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유럽여행②] 런던에서 푸른초원을 만나다니···캠든마켓·대영박물관·리젠트 파크·프림로즈힐

[가을 유럽여행②] 런던 캠든마켓·대영박물관 볼거리 수두록···리젠트 파크 프림로즈힐에 넋 잃어

3DAY?리젠트파크 프림로즈힐–> 캠든마켓– > 대영박물관

[아시아엔=글·사진 김아람 기자] 신난다! 오늘은 내가 무척이나 가고 싶어했던 리젠트파크의 프림로즈힐을 가는 날이다. 내가 프림로즈힐을 처음 알게 된 건 ‘영국남자’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서다. 런던에 사는 한 청년이 한국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재미난 동영상들을 올리는 채널인데, 우연히 그가 ‘런던에서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하는 영상을 봤다. 그 중에서도 런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공원이 인상 깊었는데, 그 곳이 바로 지금 가는 프림로즈힐이다. 버스를 타고 제법 많은 정류장들을 지났다. 내려서 근처에 있는 가게에서 참치랑 계란을 섞어놓은 것으로 대충 아침을 때웠다. 날씨가 꽤나 흐리고 우중충한게 ‘내가 런던에 있구나!’ 실감났다.

‘Citymapper’라는 지도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길을 찾아갔다. 유럽 여행 내내 유용하게 이용한 어플이니 여행을 앞둔 이들이라면 참고하면 좋겠다. 출발지와 도착지만 입력하면 도보 및 대중교통을 이용해 어떻게 가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조용한 주택가를 한참 걸었다. 사람은 거의 없었다. 찬찬히 동네를 구경하며 걷다 보니 마치 정말 이곳 동네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 집에는 어떤 사람이 살까,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상상하며 걷다보니 그새 흐렸던 구름이 걷히고 햇살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드디어 리젠트파크에 도착했다. 런던의 공원들은 규모가 큰 만큼 가는 길도 다양하다. 내가 갔던 길 주변은 주택가였던 걸 보면 프림로즈힐로 들어가는 큰 길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공원 입구도 겉에서 얼핏 보면 잘 모를 정도로 무척 작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자주 가는 큰 길보다는 이렇게 여행지를 소소하게 즐길 수 있는 골목길이 나는 더 좋다. 공원에 들어서자마자 둥그런 언덕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엄청 큰 언덕은 아니었지만, 은근히 제법 올라가야 하는 그런 언덕. <꼬꼬마 텔레토비>에 나올법한 언덕의 모습이었다.

언덕길을 오르면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지는 등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기쁨은 인내의 시간이 길수록 배가 되는 법이니까. 하지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어서 계속 뒤를 힐끔힐끔 거리며 올라갔다. 마침내 프림로즈힐에 올라 등을 완전히 돌렸다. 시원한 런던 전경이 펼쳐지는데 꽉 막혔던 숨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큰 숨을 들이쉬었다. 저 멀리 더샤드와 런던아이도 보였다.

날씨는 얼마나 화창한지, 이 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언덕 잔디밭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고 사람들을 관찰했다. 조깅 하는 사람, 개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그냥 누워서 수다 떠는 청년들,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저마다 하는 일은 다 달랐지만 하나같이 다 여유로워 보였다. 서울의 공원과는 사뭇 다른 느낌에 조금 씁쓸하면서도, 간만의 자유를 만끽하기로 하고 털썩 누워버렸다. 누워서 하늘 위를 둥둥 떠가는 구름을 봤다. 고개를 돌리니 잔디에서 좋은 풀 냄새가 났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으니 온전히 지금 이 순간을 느껴서 담아가기로 했다. 나는 그대로 눈을 감고 한참을 가만히 누워있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근처에 있는 캠든마켓까지 걸어갔다. 마치 우리나라에 서울 남대문 시장, 부산에는 자갈치 시장 등이 있듯이 런던에도 다양한 개성을 뽐내는 유명한 마켓들이 많다. 캠든마켓 역시 런던의 대표적인 마켓 중의 하나다. 홍대 거리 느낌이 나기도 하는 이곳은 고딕 액세서리 등 개성 있는 물건들을 많이 팔고, 문신 가게도 많다. 특이한 간판이 돋보이는 상점들이 큰 거리 양옆으로 늘어서있다. 마켓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리젠트운하가 있었다. 리젠트파크를 가로질러 길게 흐르는 물이다. 사람들이 이 곳 근처에 앉아서 경치 구경을 하며 음식을 먹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마침 출출했던 나도 근처에서 먹을 거리를 사다가 자리를 잡았다. 음식이 너무 짜서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버리긴 했지만, 길바닥에 앉아 물구경을 하며 먹는 점심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우연히 흥미진진한 광경을 우연히 목격했다. 리젠트운하 중간에는 물의 수위를 조절하기 위한 수문이 있는데, 배가 지나갈 때는 수위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물을 빼내야 한다. 사진에서 볼 수 있듯이, 배가 있는 쪽에서 물이 빠져나가 수위가 급격히 낮아지면서 반대편과 얼추 수위가 맞는다. 그러면 사람이 직접 재빨리 수문을 열어 배를 내보낸다. 수문 근처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돌리던 직원이 기억난다.

캠든마켓에는 구석구석 곳곳에 참 다양한 물건들이 많았다. 마켓 내에서도 스테이블스 마켓, 홀스터널 마켓, 야외 영화관 등 구역이 나뉘어져 있어 각각의 특색을 비교하며 구경해볼 수도 있다. 한쪽 벽면에 칠해져 있는 화려한 그래피티를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바닥에 그림을 그리는 이들도 있다. 캠든마켓은 런던 청년들의 자유로운 영혼이 헤매고 있는, 그야말로 ‘펑키’한 느낌이 강하게 드는 마켓이었다. 그런 면에서 길 가다가 누가 갑자기 해코지하는 건 아닌가, 살짝 무서운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다. 커다란 프라이팬에 밥을 볶던 식당 직원은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는 질문에 흔쾌히 괜찮다며 내게 주전부리를 손에 쥐어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지금도 여전히 같은 가게에서 볶음밥을 만들고 있을지 궁금하다.

캠든마켓 구경을 뒤로하고 대영박물관을 방문했다. 한 두어시간쯤 둘러본뒤 나는 깨달았다. 내가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사람들마다 여행에서 선호하는 것들이 다르다. 자연풍경을 즐기는 사람, 음식을 즐기는 사람, 쇼핑을 즐기는 사람, 역사 관광을 즐기는 사람 등등… 그동안 나는 스스로 박물관을 좋아하는 편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재미있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 그래서 사실 미이라 빼고는 아직까지 기억에 남는 게 없다.

하지만, 역사에 관심이 많고 박물관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척 좋아할만한 곳이다. 입 아프게 말해서 무엇 하랴. 바로 그 ‘대영박물관’인데. 이 날은 피곤해서 일찍 숙소에 들어가서 잠을 청했다. 내일 아침 일찍 근위병교대식을 보러 가려면 푹 자둬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