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전설’ 표절 의혹, 15년전에도 묻혔다···연합뉴스 단독보도

평론가 정문순,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 기고서 주장

“모티브 비롯 10여곳?유사 혹은 동일···구조·전개도 같아”

“‘우국’ 몰랐다”는 신경숙 주장에 의문 제기

[아시아엔=편집국] “신경숙 선생은 <혼불>을 쓰신 최명희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야 됩니다.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 소설 <혼불> 후기에서.”

소설가 신경숙씨의 1994년 단편 <전설>을 둘러싸고 불거진 표절 의혹에 대해 한 누리꾼이 올린 글이다.

<연합뉴스>는?”신씨의 표절 의혹은 2000년에도 유수 문예지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기됐던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이는 현재 표절 의혹 대상인 “미시마 유키오(본명 히라오카 기미타케의 소설 <우국>(憂國)을 알지 못한다”고 반박한 신씨의 해명에 강한 의문을 갖게 하는 대목이다.

과거에도 제기된 표절 의혹이 아무런 반향없이 묻혔다는 점에서 문단의 자정기능에 대한 회의론이 더욱 커질 전망이라고 연합뉴스는 덧붙였다.

부산 출신의 문학평론가 정문순(46)씨는 지난 2000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실은 ‘통념의 내면화, 자기 위안의 글쓰기’ 기고문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95현대문학상 수상 소설집에 실린 단편 <전설>은 명백히 일본 극우 작가 미시마 유키오 ‘우국’의 표절작”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이 표절의 증거로 ‘문단의 유사성’을 집중 거론한 반면, 정씨는 ‘모티브는 물론, 내용과 구조면에서도 유사하다’는 전면 표절의 주장을 담고 있다.

정 평론가는 “일제 파시즘기 때 동료들의 친위쿠데타 모의에 빠진 한 장교가 대의를 위해 자결한다는 <우국>의 내용과, 한국전쟁 때 한 사내가 전쟁터에 자원입대하여 실종되는 <전설>은 남편들이 국가를 위해 목숨을 버릴 때 남은 아내들의 선택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점에서 주요 모티브부터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신경숙씨는 이응준씨 주장에 대해 17일 출판사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을 통해 “<우국>을 알지 못하고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고, 창비 또한 “두 작품이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라며 표절 의혹을 공식 부인했다.

하지만 정씨의 주장은 이를 전면적으로 뒤집는 내용이다. 정씨에 따르면 “<우국>의 아내는 남편 따라 죽는 데 일호의 주저도 없으며, ‘전설’의 여자는 남편의 실종 통보를 받고도 평생을 기다림과 그리움으로 보낸다. 또 10여 개의 비슷하거나 거의 동일한 문구는 물론이고 남편의 죽음이나 참전을 담담하게 수용하는 아내의 태도, 역순으로 전개한 사건 구성, 서두에 역사적 배경을 언급한 전개 방식 등 유사성은 우연의 일치나 영향 관계로 해석될 여지를 봉쇄해버린다.”

정씨 기고문의 존재는 과연 신 작가가 주요 문예지에 발표된 표절 의혹조차 15년 동안 몰랐겠느냐는 새로운 의혹을 불러 일으킨다. 한 평론가는 “자신에 관한 평론은 꼼꼼히 찾아보는 소설가들의 속성상 그가 주요 문예지에 게재된 이 평론의 존재를 몰랐으리란 개연성은 높지 않다”고 말했다.

이는 표절의 문제를 한국 문단의 저급화를 초래하는 상업적 담합 구조와 연결짓고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정씨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15년 전 제가 제기한 게 새로운 것인양 논쟁으로 불거지는 모습을 보는 건 유쾌하지 않다”며 “하지만 이번에라도 확실하게 진상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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