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날은 누구나 승인할 수 있는 보편질서가 무너져 내리고 각자의 주관적 판단이 우선하는 개별성의 시대다. 개인들의 인간관계도, 나라들의 국제관계도 다르지 않다. 개인이든 나라든, 모두가 자기 이익 챙기기에 바쁜 세상이다.
“보편적 진리가 있는가, 있다면 무엇이 보편적 진리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의 정체는 무엇인가?”
“나는 홀로 존재하는가, 누군가와 더불어 존재하는가?”
보편성에서 주체성으로, 주체성에서 관계성으로 이어지는 이 물음들의 흐름이 곧 인류정신사의 여정(旅程)이다.
고대 그리스 이래 서양철학의 중심사상은 보편성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보편성은 편견과 독단을 넘어선 이성(理性)의 토대다. 개별적 현상이나 경험을 초월하는 사물의 본질, 그 보편성을 찾는 정신적 노력은 근대 계몽주의에까지 이어졌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명석판명한 이성의 보편적 능력을 신뢰한 데카르트의 선언이다. 데카르트는 17세기에 ‘이성에 대한 신뢰’를 철학의 제1원리로 삼았다.
그렇지만 보편성이 절대화되면 개성과 다양성은 억압된다. 인간은 보편질서에 종속된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사유하고 판단하는 주체다. 인간의 보편 이성에 의문을 던진 제1·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20세기, 드디어 인간 개개인의 주체적인 존재와 자유, 그리고 책임을 강조하는 실존주의가 등장한다.
인간은 스스로 삶을 결정할 자유가 있지만, 그 자유에 따르는 책임 또한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L’existence précède l’essence)는 사르트르의 신념은 질서보다 자유가, 보편성보다 주체성이 앞선다는 의미일 터이다. 주체성이 보편성에 반기를 든 것이다.
그런데 그 사르트르도 “인간은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L’homme est condamné à être libre.)고 탄식했다. 그 자유는 저주나 다름없기에.
주체성은 자유와 인권을 핵심으로 하는 민주주의 발전에 귀중한 사상적 계기를 제공했다. 그렇지만 개인의 주체적 자율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타인과 분리된 고립된 존재가 된다. 각자의 자유가 서로의 경쟁으로 변질되고, 사회는 자유인들의 공동체가 아니라 서로 경쟁하며 충돌하는 욕망들의 전쟁터가 되고 말 것이다.
개인의 주체성보다 더 소중한 것이 공동체의 관계성(關係性)이다. 종교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Ich und Du)라는 책에서 ‘인간은 홀로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신이 된다’고 썼다.
더 나아가 윤리를 ‘개인적 주체의 자율적 규범이 아니라 타자(他者)가 나에게 건네는 부름’이라고 본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은 나에게 윤리적 책임을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스스로 존재한 뒤에 비로소 타자와 관계를 맺는 것이 아니다. 인간은 관계 속에서 태어나고, 관계 속에서 자기 정체성을 형성한다. <지각의 현상학>을 쓴 메를로퐁티는 ‘인간은 세계와 분리된 순수한 의식이 아니라 몸-주체(corps-sujet)를 통해 타인과 세계에 얽혀 있는 관계적 존재’라고 이해했다.
한 사회도 다른 사회와, 한 나라도 다른 나라와 어떤 방식으로든 관계를 맺는다. 그 관계의 위기가 곧 세계의 위기, 인류의 위기다. 생태계 파괴, 경제적 불평등, 종교적 배타성, 정치적 양극화는 자신과 타자를 분리된 존재로 바라보는 과도한 주체성의 인식이 불러온 재앙이다.
타인을 경쟁의 대상으로, 사회를 개인적 이익의 수단으로,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여기는 극단의 주체성이 세계와 인류의 평화를 가로막는다. 보편성을 무시한 관계성은 편협한 집단주의로, 주체성이 없는 관계성은 개인을 억압하는 전체주의로 전락한다.
그러나 올바른 관계성은 보편성과 주체성을 평화롭게 연결한다. 보편성은 인간과 사회가 함께 지켜야 할 정의의 기준을, 주체성은 인간의 자유와 존엄과 책임을 제공한다. 보편성은 진리를 추구하고, 주체성은 자유를 옹호하며, 관계성은 그 둘이 공존하는 지혜를 보장한다.
인간 개개인의 존엄은 홀로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의 존엄을 인정하고 서로의 연약함을 돌보는 관계성이 인간의 존엄을 깊게 만든다. 우리의 삶은 타자와 더불어 살아갈 책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타자는 나와 동떨어진 객체가 아니다. 타자는 나의 존재, 나의 자유, 나의 책임과 연결된 관계 속의 이웃이다.
남북이 갈라져 서로 으르렁거리고 자유세계와의 연대도 점점 느슨해지는 듯한 오늘의 우리나라, 지금의 우리 사회는 보편성을 무시한 편협한 집단주의에 빠져 있지 않은가, 아니면 독자적 주체성이 결핍된 어떤 고약한 전체주의에 얽매어 있지 않은가?
보편과 주체를 평화롭게 이어주는 관계성, 거기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 있는데도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