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의 전 남편, 바비 브라운의 파란만장 인생사
[아시아엔=편집국] 자신의 아내와 딸을 하늘로 보낸 ‘팝의 여왕’ 고(故) 휘트니 휴스턴의 전 남편이자 지난 26일(현지시간) 숨진 바비 크리스티나 브라운의 아버지인 가수 바비 브라운(46)의 인생이 재조명되고 있다.
미국 언론들은 “휴스턴과의 결혼 이후 바비 브라운은 대중에게 ‘악당’ 이미지로 각인됐고, 이는 딸 크리스티나의 사망에 영향을 줬다”고 28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는 1980년대를 휩쓴 당대의 ‘R&B 스타’이자 타블로이드 황색언론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트러블 메이커’였다.
브라운은 1983년 학교 친구들인 마이클 비빈스·리키 벨과 의기투합해 그룹 ‘뉴 에디션’(New Edition)을 결성해 싱글 ‘캔디 걸’(Candy girl)과 ‘쿨 잇 나우’(Cool It Now) 등을 히트시켰다.
그는 이후 그룹을 탈퇴하고 솔로로 전향해 1988년 ‘돈 비 크루얼’(Don’t be cruel)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뉴 잭 스윙’(New Jack Swing)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하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어 1989년에는 영화 <고스트 바스터즈2>의 주제곡으로 정상을 차지하는 기쁨을 만끽하기도 했다.
이 같은 ‘깜짝 출세’는 자만과 방탕으로 이어져 브라운은 술과 마약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의 돌출행동을 보다 못한 멤버들이 강제 퇴출시키며 그룹에서도 쫓겨나는 불운을 겪었다.
1989년 휴스턴과의 열애 사실이 밝혀지자 휴스턴의 가족들은 물론 언론 매체에서도 ‘하필이면 왜 브라운과’라는 의문이 쏟아져 나왔다.
브라운이 1991년 휴스턴과 결혼한 이후에도 타블로이드들은 끊임 없이 부부의 사생활 루머를 확대 재생산했다.
휴스턴이 브라운의 유혹에 빠져 코카인과 헤로인 등 마약에 손을 대 중독에 빠졌으며, 브라운이 가정폭력을 일삼는다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이는 모두 브라운이 그동안 쌓아왔던 악동 이미지 때문이었다. 그는 전성기 때부터 술과 마약에 빠져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켰다.
여기에는 ‘트러블 메이커’인 브라운과의 결혼으로 ‘팝의 디바’ 휴스턴의 명성에 흠이 갔다는 세간의 억측도 한몫했다.
브라운은 붕괴 직전의 가정을 되살리기 위해 케이블 TV 채널인 ‘브라보’의 리얼리티 쇼에 휴스턴과 딸 크리스티나와 출연하기도 했지만, 악평만 남긴 채 중도하차했다.
결국 브라운과 휴스턴은 2007년 관계회복을 하지 못하고 끝내 이혼했다. 두 사람은 딸 크리스티나의 양육권을 둘러싸고 2년간 벌인 진흙탕 싸움을 벌였다.
브라운은 휴스턴이 2012년 숨진 뒤 뉴에디션과의 공연 투어 현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휴스턴을 진심으로 애도하기도 했다.
휴스턴의 어머니 씨시는 회고록 <휘트니를 기억하며>에서 “휘트니가 코카인을 처음 접하고 중독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전 남편 바비 때문이 아니라 오빠 마이클 때문이었다”며 “휘트니에게 일어난 비극이 그의 탓이라고 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딸 크리스티나가 6개월간 혼수상태로 있다가 숨지자 애도 성명을 통해 “크리스티나는 천사였고, 지금도 천사”라며 “나는 이 순간 아무 말을 할 수가 없다”고 눈물을 흘렸다.
얄궃게도 브라운은 몇주전 딸 한명을 얻었다. 크리스티나가 숨지기 몆 주 전 브라운의 현 부인 앨리샤 에서리지가 딸을 출산한 것이다. 불과 몇주만에 딸 한명을 잃고 딸 한명을 얻은 브라운. 그의 파란만장한 인생을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