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철 유럽여행ⓛ] 영국 런던 ‘핵심코스’···빅벤·웨스트민스터·템즈강·피카델리
[아시아엔=사진·글 김아람 기자] ‘쿵, 쿵, 쿵’ 떨리는 심장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 순간, 비행기가 이륙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가 발 딛고 있었던 땅이 무서운 속도로 멀어져 갔다. 창 밖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점점 개미만 해지더니, 구름에 가려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난생 처음 혼자 비행기를 탔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떠나는 일이었다. 24년 남짓 살아오면서 수많은 ‘처음’들을 겪어왔다. 반복되는 생활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 갑자기 다가온 ‘난생 처음 하는 일’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했다. 걱정과 두려움, 설렘이 뒤범벅된 정체를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이미 떠난 마당에 다시 돌이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나의 숙원이었던 유럽여행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토록 바라던 꿈이 이루어지면 마냥 기쁠 줄 알았는데, 이상하기도하지. 2014년 9월12일 인천발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먹고 자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반나절이 지나있었다. 좌석 앞 작은 스크린으로 비행기가 어디까지 왔나 확인해봤다. 중국 언저리를 날고 있던 비행기가 어느덧 유럽 주변으로 들어섰다. 거의 다 왔다! 순간 피곤함이 살짝 몰려오면서, 꿈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손가락 끝이 조금 간질간질했다.
오후 3시, 정신없이 입국 심사를 받고 나오자마자 유심(USIM)부터 샀다. 오는 내내 도착하면 뭐부터 할지 머릿속으로 동선을 상상했다. 여행지 도착 후 해야 할 1단계 ‘유심 구입’에 성공했으니 이제, 2단계 ‘숙소에 무사히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시작부터 험난했다. 돈 몇 푼 아껴보겠다고 허리까지 오는 커다란 트렁크를 낑낑대며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끌기를 반복하다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민박집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한참을 낑낑거리고 올라갔다. 짐을 내려놓고 나니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갑자기 허기가 졌다. 숙소는 한식당을 겸하고 있는 한인 민박이라 몇 파운드 더 얹어주면 머무는 동안 무료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었다. 아래층 식당에서 김치찌개를 먹었는데, 숟가락을 들자마자 손이 덜덜 떨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고단했던 하루가 이렇게 지나는가 싶었으나, 크나큰 착각이었다.
같은 방을 쓰는 사람들과 간단히 인사를 하고 짐을 정리하려고 트렁크를 꺼냈다. 급한 마음에 지퍼를 제대로 열지 않고 확 열어젖히는 바람에 그만 지퍼 하나가 고장나고 말았다. ‘제대로 여행하긴 글렀구나….’ 눈앞이 캄캄했다. 더군다나 오늘 처음 쓰는 새 트렁크인데! 순간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영국에도 같은 상표의 회사가 있어 AS문의도 해보고, 옆방 청년한테 고쳐달라고도 해보고 한바탕 난리 치다가 우선 자고 내일 다시 생각하기로 했다. 여행 첫날 밤, 나는 혼자 이 낯선 땅으로 온 것을 후회하며 잠이 들었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20여일간 한쪽 지퍼만 가지고 아슬아슬하게 잘 다녔다.
1DAY?내셔널갤러리/트라팔가광장 > 빅벤/국회의사당/ 웨스터민스턴사원 > 템즈강 야경
다음날 아침, 숙소를 나섰다. 거리는 한산했고, 바람이 좀 찼다. 이맘 때 한국날씨보다 더 쌀쌀하다. 처음에는 길을 몰라 우왕좌왕 헤매다가 나중에는 제법 익숙해져서 웬만한 거리는 걸어서 여기저기 잘 돌아다녔다. 골목마다 현재위치를 자세히 알려주는 표지판이 도움이 많이 됐다. 특히, 도보 15분 거리 반경도 표시되어 있어서 나같은 뚜벅이 여행자에게는 딱 안성맞춤이었다. 관광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런던의 표지판 덕에 여행 내내 잔잔한 감동을 느꼈다.
