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10일] 푸틴, 작심하고 미국 패권주의에 일갈

2008년 한국의 국보 1호 남대문이 불타다

2008년 2월10일 밤 서울 중구 남대문로 소재 국보 제1호인 숭례문(남대문)에 불기둥이 솟아올랐다. 불은 저녁 8시50분께 숭례문 2층 누각 천장에서 시작해 2층 지붕을 모두 태웠다. 이날 화재는 출동한 소방 당국이 초기 진압에 실패하면서 최악의 사태로 이어졌다.

화재 초반 소방 당국이 물을 계속 뿌리며 진압에 나서 불길이 잡히는 듯했다. 하지만 이날 밤 자정께 불길이 2층 지붕의 기왓장 사이를 뚫고 나오며 순식간에 2층 누각이 완전히 불길에 휩싸였다. 소방당국은 문화재청의 자문을 거쳐 불길이 처음 일어난 2층 누각 지붕의 기와 일부를 뜯어내려고 했으나 이미 많은 물이 뿌려진 기와 지붕이 붕괴될 위험이 높아 포기했다. 소방당국은 산소 질식제를 투입하며 진화에 나섰으나 이미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숭례문은 당시 한국의 서울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조선왕조 태조 7년(1398)에 완성됐다. 불에 탄 건물은 세종 29년(1447)에 고쳐 지은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불탄 247억원을 들여 4년간의 남대문 복원공사를 시작했다. 2012년 12월에 복원이 완료돼 새롭게 선을 보일 것으로 예정돼 있다.

2007년 푸틴, 미국의 전횡을 강하게 비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7년 2월10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들과 러시아, 이란 정상 등이 참석한 가운데 독일 뮌헨에서 열린 국제안보정책회의에서 탈냉전 이후 ‘미국의 일극적 세계질서’를 강력 비판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32분 동안 미국의 대외정책을 조목조목 비난했다. 서방언론들은 ‘신냉전 선언’을 방불케 하는 고강도의 대미 비판연설이었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은 “미국이 지배하는 단극체제는 권력과 힘, 의사결정의 중심이 하나이고, 지배자와 주권도 하나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내부로부터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미국의 군사행동을 두고 “일국적”, “불법적”이란 말을 쓰면서 “전세계 전쟁을 부추긴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느 나라도 국제법 뒤에서 피난처를 찾을 수 없으므로 어느 나라도 더는 안전을 확신할 수 없다”며 “이로 말미암아 군비경쟁이 촉진되고 핵무기를 가지려는 생각이 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나토 확장은 동맹 현대화나 유럽 안보와는 아무 관계가 없으며, 상호 신뢰를 잠식하는 심각한 요인”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러시아에 민주주의를 가르치려 하면서 스스로는 민주주의를 배우려 하지 않는 자들”이라고 공박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이 반대하지만 이란에 무기 판매를 계속할 것이며, 세르비아가 반대하는 코소보의 독립을 저지하겠다는 점도 강조했다.

푸틴에 이어 연사로 나선 메르켈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의 대화에서 러시아는 신뢰할 만하고 예측 가능한 상대라는 느낌을 받아왔다. 서로 솔직하게 대화할 필요가 있고, 문제를 카펫 밑으로 쓸어넣을 필요는 없다”며 푸틴 대통령의 대립적 정세관을 넌지시 비판했다.

다음날 연설에서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은 “냉전은 한번으로 족하다”며 정면 반박에 나섰다. 게이츠 장관은 “에너지 자원을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 쓰려는 시도 등, 러시아의 일부 정책들은 국제사회 안정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반박했다.

1977년 박정희 대통령 임시행정수도 건설구상 발표

1977년 2월10일 박정희(朴正熙, 1917~1979) 당시 대통령이 “통일이 될 때까지 임시행정수도를 이전·건설하는 문제를 구상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적의 지상포화 사정거리 안에 수도가 위치하고 있다는 점, 당시에도 전국토의 0.63% 면적에 남한 인구의 20%(725만명)가 집중된 인구과밀이 행정수도 이전의 이유였다.

후보지로 거명된 지역에서 투기 조짐이 일고 언론도 연일 관련기사를 쏟아내자 박 대통령은 3월7일 “10년 혹은 그 이상 걸릴 것” “서두르지 않겠다”며 분위기를 식혔다. 한편으로는 차분하게 수도이전을 준비해 ‘임시행정수도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마련, 국회에 제출(6월20일)했고 후보지도 내정했다.

최근 한 보도에 따르면 충남 연기군 장기면이 후보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경 10km 부지에 인구 50만명 규모 도시가 당시의 계획. 설계도면·조감도·5층짜리 종합청사 모형까지 완성된 상태였으나 박 대통령 서거로 유야무야됐다. 1981년 신군부가 임시행정수도 건설계획을 백지화했다.

행정수도는 그로부터 잊혀져왔다가 2000년초에 다시 부상한다. 국회는 2003년 12월29일 여야 합의로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이른바 신행정수도법)을 통과(찬성167, 반대13, 기권14표) 시켰다. 그 법안은 2004년 1월16일 공포되었고, 이 법에 따라 8월11일 정부(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는 연기군과 공주시의 일부를 신행정수도의 입지로 결정했다. 신행정수도법은 그러나 같은 해 10월21일에 헌법 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행정수도건설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계승했고, 전두환 정권이 행정수도를 묵살한 것처럼 현 이명박 정권은 행정수도 건설을 위헌제소까지 해가면서 막았다. 각각의 계승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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