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엔 특별기획] 100년 역사 아카렌가 창고서 ‘개항기 낭만’을 거닐다
[아시아엔=이기봉 엘 치코 커피 로스터즈 대표] 근래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매김한 ‘아카렌가 소코(赤レンガ倉庫·붉은 벽돌 창고)’는 애초 부둣가의 창고에 불과했다.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엔 신문물이 물밀듯이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배가 정박할 수 있는 부두가 없었다. 이를 수용하기 위해 1896, 1899년 두 차례의 대규모 공사로 이뤄졌고, 지금의 요코하마 부둣가와 아카렌가 창고가 완성되었다.
100년이 넘는 역사가 말해주듯, 아카렌가 창고는 지금의 모습으로 자리하기까지 세월의 모진 풍파를 견뎌내야만 했다. 서양문물 수용의 첨병 역할을 하던 아카렌가는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대부분이 붕괴됐고, 1945년 2차대전 당시에는 무역이 중단되며 군사물자 보급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1960년대 중반 이후 해운이 활발해짐에 따라 현대설비를 갖추는 등 요코하마 부둣가에도 제2의 전성기가 온 듯 했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을 넘어가며 화물량이 급감했고, 결국 1989년 창고로써의 수명을 다했다.
요코하마 부둣가는 자연스럽게 방치되기 시작했고, 동네 불량배의 아지트로 전락했다.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던 활발했던 항구가 흉측한 낙서로 뒤덮인 애물단지로 변질된 것이다. 이때, 반전이 일어났다. 1992년 요코하마 시 당국이 고민 끝에 일본 정부로부터 아카렌가를 매입해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이자 역사의 산실로 전면 개보수하는 이른바 ‘미나토미라이 21 프로젝트’를 추진한 것이다. 그리고 2002년 4월, 아카렌가는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거쳐 깔끔하고 세련된 문화공간으로 부활했다.
아카렌가 창고는 크게 동쪽 1호관, 서쪽 2호관으로 나뉜다. 1호관은 메인홀과 전시관 등이 있어 문화시설로 역할을 하고, 2호관은 레스토랑과 의류, 도자기, 아기자기한 디자인 소품들을 판매하는 100여개의 상점들이 주를 이룬다. 아카렌가는 주기적으로 문화행사들을 개최해 관람객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올해로 9회째를 맞는 플라워가든은 매년 봄마다 화려한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일본 인디뮤지션부터 해외뮤지션들까지 다양한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콘서트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여름에는 맥주페스티벌,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을 운영해 시민들에게 ‘연중무휴’ 휴식공간도 제공한다. 또한 메이지 시대의 건축 거장인 추마키 요리나카가가 설계한 역사적 유물과 드넓게 펼쳐진 바다가 연주하는 ‘합중주’는 19세기말 ‘개항기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애물단지서 시민들 문화공간으로…
요코하마 시에서 아카렌가 창고를 사들이기 이전의 사진들을 보면 흉물스런 폐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아카렌가는 요코하마 시민들의 문화공간이자 휴식공간, 예술가들에겐 그들의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무대를 선사하고 있다. 물론 이는 시의 지속적인 투자와 확고한 계획, 부단한 노력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지금도 아카렌가는 여러 예술가들의 작품전시회, 해외아티스트 초청뿐만 아니라 벨기에맥주 페스티벌 등 참신하면서도 시민들의 참여욕을 돋구는 이벤트를 계획, 추진 중이다.
일본에서 음악을 전공하고 직접 무대에 서본 필자는 항상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무대를 갈망해왔다. 또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문화생활을 즐기며 편하게 쉴 수 있는 장소를 찾아 헤맸다. 요코하마의 ‘문화공간’ 아카렌가는 과감한 결단과 투자를 아까지 않은 시 당국, 취지에 공감하고 적극 참여한 아티스트, 그리고 이를 향유하는 대중이 한 마음 한 뜻을 모아 가꿔나갔기에 가능한 사례였다. 이런 사례들이 하나의 롤모델이 되어 보다 풍족한 문화생활을 즐기는 아시아, 필자의 작은 소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