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방식’ 지키며 전세계 떠도는 ‘디지털노마드?

<사진=Hubud>

꽉 막힌 사무실, 굿바이!…인터넷만 있으면 곳곳이 ‘일터’

[아시아엔=김아람 기자] IT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도 변하고 있다. 최근 급격히 증가한 디지털노마드만 봐도 그렇다. 디지털(digital)과 유목민이라는 뜻의 노마드(nomad)가 합쳐진 ‘디지털노마드’는 장소와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전세계 어디서나 원격으로 일하는 이들을 지칭한다. 한마디로 ‘최첨단 떠돌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은 인터넷만 연결되면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세상이다. 직장이란 공간에서 벗어나 고유의 ‘삶의 방식’을 지키며 일하는 디지털노마드가 급증한 이유다.

디지털노마드는 크게 기업의 피고용인, 프리랜서, 자영업자 등으로 나뉘며, 최근에는 스타트업 기업가, IT기업 프리랜서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디지털노마드가 기업의 피고용인일 수 있다는 사실이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기업 소속으로 업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프리랜서와 약간 다르다.

디지털노마드는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일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다 보니 업무환경에 만족도가 높다. 업무성과도 자연스럽게 높아진다. 이에 전직원 원격근무를 허용한 기업도 있다. 바로 ‘오토매틱’이다. 전세계 웹사이트 6분의1이 이용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콘텐츠관리시스템(CMS) ‘워드프레스‘의 개발사다.

전직원 원격근무를 도입한 또다른 기업 ‘베이스캠프’의 공동창업자 데이비드는 “모든 직원이 한 사무실에 같이 모여서 일하는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새로운 시도를 하지 못할 뿐”이라며 “원격근무는 전세계에 있는 인재들과 협력하고, 불필요한 사무비용도 절감할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방식”이라고 전했다. 이 밖에도 글로벌인재영입과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많은 기업들이 원격근무를 도입하고 있어, 디지털노마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도 디지털노마드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디지털노마드 다큐멘터리 ‘원웨이티켓’(One way ticket)을 제작 중인 도유진씨는 “사람들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고민해보는 계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디지털노마드는 특별한 삶이 아니라 여러 삶의 방식 중 하나 일뿐”이라고 말하는 그는 현재 개인블로그(dareyourself.net)를 운영하며 디지털노마드 관련 글을 꾸준히 쓰고 있다.

태국 치앙마이에서 전세계의 디지털노마드와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도유진씨(한 가운데)
태국 치앙마이에서 전세계의 디지털노마드와 오프라인 모임을 가진 도유진씨(한 가운데) <사진=도유진>

디지털노마드는 특별하다?
온라인에서 ‘제제미미’라는 별칭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미영-전제우 부부는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지난 7월 세계일주를 떠났다. 부부는 1년간 여행하며 이들이 제작한 여행자 네트워킹 서비스 어플리케이션 ‘에요트립’(Ayotrip) 관리 등 디지털노마드로서 일할 예정이다. 지난 7월 ‘20X20청년 강연회’에서 이들은 새로운 삶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지난 1년간 ‘에어비앤비’를 통해 외국인들에 숙소를 제공하면서 이들이 여행 도중에도 일하는 모습을 봤어요. 꼭 한 장소에서만 일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올해는 국내최초 디지털노마드 스타트업 ‘라이크크레이지’(LIKECRAZY, 대표 김상수)가 탄생하기도 했다. 청년 3명이 의기투합해 무작정 발리로 떠났다. 그 곳에서 스타트업 운영자들을 만나며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고 중간중간 여행도 즐겼다. 당시 개발한 여행동행 찾기 어플 ‘At – 여행, 친구, 즐거움’은 출시한지 4개월만에 1만3천건이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했다.

국내에선 디지털노마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이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수년 전부터 주목을 받아, 관련 웹사이트와 커뮤니티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리모티브'(Remotive)나 ‘리모트OK’ (RemoteOK)는 대표적인 원격근무기업 채용사이트로,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전세계 기업들의 채용공고를 한 데 모아놨다.

