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춘추시대에 양공(襄公)이 다스리는 송(宋)나라가 초(楚)나라와 대립하고 있었다. 초나라 군대가 송나라를 치려고 홍수(泓水)라는 강을 건너고 있을 때, 이를 지켜보던 송나라 재상 목이(目夷)가 양공에게 “적군이 아직 강을 다 건너지 않았으니 지금 공격하자”고 건의했지만, 양공은 “그것은 의롭지 않다. 정정당당히 싸워야 참된 승자가 될 수 있다”면서 그 건의를 묵살했다.
초군이 강을 다 건너자 목이는 “전쟁은 예의를 차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적군이 아직 진용을 갖추지 못했으므로 공격하자”고 다시 건의했지만, 양공은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다”면서 군대를 움직이지 않았다. 강을 건넌 초군이 전열을 완전히 정비하자 그제야 전투가 벌어졌지만, 기다리기만 하던 송군은 크게 패배하고 말았다(春秋左氏傳). 실속 없이 현실을 무시한 인정을 베풀다가 오히려 큰 화를 자초한 어리석음을 꾸짖는 송양지인(宋襄之仁)의 교훈이다.
어진(仁) 성품은 훌륭한 인격적 자질이다. 수많은 갈등과 다툼이 어질지 못한 인간의 성품 때문에 일어난다. 그렇지만 현실이나 상황과 동떨어지게 어질기만 한 태도는 오히려 그 현실과 상황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 수 있다. 송양공의 실패는 그가 어진 성품을 가져서가 아니라,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자신의 선의가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적용될 것이라고 믿었다는 데 있었다. 그 잘못된 믿음은 어질지 못했다.
후한(後漢) 말, 광무제의 후손인 유우(劉虞)가 공손찬(公孫瓚)과 전투를 벌일 때, 민간인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군사를 소극적으로 움직이다가 공손찬에게 패배했다. 조선의 유생(儒生) 이영건은 “유우의 너그러움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너그러움을 잘못 사용한 것이다. 이는 송양공의 인자함과 다를 게 없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인자함을 노리고 그것을 악용하는 자에게는 너그러움이 약점이 될 뿐이다.
황제가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권세가 컸던 후한의 악명 높은 환관 장양(張讓)은 오히려 성품이 온화해서 좀처럼 형벌을 내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반란을 꾀한 부하들조차 눈물을 흘리며 용서했다. 그렇지만 군율을 엄격히 적용하지 못하고 관대하게 대처했다는 점에서 지도자로서의 결단력이 부족했다. 조조, 원소 등이 궁궐로 쳐들어와 환관들을 무참히 학살할 때 그는 도망치다가 자살했다고 한다.
동양만이 아니다. 1745년 프랑스 퐁트누아에서 영국·네덜란드·하노버 연합군이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이고 있을 때, 영국군 근위대 지휘관 찰스 헤이가 “프랑스 근위 연대의 신사들이여, 먼저 사격하시오!”라고 말하자 프랑스 장교 드 안테로셰 백작은 “우리는 먼저 사격하지 않겠소. 그쪽이 먼저 사격하시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볼테르가 기록한 서양판 송양지인인 셈인데, 역사학자들은 “실제로 일어났을 개연성이 매우 희박한 일”이라고 본다.
비무장지대(DMZ) 남쪽에서 북한이 매설한 지뢰가 폭발해 우리 군인이 큰 부상을 입었다. 북한은 “한국 군부 깡패들이 펴고 있는 모략극”이라고 폭언을 퍼부었지만, 유엔군사령부와 합참은 “북한이 우리 장병의 생명을 노린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라고 확인했다.
이 사건에 대해 대통령은 “불의의 사고”라 했고, 통일부 장관은 “불행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북한에 대한 꾸짖음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 장관은 “(북한의) 지뢰 공격으로 특정할 수 없다…증오와 적대를 부추기는 것은 정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이러한 사고의 재발 방지를 위해 남과 북이 만나 군사분계의 선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확정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 관계자들의 이처럼 너그러운 자세가 현대판 송양지인이 아니기를 바란다.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상대의 도전적 행동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순진한 선의를 넘어 한반도 평화를 어떻게 냉철히 확보할 것인가? 긴장을 완화하면서도 국가안보의 위험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이러한 물음이 우려와 함께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송양지인의 가르침이 뚜렷이 들려온다. “평화를 포기하지 않되, 평화를 상대의 선의(善意)에만 맡기지 말라…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