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대통령 취임 많이 하는 날

2011 죽산 조봉암 52년 만에 누명 벗다

2011년 1월2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박시환 대법관)는 간첩으로 몰려 52년 전 사형당한 조봉암에 대한 재심에서 국가변란과 간첩 혐의에 대해 전원일치로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국가변란 혐의에 대해 “진보당은 사회민주주의 방식에 의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부작용이나 모순을 완화·수정하려 했을 뿐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체제를 전면 부인하지 않았다”며 “따라서 진보당 결성이 국가변란 등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간첩 혐의에 대해선 “조봉암은 혐의를 부인하고, 대북공작기관 HID 요원 양이섭의 진술은 이전까지 자신을 도와준 육군특무부대에 영장 없이 연행돼 장기간 감금된 상태에서 한 것이어서 믿기 어렵다”고 밝혔다.

조봉암은 1956년 5월 제3대 대통령선거에 무소속으로 나섰다가 자유당 후보 이승만에게 패하고, 같은 해 10월 진보당을 결성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959년 2월 대법원은 조봉암에게 국가변란·간첩 등의 혐의로 사형을 선고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2007년 9월 조봉암 사건을 ‘비인도적, 반인권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규정했고, 유족들은 이듬해 재심을 청구했다.

집권자가 정치적 경쟁자를 국가반역자로 몰아 살해한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이 늦게나마 판결의 오류를 인정하고 다시 선고한 점은 인정받을만하다는 평가다.

2009 버락 오바마 미국 제44대 대통령 취임식

버락 후세인 오바마가 2009년 1월 20일(현지시간) 제 44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미국 역사가 시작된 지 232년 만에, 그리고 미국이 대통령을 선출하기 시작한 지 219년만에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취임하는 순간이었다.

가수 에리사 크랭클린은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선율에 맞춰 취임식 무대에서 영국 국가인 ‘long live the Queen’ 노래에 맞춰 ‘신이어 미국을 보호하소서’를 흑인 영가풍으로 불렀다.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식장 주변에는 새벽부터 역사적인 장면을 보기 위해 찾아나선 미 전역의 미국인들이 이날 영하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5~8시간 전부터 장사진을 치고 있었으며, 의사당 앞 취임식장에서부터 네셔널 모뉴먼트가 있는 앞까지 개방된 몰에는 이미 150만 명에 이르는 인파가 극심한 보안조치 속에서도 가드레일로 안내되는 워싱턴 시내 통행규칙에 따라 차분히 자리해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봤다.

2012년 11월 6일 화요일에 미국 대통령 선거가 다시 치러져 오바마는 연임에 성공했다. 연방 상원의원 100명 중 33명과 연방 하원의원 435명 전원을 뽑는 선거에서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것이다.?민주당의 상원의원 과반 역시 유지됐다. 다만 하원 의원 선거에서는 지난 2010년 중간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공화당이 더 많은 의석을 확보했다.

미국의 대통령은 매번 1월20일 취임한다. 조지 W 부시 미국 제43대 대통령도 2001년 1월20일?취임했다.?미국 대통령의 정권 인수 과정은 그 해 11월 첫 화요일 선거에서 새 대통령 선거를 치른 후부터 이듬해 1월20일 정오를 기해 막 취임식을 마친 대통령에게 핵무기의 사용을 명령할 수 있는, 이른바 ‘블랙박스’가 인계되는 것으로 완료된다.

2013년은 1월20일이 일요일이라서 오바마 대통령은 1월21일 취임식을 갖는다.



2001 필리핀 에스트라다 대통령 사임, 아로요 부통령이 대통령직 승계

뇌물수수 혐의로 퇴진 압력을 받아오던 조지프 에스트라다 필리핀 대통령이 `피플 파워`에 밀려 2001년 1월 20일 사임했다. 핵심 각료와 군부, 경찰 지도부까지 사임요구에 가담해 그의 권력기반은 이미 붕괴됐었다. 이에 따라 그동안 반 에스트라다 운동을 이끌어온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부통령이 이날 신임 대통령에 취임했다.

필리핀 헌법상 대통령 유고시 권력 승계자인 아로요 부통령은 이 날 오후 일라리오 다비데(Hilario Davide) 대법원장 앞에서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이날 오전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15만 명의 시위군중이 경찰의 저지선을 뚫고 말라카냥 대통령궁을 향해 평화적 시위를 벌이자 에스트라다 대통령은 국민통합과 질서회복을 위해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에스트라다 대통령의 사임 후 취임한 아로요 대통령은 능력과 미모를 겸비한 필리핀 최고의 인기 정치인이다. 아로요는 1961년부터 1965년까지 필리핀 대통령을 지낸 고 디오스다도 마카파갈의 딸이다. 아버지는 1965년 대선에서 마르코스 전 대통령에게 패했지만, 마르코스를 축출한 `피플 파워`는 마침내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아로요는 대학교수(경제 분야)로 재직했고, 아키노 정부 당시 무역산업부 차관보로 공직을 시작했다. 1992년 아키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필리핀 민주투쟁당(LDP)의 공천을 받아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1998년엔 필리핀 역사상 최대인 700만 표 차로 부통령에 당선됐다.

1996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 당선

30여년 동안 팔레스타인 해방운동을 지도해온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

1996년 1월20일 첫 자치정부 총선에서 88%의 압도적 지지로 대통령격인 행정수반에 당선됐다. 입법기구인 평의회 의석도 아라파트가 이끄는 파타파 후보들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아라파트는 60년대 초반 침체에 빠졌던 팔레스타인 독립운동을 무장투쟁 노선으로 전환해 팔레스타인 민족문제의 존재를 전세계에 환기시켰다. 그는 2004년 11월 11일 지병으로 사망했다.

1993년 지구촌이 흠모한 오드리 햅번 눈 감다

1993년 1월20일 세계 3대 미녀, 10대 미녀 등으로 불리던 배우 오드리 햅번(1929~1993)이 대장암으로 작고했다.

오드리 햅번은 벨기에 출신의 영화배우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 <로마의 휴일>에 출연, 하루아침에 세계의 연인이 됐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스타덤에 오른 후, ‘햅번룩’을 대유행시키며 현재까지도 패션 트렌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배우로서도 아름답고 화려했지만 장기간 유니세프 친선대사로 활동하면서 인류애를 실천한 노년의 그녀 역시 수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아름다운 여인으로 기억되고 있다.

“네가 더 나이가 들면 두 개의 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한 손은 너 자신을 돕는 것이고 다른 한 손은 다름 사람들을 돕기 위한 것이다.” 그녀가 유언으로 남긴, 그녀가 생전에 좋아하던 시의 한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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