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앙아시아

    통한의 ‘이중징용’…“우리 다 죽기 기다리나”

    ‘강제동원 현장’ 러시아 사할린을 가다 11월의 러시아 사할린 유즈노사할린스크 제1공동묘지에는 벌써 한겨울의 스산한 바람이 분다. 겨울 대비라도 하기 위함인지 묘지에 서식하는 까마귀 떼가 가쁜 비행을 거듭한다. 그러나 그들의 법석과는 달리 남편이고 아버지인 고 원수원 씨 묘를 찾은 두 여인은 보드카 한 병과 방울토마토 3알, 그리고 초콜릿 3개를 놓고 조용히 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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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47)반공포로 석방

    포로송환문제를 둘러싸고 교착상태에 있던 휴전회담이 재개되자 한국정부의 휴전반대운동은 절정에 달하였다. 1953년 4월 5일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 장병들에게 “국토의 통일이 없는 휴전보다는 차라리 압록강으로의 진격을 택해야 할 것이다”라고 연설하였다. 이승만은 4월 24일 미 국무성에 보낸 메시지에서 “만일 미국이 압록강 남쪽에 중공군을 주둔케 하는 어떠한 협정이라도 체결할 경우 본인은 한국군을 유엔군으로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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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아시아

    이란, 언제든 뛰어오를 도약대에 섰다

    [Country in Focus] 비약적 국가발전 시간문제…3대 선결과제 밖에서 보는 이란의 얼굴은 그닥 아름답지 못하다. 북한과 함께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불가촉천민 국가(pariah state)’로 여겨진다. 핵무기 개발로 유엔과 서방의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탓이다. 이란이 외부인의 눈에 곱게 비치지 않는 이유는 그뿐이 아니다. 이슬람 성직자인 물라(mullah)가 지배하는 신정국가, 여자들에게 히잡을 쓰도록 강요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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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46)금성전투···”유리한 휴전조건 위해 더 많은 피가 요구됐다”

    1953년 봄 중공군은 전체 전선에서 전초고지들을 목표로 1개 대대나 1개 연대 규모로 국부적 제한공세를 가해왔다. 국군은 이들 고지들을 사수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테일러 8군사령관은 이들 고지가 많은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확보할? 필요가 있는지 냉정히 판단하면서 고수를 고집하지 않았다. 밴 플리트가 기회만 주어지면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려 하였던 데 비해, 테일러는 인명손실을 최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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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종구의 필리핀바로알기] 필리핀 최고 부자 1~5위가 화교

    포브스 선정 10억달러 이상 부호에?필리핀 화교?6명 랭크 화교 사회는 지역에 상관없이 중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 자녀들을 현지 학교보다 중국인 학교에 보내려고 하며, 보통 이러한 중국인 학교는 화교 사회에서 지원하고, 성적이 좋은 학생들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화교 학생들을 조직적으로 돕는다.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을 토대로 중국이 조만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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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직필] 테이어 대령과 웨스트포인트 ‘명예제도’

    ‘테이어 제도’는 1817년부터 16년간 미 육사교장을 역임하여 미 육사의 아버지로 불리는 Sylvanus Thayer 대령이 미 육사에 정립한 교육제도 및 방법이다. 테이어 제도는 불확실한 상황과 불시의 적으로부터 국가의 안전을 수호해야 할 군의 지휘관에게 요구되는 적성 및 자질-국가에 대한 의무감, 헌신성, 명예심, 절대적정직성, 군사적 전문지식-을 교육하고 체질화시키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교수부에 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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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아시아

    [아시아의 시선] 중국, ‘세금 안 내려고’ 위장이혼

    *한 주간 주요 이슈들에 대한 아시아 주요언론의 사설을 요약 게재합니다. 필리핀 <Philippine Daily Inquirer> 필리핀 사상 최악의 자연재해, 인구 10% 피해 1만여 명의 인명을 앗아간 슈퍼태풍 하이옌은 필리핀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기록됐다. 제트 엔진과도 같은 폭풍이 바닷물과 함께 덮치면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과 생활터전을 앗아갔다. 재해 초기엔 직격탄을 맞은 사마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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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44)클라크 장군의 확전구상

    전선의 교착이 계속되자 유엔군사령관 클라크 대장은 대규모 작전으로 전선을 돌파하려 하였다. 그는 1952년 10월 초 콜린스 육군참모총장에게 “유엔군이 휴전회담을 조속히 성립시키지 못하고 있는 까닭은 공산군에 대한 군사적 압력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다. 공산측이 유엔군의 휴전조건을 수락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획기적인 대규모작전이 필요하다”면서 20일간에 걸친 3단계 작전으로 평양~원산을 목표로 한 지상군의 포위공격, 수륙양면 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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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43) 저격능선 전투

    1952년 10월에 이르러 밴 플리트 장군은 금화 북쪽의 오성산과 삼각고지~저격능선을 확보하여 위협이 되고 있는 중공군을 제압하기 위해 9군단으로 하여금 삼각고지~저격능선을 목표로 공격을 개시하였다. 8군은 16개 포병대대와 전투기 200회 출격의 화력지원을 계획하였고 9군단장 젠킨스 장군은 5일 이내에 목표를 탈취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하였다. 그러나 백마고지 전투로 포병 및 공중지원이 계획에서 벗어남으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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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국헌의 다시쓰는 6·25] (42) 백마고지 전투

    1952년 9월에 접어들어 중공군이 공세를 재개하였다. 이 시기 대표적인 전투가 백마고지 전투였다. 백마고지(395고지)는 철원으로 이어지는 보급로를 통제하는 주요한 전초고지였다. 9사단 정면의 적은 중공군 38군으로 10월 6일 밤 공격을 개시하였다. 고지를 수없이 뺏고 뺏기며, 밀고 밀리는 육박전에서 중공군은 엄청난 병력손실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인명의 손실도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파상공세를 계속해 왔다. 혈투는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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