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6일] 아시아의 의인 고 이수현씨 12주기

2003 타이완 여객기 54년 만에 중국 취항

2003년 1월26일 타이완 여객기가 54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 도착했다. 반 세기를 기다려온 양안(중국과 대만)간 첫 직항이 드디어 성사되는 순간이었다. 19명의 승무원과 관리 등을 태우고 오전 3시55분 타이베이 공항을 출발한 타이완중화항공 전세기(CAL기)가 홍콩을 거쳐 오전 8시 52분 상하이 푸둥공항에 착륙했다. 푸둥공항에서는 대만 항공기가 내려앉자 준비된 환영 음악과 용춤 등 공연이 펼쳐졌다.

역사적인 비행의 기장은 여성이 맡았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뜻 깊었다. 타이완과 중국은 이에 앞서 2002년 11월 여행객이 많은 춘절(春節) 연휴 기간에 타이베이와 상하이 사이에 간접 항로를 개설키로 합의한 바 있다.

대만에서 날아온 CAL기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대만 비즈니스맨 258명을 싣고 대만으로 되돌아갔다. 대만 푸싱항공도 이날 대만 남부 가오슝에서 마카오를 거쳐 상하이를 왕복하는 직항기를 띄웠다.

2001 선로에 추락한 일본인 구하려다 사망한 이수현씨

2001년 1월26일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퇴근하던 일본 유학생 이수현씨가 도쿄의 야마노테 선 신오쿠보 전철역 반대편 철로에 추락한 취객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사망했다. 한국 나이로 스물일곱살. 취객 및 함께 구조하던 일본인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씨도 이씨와 함께 전동차에 치여 사망했다.

이씨는 한국의 고려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9년 가을 휴학한 뒤, 2000년 1월 일본에 건너가 ‘아카몬카이’라는 일본어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사망 후 유해는 같은 해 1월30일에 김해공항에 도착, 자택근처의 사찰인 정수사에 안치됐다가 두달 여 뒤인 4월9일, 부산시립 영락공원안에 있는 공동묘지에 안치됐다. 2001년 1월 31일 한국 정부는 그를 의사자로 선정했고 국민훈장을 수여했다. 그해 2월24일 이씨의 모교인 고려대학교는 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같은 해 4월15일 사고 현장인 신오쿠보 역에 그를 추모하는 조형물이 설치되는 제막식이 거행됐다. 2008년 10월30일에는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제작한 영화 <너를 잊지 않을 거야>가 개봉됐다.

고 이수현군은 기자의 전우(戰友)이기도 하다. 충청북도 증평의 모 육군부대에서 106미리 무반동총 사수로 복무했던 수현씨는 선임병과 동기, 후임병 모두에게 모두 존경과 찬사를 받는 모범 병사였다. 만능스포츠맨이었고, 매사에 솔선수범했으며, 부족한 후임사병들에게 그는 따뜻한 형과 같이 다정했다. 장교와 부사관(당시 하사관) 등 간부들에게도 예의를 다했고, 그의 여자 친구는 부대원 모두가 알 정도로 예쁘고 밝았다. 약한 자를 돕고 타인의 위험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천성은 그의 삶의 습관에 깊숙이 녹아있었다.

그가 영면한 지 12년. 그의 ‘의로운 죽음’이 남긴 가치는 무릇 생물과 구별되는 인간의 특징으로 간직돼 널리 아시아, 지구촌을 이롭게 할 것이다.

2001 인도·파키스탄 강진 220여명 사망

2001년 1월26일 오전 8시50분(현지시각) 인도와 파키스탄 등에서 리히터 규모 6.9의 강진이 발생,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에서만 220여 명이 숨졌다. 이날은 인도가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나 1950년 공화국으로 다시 태어난 것을 기념하는 공휴일이었고, 대부분 집안에 있던 이른 시각이라서 사상자 규모가 컸다. 지진의 직간접 영향으로 숨진 인명은 무려 2만5000명에 이른다. 지난 1956년 이래 최대 규모의 지진이자, 2000년 이후 아시아에서 처음 발생한 대규모 지진이었다. 지진으로 아마다바드시에서만 40여 채의 건물이 붕괴됐으며 주 전역에서는 100여 채의 건물이 무너졌다. 통신장애도 발생했다. 방글라데시와 네팔에서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구자라트는 지진이 일어난 지 1년이 지나도록 정상화되지 못했다. 주택이 속히 재건되지 않아 수백만명이 노숙인 신세로 전락해 텐트촌이나 임시 수용소를 전전했다. 시민들은 연일 정부에 항의했고 결국 구자라트 주지사가 지진 발생 열 달 만에 사임해야 했다. 이 지진으로 8명이 숨지는 피해를 본 파키스탄은 4년여 뒤인 2005년 10월 또 한 차례 지진이 발생, 무려 2만 명이 숨지는 참사를 겪었다.


1988 호주 건국 200주년 기념식

지난 1988년 1월26일은 호주 건국 2백주년 기념일이었다. 호주 사람들은 해마다 1월26일을 ‘오스트레일리아의 날(Australia Day)’로 기념하고 있다. 이 날을 기념하려고 캔버라와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퍼스, 다윈 등 오스트레일리아의 주요 도시에서 각종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벌어진다.

‘오스트레일리아의 날’은 1788년 1월26일 영국 제1함대 선원들과 영국계 이주민들이 오스트레일리아의 록스 지역에 최초로 상륙, 오늘날의 시드니를 개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다. 대한민국의 개천절과 같은 오스트레일리아 최대의 국경일 중 하루다.

1988년 기념일에는 영국 찰스 황태자 부부도 기념식에 참석했다. 호주는 영국여왕이 임명한 총독이 다스리는 영국연방 입헌군주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원주민들은 1988년을 ‘애도의 해’로 정하고 시위를 벌였다. 원주민들은 당시 백인정착민들로부터 탄압을 받은 뼈아픈 200년 역사를 되새기며 독자적인 원주민문화를 건설하자고 외쳤다.

이상현 기자 ?coup4u@theasian.a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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