세계 곳곳의 디지털노마드가 한자리에 모이는 오프라인 행사도 있다. ‘미트업’(Meetup)은 전세계 도시의 물가, 구인 정보들을 공유해 디지털노마드가 일하기 좋은 도시를 선정해주는 웹사이트 ‘노마드리스트’(Nomad List)와 디지털노마드 실시간 채팅서비스 ‘해시태그 노마드’(Hashtag Nomads) 회원들이 전세계 곳곳에서 진행하는 네트워킹 모임이다. 이 모임은 지난 2월 한국에서도 열린 바 있다. 지난 8월에는 독일 베를린에서 세계 최초의 디지털노마드 컨퍼런스 ‘DNX 글로벌’이 개최되기도 했다.

또한 디지털노마드들은 전세계 곳곳에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30여명이 함께 아시아와 유럽을 여행하고 일하는 ‘해커 파라다이스’, 1백여명이 1년간 세계일주하며 일하는 ‘리모트 이어’ 등 디지털노마드가 함께 협업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사진=Hubud>

일터이자 인적교류의 장 ‘협업공간’
전세계 곳곳에서 등장하기 시작한 협업공간(co-working space)은 디지털노마드 사이에서 단연 인기다. 직업이 다른 이들이 같은 공간에서 사무용품과 비용을 나눠 쓰며 일하는 ‘신개념 일터’로, 일반 사무실에 비해 임대료도 저렴하다. 카페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각자 업무를 보거나, 협업공간에서 제공하는 각종 세미나 혹은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이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할 수도 있고, 사업파트너를 구할 수도 있다.

지난 2013년 문을 연 인도네시아 발리의 후붓(Hubud)은 아름다운 자연과 저렴한 생활비로 전세계 디지털노마드가 즐겨찾는 대표적인 협업공간이다. 후붓은 지난 6월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각서(MOU)를 체결하고 다양한 공동 행사를 진행하며 국내에도 소개된 적이 있다.

국내엔 아직까지 디지털노마드가 많지 않지만, 이들을 위한 ‘하이브아레나’ ‘스페이스노아’ ‘패스트파이브’ 등의 협업공간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패스트파이브에서 디지털노마드로 일하고 있는 이우주 세컨드스페이스 대표는 “떠나고 싶을 때 언제든 떠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다”며 협업공간의 장점에 대해 “다양한 분야의 기업과 함께 일하다 보면 독특한 기업문화를 가진 스타트업이 많아 벤치마킹에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디지털노마드의 삶에 대해 도유진씨는 이렇게 말한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훨씬 질 높은 삶을 누리고 있다. 비싼 월세에 시달리며 아침마다 지옥철에서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된다. 밖으로 나와보니 서울처럼 치여 살지 않아도 사는데 전혀 지장이 없더라.” 한 장소에서 오래 머물지 않다 보니 고정비용을 줄이고 다양한 경험에 더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오해는 금물. 디지털노마드는 한가롭게 발리 해변에 누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매달 시시때때로 거처를 옮기는 여행자도 아니다. 내가 일하고 싶은 장소에서 일할 자유를 누리는 것뿐이지, 업무량은 비슷하다. 단순히 놀면서 일한다는 뜻이 아니다.

디지털노마드가 되고 싶다? 이것만은 꼭!
전세계를 ‘일터’로 누비기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것도 많다. 비자, 숙소, 지역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오랜 시간 외국에서 생활하다 보면 찾아올 ‘외로움’에 대한 마음의 준비도 단단히 해두어야 한다. 영어실력은 두말할 것도 없다.

그럼에도, 전세계의 기업문화가 서서히 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지난 5월부터 에스토니아는 ‘e-레지던시’(e-Residency)을 시범 시행 중이다.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 신분증을 신청할 수 있으며, 취득자는 세금 납부, 법인 설립, 은행 업무 등 현지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행정업무들을 볼 수 있다. 한마디로 ‘디지털 시민권’인 셈이다.

국가간 물리적 경계가 모호해지고 인터넷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세상은 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기업문화가 자유로운 해외 국가들에 비해 한국에선 아직 낯선 개념인 ‘디지털노마드’. 집단을 중시하는 기업문화와 사회분위기 탓에 주변의 동의를 쉽사리 얻기도 힘들다. 장애물이 곳곳에 산재해 있지만 ‘변화의 흐름’를 막을 순 없다. 전세계적인 추세에 따라 한국에서도 ‘보통의 방식’을 떠나 자신만의 삶을 찾아 떠나는 이들이 늘어날 전망이다.

<사진=Hubu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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