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스리랑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날
2008년 폴라리스로 떠난 비틀즈 노래
2008년 2월4일 비틀스의 노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가 스페인 마드리드에 있는 대형 안테나를 통해 미국 동부 시각 오후 7시(한국시간 5일 오전 9시)에 맞춰 431광년 떨어진 북극성을 향해 쏘아졌다. 이 노래는 초당 30만㎞의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우주 공간을 여행하게 된다. 같은 시각 전 세계 팬들은 비틀스의 노래를 틀어 행사에 동참했다. 당시로부터 약 431년 뒤에 노래가 폴라리스((Polaris, 작은곰자리 알파)에 도착할 예정이며, 2012년 2월4일 현재 약 427년이 남았다.
폴라리스는 작은곰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다. 겉보기 등급은 1.97로 49 번째로 밝은 별이다. 현재 천구의 북극에 가장 가까운 북극성이기도 하다.
미항공우주국(NASA)은 창립 50주년, 비틀스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 녹음 40주년을 기념해 비틀스 팬의 제안을 받아 이 이벤트를 기획했다. 사흘전 비틀즈 멤버들의 고향인 영국 리버풀에는 비틀스를 테마로 한 4성급 ‘하드 데이즈 나이트 호텔’이 문을 열기도 했다. ‘하드 데이즈 나이트’는 비틀스가 직접 출연했던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2006년 필리핀 경기장서 긴급대피 도중 압사자 88명 발생
2006년 2월4일 필리핀 마닐라의 필스포츠 스타디움(PhilSports Stadium)에서는 사망자 88명을 포함해 500명 가까운 사상자를 냈다. ABS-CBN TV 네트워크는 당시 인기 프로그램 ‘워워위'(Wowowee) 게임쇼 프로그램’ 1주년 기념행사를 이 경기장에서 개최했다. 푸짐한 경품이 걸려있던 이벤트로 경기장 안팎 도합 3만 여명이 발 디딜 틈도 없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당시현지에 있었던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2만명 수용시설에 10만 명이 운집, 사고 위험은 아주 높았다고 한다.
누군가 “테러다”라고 외치지 군중들은 경기장을 빠져나가려고 출구 쪽으로 일제히 몰려들었고, 질서유지 진행요원들의 통제는 이미 불가능해진 상황이었다. 행사는 결국 취소됐다.
한편 한국의 다수 언론들은 당시 사고에 대해 “이번 참극은 지극한 상술에서 행사를 주관한 방송사, ‘경품 노다지’를 노린 참석자들, 무책임한 행정당국 등이 빚어낸 대표적인 ‘후진국형 인재(人災)’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지적”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일부 누리꾼들은 당시 한국의 기자는 필리핀이 아닌 베트남에서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기사를 작성했으며, 필리핀 사람들을 비하하는 편견가득한 시각으로 보도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03년 유고슬라비아 연방, 건국 70년만에 완전 해체
2003년 2월4일 유고슬라비아 연방의회는 유고슬라비아 연방을 해체했다. 유고슬라비아 연방 건국 70여년만의 일이다. 연방을 이뤄온 몬테네그로와 세르비아는 ‘국가연합’이라는 보다 관계가 허술한 연합체제를 유지해왔지만, 3년 뒤 양대 국가의 완전한 독립에 대한 찬반을 묻는 국민투표를 실시키로 해 사실상 독립국가로 가는 수순을 밟게 됐다.
유고슬라비아는 1929년 왕국으로 시작해 제2차 세계대선 후 6개 공화국이 뭉쳐 연방국가로 재출발했다. 1943년11월 29일 소련군의 지원 아래 영토를 수복,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웠다. 이 국가는 1963년에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으로 국호를 바꿨다.
연방국가를 탄생시킨 요시프 브로즈 티토의 통치 기간 동안 비교적 평온한 분위기를 유지했다. 티토는 국내 정세의 안정 뿐 아니라 가말 압델 나세르(이집트)와 자와할랄 네루(인도)와 함께 제3세계를 주장, 미소 양국 사이의 권력 균형을 잡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티토가 죽은 1980년 이후 유고슬라비아의 정세는 점차 불안해졌고, 사회주의도 무너졌다. 민족내전이 발생, 발칸의 주요 분쟁국이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영토 내에서 끊임없이 자치권과 분리 독립을 주장해 왔던 코소보 주민 대량 학살이 대표적이다. 소속 공화국들은 자민족 중심주의를 내세워 독립을 꾀하게 되었다. 1992년에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마케도니아 공화국 4개국이 유고슬라비아 연방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슬로베니아는 연방군과 치른 10일간의 전쟁에서 곧바로 승리, 가장 먼저 독립했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독립 과정에서 세르비아인과 보스니아인, 크로아티아인의 싸움터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정국이 혼란한 상태에서 숱한 전투와 민족간의 대량 학살 등을 거쳤다. 평화적으로 독립한 나라는 마케도니아 공화국 정도였다.
미국을 비롯한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의 회원국들도 평화 유지군을 보내 전쟁의 규모가 계속 확대되었다. 소수 민족의 학살에 관여했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헤이그에서 전범 재판을 받은 뒤 수감되었으며, 2006년 3월 11일에 옥사했다.
1948년 실론(스리랑카), 영국으로부터 독립
18세기 말부터 영국의 식민지였던 실론섬은 1948년 영국연방 내 자치령으로 독립했다. 1972년 나라 이름을 스리랑카공화국으로 바꾸고 영 연방에서 완전 독립했다. 1978년 스리랑카 민주사회주의공화국으로 다시 국호를 바꿨다.
1946년 중국에서 광복군 600여명 환국
1946년 2월4일 중국에 주둔해있던 한국의 독립군들이 인천과 한국에 귀국했다.?2월5일치 동아일보는 당시 이 광경을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조국광복의 역사적 수레바퀴가 매진하고 있는 오늘 건국의 초석이 되어 조국만년의 흥륭에 이바지 하려는 우리들의 광복군은 전번에 지대원의 일부 입국을 보았는데 오늘까지 귀국의 날을 기다리던 중국 각지의 광복군은 드디어 4일 약 3백명이 서울에, 또 약 3백명은 인천에 도착하였다. 보무당당한 입국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하여 못하였으나 그들의 입국이 앞날 우리 건국도상에 얼마마한 도움이 될 것인가는 퍽 기대되는 바이다.”
1945년 얄타회담 시작
1945년 2월4일 소련 흑해 연안에 있는 얄타(현재는 우크라이나의 영토)에 미국·영국·소련의 수뇌자들이 모여 ‘얄타 회담(Yalta Conference)’을 시작했다. 2월 11일까지 1주일 동안 열린 이 회담에서는 나치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그 관리가 의제였다.
이 회담에서 회담자들은 패전 뒤 나치 독일을 소련·미국·프랑스·영국 이렇게 4국이 분할 점령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연합국은 독일인에 대해 최저 생계를 마련해 주는 것 이외에는 일체의 의무를 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또 나치 독일의 군수산업을 폐쇄하거나 몰수한다고 선언했다. 전쟁의 주요 전범들은 독일 뉘른베르크에서 열릴 국제재판에 회부하기로 합의했고, 전후 배상금에 대한 문제는 위원회를 구성해 위임키로 했다.
이 회담에서는 이와 함께 폴란드에 대해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서 규정한 폴란드 동부 영토 대부분을 소련 영토에 병합하기로 합의했다. 폴란드에게는 동독의 일부 지역을 대신 주기로 했다. 이로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과 벨로루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은 각각 폴란드 동부 영토 일부를 얻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