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누군지 알아?” “그래서?”···조롱받는 권위주의

화재 신고시 전화기를 찾아 가장 먼저 눌러야 할 번호, 바로?119다. 긴급한 사건 사고만 취급하는 119에 자치단체장이 전화를 걸어 왔다면, 또 당신이 소방관이라면, 어떻게 응해야 할까? 관등성명부터 대는 것이 순서인가, 긴급한 사건 사고가 아니라면 다른 곳으로 전화하라며 얼른 끊어야 하는가. 이런 상황이 발생하자 대한민국은 불이 붙었다. 119에 전화한?이 자치단체장의 권위주의를 성토하느라고. 네티즌들은 관등성명을 대라는 자치단체장의 통화음성을 여기 저기 퍼나르며? 조롱하고 질타했다. 관가의 권위주의인가, 시민들의 예민한 대응인가. 사건 속으로 다시 들어가보자.

지난 12월 19일 김문수 도지사는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한 노인요양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암 환자 이송체계를 문의하기 위해 119에 전화를 걸었다. 한 소방관이 그 전화를 받았고 자신을 도지사라고만 이야기하고 용건을 말하지 않자 장난전화로 간주하고 먼저 전화를 끊었다.

김 지사는 다시 전화를 걸어 “도지사 김문수입니다” 를 반복했고 앞서 전화를 받은 소방관인지를 물었다. ‘아니다’라는 답이 나오자 그 소방관의 관등성명을 요구한 후 통화를 끝냈다. 이 과정에서 김 지사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를 8번 반복했고 상대방의 신분을 7번 물었다. 전화를 받았던 2명의 소방관은 전보조치를 당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네티즌들은 김 지사가 119 긴급전화에 전화를 걸어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 것을 문제 삼은 것은 지위 남용이라며 맹렬하게 비판했다. 아이폰 잠금 화면으로 쓸 수 있는 일명 ‘김문수 119’ 배경화면 이미지가 등장하는가 하면 ‘나는 가수다’를 패러디한 ‘나는 도지사다’도 등장했다.

네티즌들이 각종 패러디물을 쏟아내면서 연일 포털사이트 검색어에 김 지사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경기도청 홈페이지까지 마비되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 번지자 그로부터 열흘 뒤인 12월 29일, 김 지사는 전화를 받았던 2명의 소방관을 직접 만나 사태 진화에 나섰다.?소방관들에 대한 전보조치는 즉각 해제됐고 이들은 전보 7일만에 원대복귀했다.

이번 사건에서 김문수 지사는 왜 119에 전화했는가.?소방체계 점검과?소방관 격려 등이 그 이유일?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점검’도, ‘격려’도 이뤄지지 못했다. 김 지사는 관등성명을 대지 않는다고 채근했다. 이어 소방관들이 전보됐다. 네티즌들은 이를 관의 ‘권위주의’로 보았고 ‘과시’로 여겼다. 패러디를 통한 SNS의 급속한 전파는 이에 대한 반발이다. 더 이상 관과 민이 수직적인 관계로 있지는 않겠다는 분출이다.

또 하나의 포인트는 119 상황실에서 근무하는 소방관의 업무매뉴얼에 과연 ‘관등성명’이 포함돼 있느냐 하는 것이다. 소방 관계자는 긴급상황일 경우 관등성명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밝혔지만 공무원들의 통상적인 업무에서는?소속과 이름을 밝히는 것이 관례이다.?공무원의 전화매뉴얼이 긴급상황을 취급하는?상황실에서?어디까지?적용돼야 할 지?양측의 관점이 달랐다.

다음으로는 119 통화 내용을?어떻게 네티즌들이 쉽게 받아서 들을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방송 뉴스의 경우 음원파일을 받아서 보도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일반인들이 다른 사람의 119 통화 내용을 듣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소스가 어떻게 유출되었는지의 문제는 별개로 이 녹음파일은 유통되고 전파되고 반복재생됐다. 이 때문에 네티즌들이 정확한 상황을 들어보고 판단할 수 있기도 했지만?공인이면서 동시에 한 개인이기도 한??목소리는 그야말로 이곳 저곳에서 조롱감이 됐다.??잠재적인 대권후보이기도 한 김문수 도지사는 치명타를 입었다. 또 다른 음모론이 조심스럽게 제기될 수 있는 점이다.?관은 명령하고 민은 따르는 “나는 ㅇㅇ다” 식의?권위주의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 비슷한 사례는 또 다시 이어졌다.

김문수 지사의 일이 발생하고 하루 뒤인 12월 30일, 문부식 진보신당 대변인이 만취 상태에서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던 중 행패를 부리다 경찰에 입건됐다. 문씨는 자택으로 향하던 택시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냐”고 소리치며 기사의 얼굴을 때렸다가 지구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진보신당은 문씨의 대변인직 사표를 수리했다.

지난 사례도 있다. 작년 7월에는 주민센터 여직원에게 행패를 부리고 폭언을 한 성남시의회 전 민주노동당?이숙정 의원이?제명됐다. 그는 전화통화를 했으나 자신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이유로 판교동사무소를 찾아가 신고 있던 하이힐과 서류 뭉치, 핸드백을 집어 던지며 여직원에게 욕을 하고 머리채를 잡아당기는 등의 물의를 빚었다.

같은 달 20일에는 민주당 소속 전남화순군 조유송 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군의원 3명이 인사에 불만을 품고 군청 총무과 사무실에서 안모 총무과장에게 욕설을 하고 의자를 집어던지는 등 난동을 피웠다. 이에 민주당?전남도당은 윤리위원회를 열어?난동 의원들에 대한 제명을 중앙당에 요청했다.

관과 정치인들에게?권위주의는 남아 있다. 주변에선 이들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과잉충성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민들은 더 이상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에게는?인터넷과 SNS이라는 도구가 있기 때문이다.?언제 어디서든 비판하고 이는 곧 여론으로 확산된다.

올해 한국에서는 총선과 대선이 모두 치러진다. 군림하던 정치인들이 선거를 앞두고 머리를 숙이는 시간이기도 하다. 시민들은?더 이상 이런 태도를 곧이곧대로 바라볼 것 같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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