하발언 등을 해 논란이 됨에 따라 ‘SNS 공간에서 의견표명은 신중해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내놓고 논의 과정을 거쳐 법관의 SNS 사용 기준안도 마련키로 한 바 있다.
“SNS로 국민과 소통 적극 권장”
한편 이날 사회를 맡은 강민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법원의 신뢰회복을 위해 법관들의 SNS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고 밝혔다.
강 판사는 “2700여 법관들에게 SNS 활용을 권장해 국민과 제대로 소통하도록 하는 것이 오늘 토론회의 또 다른 목적”이라며 “법관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SNS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영화 ‘부러진 화살’을 보고 감동한 200만 국민에게 정확한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법관들이 SNS를 적극 활용해야 하는데 다수가 침묵하고 있다”며 “법관 1명이 100명의 관계망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이번 사건의 진상을 알릴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요즘 판사들이 너무 힘들다. 수많은 판사 중에 한 두 명이 잘못해도 사법부 전체가 도매금으로 욕을 먹는 경우가 많다”고 하소연 한 뒤 “영미의 법관들도 200년에 걸쳐 쌓은 신뢰를 짧은 시간에 쌓으려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어금니 꽉 깨물고 무너지면 다시 쌓고 무너지면 다시 쌓는다는 마음으로 신뢰를 회복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법관들의 SNS 사용 현황과 관련해 사법정보화연구회가 최근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페이스북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그 다음으로 트위터를 애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동기를 묻는 질문에는 사교용이란 답변이 가장 많았으며 절반 이상이 판사임을 밝히지 않는다고 답했다. 친구 혹은 팔로워 수는 평균 150명 인 것으로 조사됐으며 50% 이상이 변호사로 활동하는 동기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밝혔다.
SNS를 이용하며 가장 혼란스러웠던 경험으로 잘 모르는 변호사의 페이스북 친구 요청, 이미 친구 관계인 변호사의 사건 수임, 상사의 페이스북 친구 요청, 정치 사회에 관한 기사나 그에 대한 의견 개진 여부 등을 손꼽았다.
15개 항목에 걸쳐 진행된 이번 설문조사에는 67명의 법관들이 답변을 보내왔다고 연구회측은 밝혔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KOR}: 법관의 ‘SNS’, 어디까지 가능할까? http://t.co/Cda1z14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