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건설업체 텃밭 중동서 ‘고전’
수주경쟁서 유럽업체에 밀려나…유가하락으로 어려움 커질듯
[아시아엔]국내 건설사들이 수주 텃밭인 중동에서 유럽 업체들의 공격적인 수주 활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유가 하락의 여파로 중동에서 앞으로 공사 발주량이 줄어들 전망이어서 국내 건설사들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대차그룹 산하 한국자동차산업연구소는 12일 펴낸 ‘건설·철강 동향’ 보고서에서 유럽 건설사들이 최근 중동 건설시장에서 공격적인 수주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22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가 발주한 쿠라이스 유전 확장 사업을 이탈리아의 사이펨이 최저가로 수주했다.
30억 달러 규모로 발주된 이 사업 입찰에는 현대건설 등 국내 업체도 참여했지만 16억 달러를 써낸 사이펨에 근소한 차이로 밀렸다.
사이펨은 올해 초에도 30억 달러 규모의 사우디 지잔 가스화 프로젝트 입찰에 참여해 국내 업체들을 제치고 최저가로 공사를 수주한 바 있다.
미국의 건설·엔지니어링 전문지 ENR 조사에 따르면 2012년 매출액 기준 중동 지역 5위였던 그리스 건설업체 CCC는 지난해 3위로 순위가 두 계단 상승했다. 사이펨도 2012년 6위에서 지난해 5위로 순위가 한 계단 올라갔다.
반면 같은 기간 매출액 3위였던 대림산업은 6위로, 8위였던 GS건설은 10위로 하락하며 유럽 건설사들에 자리를 내줬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그동안 중동 시장에서 저가 수주 경쟁을 자제하던 유럽 업체들이 적극적인 수주 전략으로 돌아섰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한 국내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유럽의 경기침체로 유럽 내 발주가 줄어들면서 과거 유럽 내 발주 사업만으로도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받던 유럽 업체들이 새로운 먹을거리를 찾아 중동 시장으로 다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유럽 업체들이 과거보다 기대수익을 낮춰잡은 데다 유로화 약세를 업고 가격 경쟁력까지 갖춘 상태에서 국내 업체들과 경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 업체들이 공격적으로 중동 시장을 공략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 건설사들은 오히려 중동에서 ‘제값 받기’에 주력하는 모양새다.
한때 중동 건설 시장을 장악하다시피 했던 국내 건설사들은 저가 수주의 여파로 ‘승자의 저주’를 경험하며 최근까지도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한편, 보고서는 앞으로도 국제유가 하락세가 계속되면서 중동의 발주량이 축소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유가가 하락하면 중동 산유국의 재정수입이 줄어들어 전체 발주의 60∼70%를 차지하는 공공 발주가 감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현태양 주임연구원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북미의 원유 공급 확대로 앞으로 1∼2년간 국제유가는 하락세가 지속할 전망”이라며 “국내 업체들이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