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코하마, 오랜 역사를 간직한 미래의 항구도시
[아시아엔=이정찬 기자]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밤바다는 인간의 헛된 오만함을 일시에 잠재워버리고 본연의 작고 겸손한 마음으로 돌려놓는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몰려 온 듯 별 한자리 찾아 볼 수 없다. 겨울바람은 살을 에는 듯 차갑게 다가오지만 화려한 차림으로 저녁 치장을 한 항구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는 추억의 조각들을 모아보기 위함이다.
우리가 동경하는 여행 목적지가 문학 혹은 예술작품의 배경지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은 놀랍지 않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주인공이 되었던 우리의 머릿속에 세밀하게 묘사된 배경지는 고스란히 직접 경험으로 남는다. 노래제목 속의, 노래가사 속 그 곳은, 언젠가 꼭 가봐야 할 고향의 향수를 품게 한다.
요코하마의 밤은 그 옛날의 ‘블루라이트’처럼 더 이상 소박하지 않다. 노래가 소개되었던 70년대 말에는 그러했으리라. 20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미나토 미라이 21’프로젝트로 요코하마시의 모습은 크게 변모하였다. 지난 세월의 향기와 추억은 화려한 도시의 불빛 아래선 찾을 수 없다.
본시 작은 어촌이었던 요코하마는 일본의 문호 개방 후 1859년, 개항장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중심으로 나서게 된다. 수도 일본의 관문으로, 교역의 중심지로 떠오른 도시는 1872년 도쿄와의 철도 부설로 명실상부한 일본 최대 항만으로 자리매김하였다. 1910년부터 진행된 연안매립공사로 형성된 광대한 부지는 요쿄하마를 무역도시에서 주요 공업도시로 또 다른 변신을 하게 하였다.
관동대지진과 2차 세계대전의 아픔을 딛고 일어난 도시는 더 밝은 미래를 위한 그림을 완성해 나가고 있다. 미나토 미라이21은 6대 발전프로젝트의 중심으로 21세기 국제항구도시의 전형을 꿈꾼다. 오랜 역사와 첨단이 공존하는 도시는 일본인들이 가장 동경하는 곳으로 젊은 도시의 열기로 가득하다.
강과 운하 그리고 바다를 연결한 도시는 감동을 부른다
하네다 공항은 우리 김포공항 마냥 수도의 관문 역할을 나누고 있다. 공항은 떠나는 사람 다시 돌아온 사람들로 분주하다. 불과 30분 거리인 요코하마를 향하는 도로를 제법 시원하게 달리면서 찾지 못했던 길지 않은 시간동안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버린 도쿄의 옛 모습을 떠올린다.
마른 도시를 가로 질러 흐르는 운하 그리고 그 위를 오가는 배가 보인다. 요코하마는 도쿄와는 전혀 다른 얼굴로
이방인을 맞이한다. 요코하마 여행에서 빼 놓을 수 없다는 ‘차이나타운’을 지나 퍼시피코 요코하마에 위치한 ‘요코하마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에 여장을 풀었다.
요코하마 그랜드 인터컨티넨탈은 돛을 연상시키는 독특한 외관을 가진 초특급 호텔로서 594개의 객실과 다수의 컨벤션 홀을 갖추고 있다.
세계최대의 복합 컨벤션 센터인 퍼시피코 요코하마의 전시 컨벤션시설과 호텔의 외관은 요트의 돛과 조개를 형상화 한 것으로 어느 방향에서 봐도 매력적인 디자인으로 요코하마의 상징하는 건축물이다.
야마테 111번지는 얕은 구릉지대인 요코하마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미나토루노 미에루 오카 공원(항구가 보이는 언덕 공원)에 위치한다. 개항 이후부터 외국인 거주지였던 인근은 유럽의 어느 곳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빨간 벽돌 지붕아래 하얗게 치장을 한 스페인 양식의 건물 일층 테라스에서 항구를 내려 보면서 마시는 찻잔 속으로 눈 앞 로즈가든의 장미향이 스며들어온다.
언덕을 내려와 도시의 중심가로 향한다. 요코하마 최초의 시가지는 개항 후 항구에 인접하여 개설된 상관(商館)과 외인거류지였으며 현재 이 일대는 현청·시청 등 관공서와 상사·은행 등이 집중된 비즈니스의 중심지이다. 150여년의 시간이 이미 흘러갔지만 유럽양식의 오랜 건물에서 개항 당시 요코하마의 내음이 묻어 나온다.
모토마치 쇼핑 지구는 이세자키정[伊勢佐木町]과 함께 개항 후 형성된 상점가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오랜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상점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곳으로 일본 최초의 빵집 구두점 양복점 등 일본최고(最古)를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왕복 2차선의 좁은 도로 양 옆으로 나지막한 건물이 줄 지어 있는 모토마치 스트릿은 그 자체가 역사요 문화이다.
역사와 문화 외에도 여행이 즐거운 것은 맛난 음식을 제대로 느껴 보는 것.
일식요정 ‘다나까야’를 들어서니 일본 전통 악기 사미센의 연주가 객을 맞는다.요정의 주인이신 오카미상은 손님이 오실 때마다 전통음악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직접 안내를 하는 150년의 역사를 이어 가고 있다고 한다.
유명한 일본화가인 안도 히로시게의 풍속화에도 그려진 사쿠라야를 이어 받아 에도 시대에 창업한 다나카야는 요코하마에서 가장 오래 된 요정으로 일본 근대화의 영웅인 사카모토 료의 부인이 일하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식사를 하는 동안 오카미상은 요코하마의 옛 사진과 식당을 방문한 고관들의 일화를 소개하며 전통이 이어지길 소망했다.
요코하마는 과거의 영화를 잘 간직하면서 미래로 향하고 있다. 도쿄 관문으로서의 역할을 넘어 무역의 중심지로, 주요 공업단지로 그리고 관광산업과 마이스 산업의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한 노력은 이미 결실을 맺고 있다. 이제 요코하마는 일본사람들이 가장 동경하는 도시 일 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주목하고 동경하는 21세기의 ‘블루 라이트’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