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함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41주기에 부치는 편지

노동법전을 뒤적이다 “내게도 대학생 친구 한명만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며 멋쩍게 웃던 쾌활하고 성실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평화시장 재단사가 되자 장차 직원들로부터 존경받는 멋진 의류회사 경영자를 꿈꾸었습니다.

그는 하루 15시간 1평 남짓 작업장에서 일을 마치고, 버스비를 아끼려 1시간 이상을 걸어 퇴근을 하였습니다. 주경야독, 틈틈이 하루 2시간 검정고시 준비를 하던, 정말이지 해맑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답니다.

청년은 “제가 다니는 공장에서 하루 15~16시간 재봉틀, 다리미와 씨름하는 15살 어린 아이들을 지켜달라”며 한국의 지도층 인사들에게 보낼 편지를 자신의 공책에 써나갔습니다. 그가 22살 되던 1970년 11월13일. 세상은 마침내 그의 편지공책을 보게 됩니다.

그가 자신의 몸에 석유를 붓고 라이터에 불을 당기며 숨진 뒤였습니다. 그의 마지막 편지에는 두 문장이 기록돼 있습니다. 숨을 거두며 외친 말,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재봉틀이 아니다!”

몸을 휘감던 화염이 꺼지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그는 안간힘을 다해 외칩니다.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편지에는 적지 않았던 말입니다.

그가 떠난 뒤 한국에는 많은 깨달음과 변화가 있었습니다. 노동자인권이 많이 개선됐습니다. 물론 부족한 점도 많습니다. 회사의 일방적인 정리해고에 항의해 309일 동안 타워크레인에서 농성을 한 한진중공업 김진숙씨 사례가 그것입니다. 아시아 각지에서 한국에 이주해온 70만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역시 풀어야할 과제입니다.

전태일이 떠나자 그의 어머니 이소선씨는 아들을 대신해 노동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어머니는 평생 ‘한국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살았습니다. 고(故) 이소선 여사는 지난 9월 아들이 죽은 지 41년 만에 아들 곁으로 돌아갔습니다.

경기도 남양주시 모란공원 입구에 자리 잡은 민주열사 묘역에서, 모자(母子)는 이제 힘겹던 지난 날을 도란도란 얘기하며 누워있습니다. 나란히 누워 팔베개는 못해주지만, 엄마는 스물둘 앳된 얼굴의 아들 뒤에 앉아 정겨운 지난 얘기로 밤을 새우곤 한답니다.

청년 전태일이 다녔던 교회의 목사님은 “열사는 아마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지구촌 노동자들의 행복을 소망하면서 오늘도 부지런히 노동법전을 뒤적이고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가 떠난 지 꼭 41년이 되는 날입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고 함께 만들어가는 이들과 ‘아름다운 청년’을 함께 추억합니다.

 

추신 : 그의 삶을 그린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한 대목을 함께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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