이날 내셔널갤러리, 빅벤, 국회의사당, 런던아이 야경 등을 구경했다. 여행 첫날이라 서두르며 다니고 싶지 않아서 도시를 익혀보는 느낌으로 천천히 걸었다. 숙소에서 내셔널갤러리까지는 걸어서 약 30분 거리.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바로 앞에 있는 트라팔가광장에서 사람들을 구경했다. 거기서 또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빅벤과 국회의사당이, 공원과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각종 공연장으로 유명한 피카딜리서커스 거리가 나왔다. 다시 또 걸어서 저녁에 숙소에 도착했다. 밤에는 같은 방을 쓰는 언니와 함께 템즈강 근처에서 맥주를 마셨다. 런던아이 야경을 감상하며 먹는 맥주맛은 그야말로 천국이 따로 없었다. 쓰다 보니 또 생각난다. 아, 다시 한번 그 기분을 느껴봤으면…. 숙소로 돌아오는 데 어디서 야릇한 냄새가 났다. 룸메이트 언니가 대마초 냄새라고 알려줬는데, 듣고 보니 정말 어딘가 퇴폐적인 느낌이 물씬 나는 냄새였다. 그렇게 첫째 날이 저물어갔다. 어느덧 간밤에 있었던 ‘지퍼사건’도 잊혀지고 오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2DAY?코벤트가든 > 뮤지컬 라이온킹 관람 > 소호 > 런던아이 야경
9월14일, 오늘의 첫 방문지는 코벤트가든이다. 이곳에는 각종 음식과 액세서리 등을 파는 상점이 줄지어 있다. 과거 수도원 부설 야채시장 자리였던 코벤트가든은 우리나라로 치면 좀 세련된 남대문 시장 느낌이다. 다만, 살짝 촌스러운 가방이나 옷 따위를 파는 남대문 시장과는 달리 플리마켓(손수 만든 공예품이나 창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처럼 아기자기한 물품이 많았다.
구경을 마친 뒤, 생각보다 날씨가 추워서 근처 옷 가게에서 재킷 하나를 서둘러 사서 걸치고 뮤지컬 라이온킹을 보러 갔다. 한국에서 큰 맘 먹고 거의 맨 앞자리로 미리 예약해둔 덕에 가는 발걸음이 설렜다. 대형 뮤지컬을 관람하는 건 처음이기도 했다. 드디어 막이 올랐다. 공연 내내 펼쳐졌던 화려한 무대와 의상 덕에 눈을 가만히 둘 수가 없었다. 기린, 코끼리, 사자 등 각종 동물들의 의상이 얼마나 센스 넘치고 정교한지, 거짓말 조금 보태서 멀리서 보면 정말 사람인지 아닌지 헷갈릴 것 같았다.
관람을 마친 뒤 잰걸음으로 소호로 향했다. 소호는 우리나라의 명동 격이다. 각종 브랜드 상점들이 즐비해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쇼핑을 위해 즐겨 찾는 곳이다. 쭉 거리를 둘러보다가 차이나타운이 가깝길래 한번 가봤다. 예상한대로 시끄러웠고, 호객 행위가 끊이질 않았다. 전형적인 차이나타운 느낌이 물씬 났다. 이래저래 구경하다 보니 날이 저물었다.
이대로 숙소로 돌아가기엔 아쉬워 런던아이 야경을 보러 다시 가봤다. 템즈강 다리 위에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광대분장을 한 이들이 같이 사진을 찍거나 악수를 하자며 계속 들이댔다. 순간 유혹에 넘어가서 그랬다가는 애꿎은 돈 몇 푼 버리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라, 열심히 도망다닌(?) 끝에 무사히 넘어갔다. 하지만, 꼭 걸려드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옆에서 한 일본여자애가 광대들과 신나게 사진을 찍더니만 곧 이어 울상을 하고는 광대한테 ‘나니~’(왜~) 하는 걸 보니 좀 측은했다. 깜깜해진 밤, 숙소로 혼자 돌아오려니 조금 무서웠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여행 이튿날이었다. 내일은 또 어떤 재미있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