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11일] 아리랑 작가 님 웨일즈 잠들다
2008 에베레스트 첫 정복자 힐러리와 텐징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산을 최초로 정복했던 전설적인 탐험가 에드먼드 퍼시벌 힐러리 경(Sir Edmund Percival Hillary, 1919년 7월20일 뉴질랜드 오클랜드 출생, 오른쪽 사진)이 2008년 1월 11일 오클랜드 병원에서 심근경색으로 눈을 감았다. 향년 88세.
1953년 5월29일 오전 11시 30분 33세의 나이에 당시 39세의 세르파 텐징 노르가이(??????? ?????? ??????, 왼쪽 사진)와 함께 에베레스트 산을 최초로 등정한 인물로 기록됐다. 텐징은 1986년 71세의 나이에 인도 서벵골 주 다르질링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살아생전 히말라야 지역에 병원과 학교를 설립하는 등 네팔인을 돕는 데 앞장서 온 힐러리 경은 지난 1960년대 초 히말라얀 트러스트(Himalayan Trust)를 설립했다. 힐러리 경은 주기 전까지도 히말라야 지역에 학교와 병원 등을 지을 기금마련을 위해 힘써 온 것으로 알려졌다. 텐징은 1978년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한 ‘텐징 노르가이 탐험회사’를 설립, 경영했으며 그가 사망한 뒤 2003년부터는 그의 아들이자 1996년 에베레스트 정상을 등정한 잠링 텐징 노르가이가 경영하고 있다.
1997년 ‘아리랑’ 작가 님 웨일즈 사망
조선의 독립을 위해 중국 공산당에 투신하고 끝까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고민하던 정열적인 혁명가 김산(본명 장지락)의 이야기를 ‘소설 아리랑’으로 세상에 알린 님 웨일즈(본명 헬렌 포스터 스노우)가 1997년 1월 11일 사망했다. 향년 89세.
1936년 금강산을 다녀가기도 한 그녀는 1937년 중국연안의 한 도서관에서 김산을 만나 고난의 길을 걸어온 혁명가의 인생역정을 듣고 집필을 결심한다. 1941년 아리랑(Song of Arirang)은 뉴욕에서 첫 출판되고 한국어판, 일본어판, 중국판으로 계속 번역 출판됐다. 그러나 주인공 김산은 이미 1938년 ‘트로츠키주의자’ ‘일본 스파이’ 죄목으로 처형당하고 말았다.
님 웨일즈는 1907년 미국 유타주에서 출생 1931년 신문기자로서 중국에 첫발을 디디게 된다. 이후 중국에 거주하며 유명한 중국통인 에드가 스노우를 만나 결혼, 함께 1930~1940년대 중국을 누볐다. 남편 에드가 스노우는 중국공산당 지도자 마오쩌둥에 대한 저술 ‘중국의 붉은 별’로 유명하다. 특히 마오쩌둥의 대장정에도 참가하며 행동가로서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상 후보에 두 번이나 오르기도 했다. 저서로 ‘붉은 중국의 내부’ ‘중국 노동운동’ ‘아리랑’ ‘홍진’ ‘나의 연안일기 ‘중국에 바친 청춘’ 등이 있다.
1972년 동파키스탄이 방글라데시로 이름 바꾼 날
영국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인도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인 각각 정당을 세워 영국왕실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치권을 찾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이슬람 교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방법을 찾는 데는 서로 합의를 보지 못했다.
무슬림 당(黨)인 전인도무슬림연맹(All-India Muslim League)은 1935년 인도에서 첫 선거에 패배한 뒤 1940년 무슬림이 주류를 이루는 지역을 독립주로 선언했다. 이 때문에 캘커타 등지에서 대규모 폭력사태가 일어나기도 했다. 1947년 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얻은 인도는 벵골지역을 종교에 따라 각각 무슬림의 동파키스탄(파키스탄 지역)과 힌두교인의 서벵골(인도 영토)로 분리했다.
1971년 3월26일 파키스탄군은 동파키스탄 지역의 벵골인들을 유혈 진압하기 시작했다. 인도의 지원 속에 결국 1971년 12월16일 파키스탄 군대는 항복하고, 이듬해 1월11일 벵골 국가라는 뜻의 방글라데시(Bangladesh)가 탄생했다.
1967년 말레이시아 주둔 영국군 철수
1967년 1월11일 말레이시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 마지막 부대가 쿠칭항을 통해 철수했다. 영국군은 4년 전 말레이시아가 인도네시아와 영토분쟁을 벌일 당시 말레이시아를 돕기 위해 파병됐었다.
영국군은 5개월 전인 1966년 8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분쟁을 끝내고 평화조약을 맺음에 따라 철수를 결정했다. 말레이시아는 1786년 영국의 식민지가 됐으며 1957년에야 영연방으로 독립했다.
631년 마호메트 메카 입성
631년 1월11일 이슬람교의 창시자 마호메트(Mahomat)가 성지 메카의 성으로 돌아왔다. 가브리엘 천사장의 계시를 받고 포교에 나선 지 21년, 박해를 피해 72명의 신도와 함께 고향 메카를 탈출(헤지라 원년)한 지는 9년 만이었다. 비잔틴 제국과 사산조 페르시아라는 두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사막에 흩어져 살던 아랍민족은 유일신 알라 밑에서 뭉쳤다.
이슬람에 대한 지구촌의 선입견은 여전하다. 서구의 지성들이 앞장 서 이슬람을 왜곡되게 묘사한 탓이 크다. 볼테르가 ‘광신자’, 괴테는 ‘살인마’라고 매도한 마호메트는 이교도의 메카 순례를 허용했었다. 코란에 나오는 28명의 예언자 중 21명은 성경의 인물이다. 이슬람은 구약과 신약을 경전으로 인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