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역·취업 앞둔 이 땅의 아들딸들에게
[아시아엔=이은택 연세대, 한양대 겸임교수] 아들 잘 도착했니? 오늘은 날씨가 어제보다 춥다던데…. 걸어가는 길이 춥지는 않았는지? 한 10분 걷는다고 했나? 빌딩숲 사이로 내치는 새벽 칼바람이 만만치 않을텐데 말이다. 목도리 잘 여미거라. 오늘은 좀 늦어서 지하철에 사람들이 좀 많았겠네.
이제 딱 한 주가 지났네. 그래 한 주 다녀보니 어떠니? 학교나 집에서 경험치 못했던 세상이지? 그래도 군대병영 시절이 조금 생각날 수도 있겠구나. 조직생활이고 위 아래가 있고 전혀 다른 성장배경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는 것이 조금 비슷한 면이 없지 않을 거다. 한번에 다 알려들지 말거라. 그리 되지도 않겠지만, 네가 몸으로 부딪치면서 조금씩 배워 나가면 된다.
여기까지 오느라 얼마나 맘 고생이 많았니? 어정쩡한 전공에 학점도 그리 잘 받지 못했으니 왕고시절에 시작한 중국어 앞세워 여기저기 뛰어다닐 때 아비 입장에서 안타깝기도 하거니와 아쉽기도 했다. 공부할 때 제대로 좀 하지 하는 아쉬움도 있었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네가 여기까지 오는데 도움된 게 별로 없었다는 아쉬움이 더 컸단다. 세상은 왜 그리 내 잘난 아들을 몰라주는지….
결국 그런 세상에 너는 네 존재를 알리며 자리매김에 성공했다. 네가 사령장 받아 온 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날 저녁 친구들 모임에서 은근히 자랑하다 속내를 들켜 왕창 뒤집어 썼다.
친구들이 참 부러워 하더라. 너를 어릴 적부터 알아온 한 친구는 인사성이 참 밝더니 잘 풀렸다고 하더라. 어릴 적 아파트 같은 동 어르신들 너 모르는 분이 없었다. 너는 축구를 참 좋아했지? 내가 조금 일찍 퇴근하면 저녁식사 후 나를 꼭 달빛 아래 골대로 불러내곤 했지.
비록 내가 반대해 선수로 뛰진 못했지만 지금도 동네 축구에 열심인 너는 참 변함 없이 보기 좋구나. 중고교 시절엔 친구들 너무 좋아해 같이 운동하고 어울려 다니며 가끔 사고도 치곤 했지만 부모님 사업실패로 어려워진 친구에게 밥 사주려고 가끔 네 엄마에게 거짓말할 때도 밉지는 않았다.
동년배 친구들보다 늦게 간 군대에서는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니? 아마도 이제까지 살아온 세상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을 거다. 사랑하는 가족과 애인과의 이별, 제한된 자유와 확실한 위계질서, 합의와 이해 없이 주어지는 지시, 전혀 성장배경이 다른 선후배들과의 소통과 협업, 개인적 공간이 허락되지 않는 공동생활, 반복되는 힘든 훈련 등 엄청난 어려움을 아들 너는 잘 헤쳐나와서 드디어 대한민국 육군병장 이 병장으로 전역했다.
나는 네가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너 스스로도 네가 자랑스러웠지? 그땐 세상에 두려운 게 없었을 걸? 넌 엄청난 인내심과 건강한 몸으로 뭉쳐진 자신감을 얻었을 거다.
졸업까지 한 학기 밖에 남지 않은 복학생! 제대 후 지난 1년 남짓 취업을 위해 얼마나 뛰었는지 짐작이 간다. 이력서는 백장도 더 쓰고 중국회사 사이트도 엄청 뒤졌지? “면접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메일만 수십통 받았지? 그것들이 너를 실망시키고 좌절케도 했지만, 너는 취업한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지원회사 인사팀에 이메일도 쓰고 직접 찾아 다니며 기가 꺾이지 않더라. 옆에서 보며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넌 짐작하기 어려울 거다. 내가 도와줄 것은 별로 없어 더욱 미안했단다. 하지만 잘 버티고 끈질지게 두드린 끝에 우수한 성적은 아니지만 어쨌든 본선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지. 그게 지난 12월 중순이지. 그날 네 엄마한테 소식 듣고 몇 번을 확인했는지…. 아직 내가 너를 못 믿는 것 같다.^^
얼마 전 테드에서 본 강연인데, 안젤라 리(Angela Lee Duckworth)라는 뉴욕의 수학교사가 ‘성공의 열쇠, 인내심?’(key to the success, grit)이라는 제목으로 10분 정도 얘기하더라.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다 공립학교 수학교사로 옮긴지 10년째인 재미교포 3세 여성이지.
그녀는 어떻게 열등생들 학업성취도를 높일 것인가 고민 중 공부 잘하는 친구, 실리콘 밸리에서 성공한 사람들, 월가에서 변호사로 성공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통점을 살펴보니 가문도, 학업도 IQ도 아니라 인내심이더라는 얘기야. 이 강연을 우리말로 쉽게 풀면 “한 우물 오래 끈질지게 판다”는 뜻이지. 결국 성공의 열쇠는 인내심이라는 거야.
“군생활 인내심, 네 평생 자산이란다”
내 사랑하는 아들아, 사회생활의 초입에 선 너는 불확실, 저성장, 고용불안, 삼포시대, 갑질, 불공정 등이란 심란한 단어에 미리부터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이제까지 너는 참 잘 해 왔거든. 만만치 않은 입시제도와 녹록치 않은 군생활 및 취업경쟁을 뚫고 이제 막 본선에 나섰다.
결선에 오른 너를 내가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잊지 말기 바란다. 네가 견뎌내고 노력한 결과에 대해 너는 마음껏 자랑해도 된다.
점심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인근에 사무실이 많은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맛있는 점심 먹는 것도 만만치 않지? 그래도 줄 잘 서서 영양가 있는 식사 값싸게 하면 좋겠구나. 혼자만 잘 먹으면 재미없으니 직장 선후배들과 꼭 같이 먹으며 즐거운 시간 만들거라. 사랑한다 아들.^^
그리고 이 말을 늘 명심해줬으면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네게 군생활을 통해 몸에 밴 인내심이 얼마나 많은 자신감을 주는지 시간이 흐를수록 더 깨닫게 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